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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l 09. 2024

굿윌헌팅

네 잘못이 아니야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가 아니고 5시 이후였던 거 같다. 6시 수업을 마치고 창밖을 봤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남으면 일기 쓰는 것을 깜박하고 잊는 경우가 많다. 6시 이후로 줄곧 누워있었다. 그러다가 10시에 옛날 영화 한 편을 봤다. Tv에서도 가끔 채널을 돌리다 눈에 들어오는 그런 영화, 굿윌헌팅.

그러니까 그 영화를 제대론 본 적은 없다. 너무 많이 알려진 영화라서, 대강 어떤 스토리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를 볼 마음이 없었다. 마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데 다른 볼 만한 영화들도 많아서 좀처럼 영화를 골라야 하는 순간에는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는 그 부분이 맞아떨어졌다.

그전에 저녁으로 먹었던 열무국수 이야기를 조금 남기는 것이 좋겠다. 지금 일요일 아침에 일기를 쓰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마침 열무와 관련된 기사가 보였다. 열무는 완전 건강식품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들기름과 함께 먹으면 특히 시력에 좋다고 열무를 예찬하고 있다. 그랬구나, 열무 동치미를 밥 먹을 때마다 꺼내놓고 먹는데 속이 편하고 좋다는 것을 느꼈다. 어제 국수 요리도 속에 얹혀서 한동안 먹던 동작을 멈추고 기다렸다 먹어야 했지만 맛이 좋았다.

다시 굿윌헌팅으로 돌아와서 영화에 나왔던 명대사를 몇 개 적어놓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는데 그것은 전율이었고 결정적이었다. 반복해서 -이 순간만큼은 로빈 윌리엄스로 보였다. - 그가 말한다. 고아로 자라면서 자기 안에 웅크린 채로 세상 밖에 나설 용기를 내지 못하는 윌에게 부드럽게, 강하게, 안타깝게, 힘주어서 말한다. 반박하는 윌에게 다시 말하고 변명하는 윌에게 다시, 말 못 하는 윌에게 다시, 다시, 다시,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는 윌에게 따뜻하게 말해준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말은 윌에게 했던 말이면서 숀 자신에게 향한 말이었고 98년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에 그 장면 앞에 섰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무려 26년이 지난 훗날에 그리고 자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 - 로빈 윌리엄스는 2014년에 하늘도 떠났다.-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남긴 말이었다. 그것도 비 내리는 토요일 밤에.

그 밖에 친구 척키가 한 말 -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젠지 알아? 내가 너희 집 골목에 들어서서 네 집 문을 두드려도 네가 없을 때야. 안녕이란 말도, 작별의 말도 없이 네가 떠났을 때라고. 적어도 그 순간만은 행복할 거야.

숀 맥과이어의 말들을 받아 적어야 한다. 순서 없이 떠오르는 대로, 다행히 인터넷에는 그동안 쌓인 정보가 하루 종일 읽어도 모자랄 정도로 많다. 대사 하나씩 읽으면서 장면들을 떠올리고 그 순간 마치 하늘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잠시 내려와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안했던 것도 되새김한다.

- 아내가 병상에서 죽어갈 때, 더 이상 환자 면회 시간 따위는 의미가 없어져. 넌 진정한 상실감이 어떤지 모르지. 그건 너 자신보다 타인을 더 사랑할 때 느끼는 거니까.

-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정말 중요한 건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거야.

그 외에도 숀 교수의 대사는 대부분 사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를테면 내 주의를 한 데 집중시키기 시작했던 대사 -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냄새가 어떤지는 모를걸?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장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난 봤어.

윌의 미래를 두고 다투던 두 교수, 숀과 램보 교수의 대화 중에 들린 말 - 안내와 조작은 다른 거야. 그 말 또한 내게 지침이 되어줄 것 같다. 늘 생각하게 하는 문제다. 아이들과 길을 걸으면서 내 행동은 저 표지판처럼 길을 안내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화 '트루먼 쇼'처럼 거대한 세트장을 만들어 놓고 길을 가자고 그러는 것은 아닌지, 늘 생각하는 문제에 친절한 설명을 달아준 기분이었다. 매번 하는 말이지만 경계를 잘 타고 흘러갈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듯하다.

내게 좋은 작품이란 이런 것이다. 숀이 윌에게 다그치며 했던 말이다.

- 세상에 너 혼자 있는 거 같니? 영혼의 짝이 있어? 널 북돋아 주는 사람 말야. 영혼의 짝이란 네 마음을 열고 영감을 주는 존재야.

그 말을 들은 지 얼마나 됐나, 손가락을 세어봤다. 부러움이 드는 작품, 저렇게 쓰고 싶게 하는 작품은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저렇게 살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어려운데 글을 사는 사람을 꿈꾸게 하는 작품이 있다. 내 감상은 소박해서 굿윌헌팅은 정말이지, 굿윌 Good Will 선한 의지 그 자체였다. 윌은 밖으로 떠난다. 밖은 사냥터다. 죽고 죽이는 거기가 아니라 살고 살리는 곳이다. 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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