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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Aug 15. 2024

묵화 - 김종삼

말이 없어도 다정한


묵화 (墨畵)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오늘 처음 본 아저씨가 두 칸 건너서 자고 있다.

6인용을 둘이서 쓴다.

여기는 314호.

코 고는 소리에도 메시지가 있다.

저것은 그래도 자기가 낫다는 뜻,

이것은 내일도 잘 부탁한다는 거.

별이 달을 쫓는 밤이다.

낮에 봤던 산자고는 이 밤을 잘 견딜까.

길게 늘어진 수액 줄이 휘청인다.

아저씨가 자면서 받아먹는 것은 무엇일까.

120ml짜리 피크닉 하나 까서 거기 부어주면

미소사 법당에 날아들던 노랑나비가 여기,

파란 하늘을 몰고서 날아올까.

도망치던 달이 숨을 몰아쉬며 빛을 낸다.

너, 두유밖에 못 마시지?

그림처럼 말이 없어도 다정한 病室이다.

밖에서 봄이, 어둠 속에서 사랑을 하는,

春來綠遍山, 봄이 오니 푸르름이 산을 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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