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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Jan 23. 2022

시-세이 ; 시간의 물결 속에서

멍게

멍게




지느러미 빗결따라 어슷썰린 해산물의 참상

그중에서도 식감 좋은 멍게 한 점 집어드니

병신새끼 머저리새끼 하필이면 그걸 먹니?

니는 왜 그리 지랄하나 내 먹는 건데 물으면

니는 시체도 씹어묵나 그거 제일 뒤진 새끼다

친구는 제 혼자 독주를 연거푸 들이붓는다

여 쟁반에 뒤지지 않는 새끼도 있나 물으면

대가리 크면 자기 뇌 지느러미 신경 처먹고

뿌리내려 평생을 해수만 빨아재끼는 새끼다

에메랄드빛 방파제 사이로 파도가 치댄다

저 봐라 수조 유리벽에 붙은 저 멍게들 봐라

뇌도 지느러미도 신경도 없이 꿈틀만 대는

저거는 뒤진 거다 이미 진즉에 뒤진 새끼다

그러니까 니 먹지 마라 멍게 다신 먹지 마라

멍게가 불쌍하지도 않드나 이 매정한 새끼야

친구의 다리가 테이블 바닥에 추욱 늘어진다

알았다 내 안 먹을게 미안하다 이젠 안 먹는다

시간 많이 늦었다 인나자 정신 좀 드나 물으니

니 진짜 먹지 마라 저거 뒤진 새끼다 정말로

알았다니까 그러네 가자 다리에 힘 줘봐라

둘러 맨 등줄기에서 비린내가 스멀거린다

끌어올리며 끌어올리며 계속 끌어올리며



- 삼류작가지망생






 월요일 아침 아홉 시.


 눈이 떠졌지만 머리는 딱히 팔다리에게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싶진 않은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목적지가 집 앞 슈퍼마켓이든, 한라산 정상이든 간에 가장 힘들고 멀게 느껴지는 거리는 침대에서 화장실까지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일단 씻기라도 하자, 어거지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한다.


 동묘 구제시장 마냥 행거에 이리저리 얽힌 옷가지들을 뒤적거리며 대충 꺼내 입고는 가방 내용물이 빠진 게 없는지 확인한다.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한 칸씩 걸어 내릴 때마다 둘러멘 5 킬로그램 남짓 육중한 백팩이 어깨를 짓누른다.


 빌라 중앙 현관을 나오니 하늘에서 눈 알갱이가 조금씩 흩날린다. 작게 갈라져 난 회색 담벼락을 따라 걷다가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교회를 지나서 초등학교 후문이 보이고, 그 건너편에는 벽이 모두 인조잔디로 메워진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제일 안쪽에 있는, 콘센트가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정사각형 테이블 자리를 선점한 뒤에 카운터에 선다. 늘 그랬던 것처럼 과테말라 핸드드립 아이스와 미니 브라우니를 주문하고 나서 충전기를 꽂고 노트북을 켠다.


 커피가 나오는 동안 담배 하나를 태우고는 자리로 돌아와 커피를 홀짝거리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오늘은 뭘 쓸까. 저번에 쓰던 걸 마무리나 지을까. 그러다 문득 새로운 뭔가에 꽂혀 적어 내리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시간을 의식했다는 것은 몸에서 니코틴과 타르가 부족해서 보내는 신호였다. 패딩을 걸치고 나와서 담배를 하나 또 태운다. 거센 눈발이 처마 아래까지 휘어들어와 안경알에 들러붙는다.


 전날도, 전전날도, 전에 전에 전날도 글을 썼다. 회사 출퇴근길에도, 결혼식에 들렀다 오는 길에도, 장례식장에 갔다 온 날에도, 그리운 마음에 다섯 시간을 한강 둔치를 걷다가 먹먹해진 때에도 글을 썼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문서 파일을 열면 가슴이 턱 막혀왔다.


 구상만 한 지 세 달,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기간 한 달, 그리고 써 내려간 시간 한 달. 그 다섯 달을 온전히 집중해서 쏟아냈던 건 아니었지만 결코 짧은 기간도 아니었다. 그 결과물은 초고는커녕 고작 여섯 페이지도 채우지 못한 글 쪼가리였다.


 꿈을 포기한 게 자기 탓이라며 아쉬워하셨던 아버지의 말을 유언 삼아 퇴사했던 스물여덟. 그때는 모아놨던 돈으로 일 년을 넘게 카페와 국립도서관 독서실을 전전하며 글을 썼고, 통장에 남은 금액을 보고는 하루에 얼마씩 쓰면 얼마만큼은 더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매번 머리를 싸매고 써 내린 글들을 공모전에 제출해서 돌아오는 건 담당자의 유감만 가득한 탈락 메일이었지만, 이에 더 자극받고 원동력으로 삼아 전날보다 한 시간 더 일찍 나와 다시 머리를 싸매며 글을 쓰곤 했다.


 시간이 흘러 두 번째 퇴사 이후 나이가 계란 한 판을 넘긴 지금은 모든 것들이 두려웠다. 물론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은 사그라들지를 않았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오늘이 두려웠고 밤이 되어 눈을 감으면 내일이 두려웠다. 글에 집중하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나가면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제일 두려운 것은 좀처럼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나의 글도,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통장 잔고도 아니었다. 제일 두려운 것은 다시 글을 써보겠다며 키보드 앞에 앉은 날 이후로 무섭게 쏟아져 내리는 시간이었다.


 예전에 작가를 준비하겠다며 퇴사에 대한 결심을 주변 사람들에게 토로했을 때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글 쓰는 직업은 날고 긴다 해도 어지간해서 성공하기 힘들다, 내 주변에 신춘문예 당선되고도 수입이 없어 편의점 알바로 간신히 월세만 내는 그런 삶을 사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다, 글은 언제라도 쓸 수 있지만 돈은 벌 때가 정해져 있다. 그들이 말하는, 시간의 물결에 쓸려 시체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당시의 나는 그 사람들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었다. 당사자들도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을 텐데.


 답답한 마음에 잠들지 못하고 이른 새벽 편의점에 들려 맥주 네 캔을 사들고선 초록색 에폭시 계단 턱에 앉는다. 담뱃불을 붙여 한 모금, 맥주 한 입, 다시 담배 한 모금, 또 맥주 한 입. 어느덧 취기가 올라오는지 날 선 겨울바람이 봄바람 같은 착각이 든다. 알루미늄 기둥에 잠깐 머리를 기댔다가 이대로 잠들 것 같아서 남은 맥주캔을 주머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휘청이는 골목을 내딛으며 소망해본다.


 내일은 부디 조금이라도 유속이 느려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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