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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Nov 30. 2024

엽편소설 ; 미찬이

  긴 꿈만 같았다. 처진 채로 끝자락만 살랑이는 게 고작이었던 꼬리가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복통도 말끔히 사라졌고 혀의 감각도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둥근 투명한 벽이 있었고 작은 호스가 내 허리 쪽에 붙어 있었다. 누가 물어뜯기라도 한 건지 뚝 끊겨있던 기억의 흔적을 따라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몇 밤 전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때는 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한 걸음 움직이기도 벅찼고 겨우 물통까지 걸어가더라도 한 모금 삼키기 힘들 정도로 혀를 말아 올릴 힘마저 없었다. 내 불안한 마음의 크기가 셋만큼이라면, 고작 하나만큼도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꼬리는 우측 엉덩이는커녕 바닥을 쓸기 바빴다. 그럴 때마다 미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미찬이는 내 가족이다. 무리의 우두머리인 어마(가끔 여보라고도 불린다)의 자식인데 함께 있으면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 내가 몸의 통제권을 거의 모두 잃을 때까지도 곁에는 항상 미찬이가 있었다.

  내가 병들기 시작한 후로는 집 안에서 슬픈 냄새가 나돌기 시작했다. 모든 건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가족들의 냄새가 닿지 않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그러다 가끔 미찬이의 따스한 품에 안기면 따끔거리는 물이 눈에 떨어졌다. 시야가 울렁거려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슬픈 냄새가 났다. 그럴 때마다 내 슬픈 냄새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입을 꽉 다물었다.

  마지막 기억과 제일 근접한 어느 날에 미찬이가 그 가방을 꺼냈다. 코 끝이 시큰거리고 항상 익숙해지지 않는 이상한 냄새를 내뿜는 가방은 항상 그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고통스러운 기억들 뿐이었다. 날카로운 가시가 몸을 파고들면 체온 사이로 차가운 뭔가가 들어오는 끔찍한 곳이었다. 원래였으면 울고불고 난리를 쳤겠지만 그날은 내가 스스로 들어가 앉았다. 얇은 벽 너머로 슬픈 냄새가 내내 진동했다.

  '테리야, 미아내'

  이동하는 내내 미찬이가 하던 말이었다. 나는 사람의 말은 전혀 모르지만 지난 세월 동안 반복된 그의 말과 냄새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미안해' 내가 대답했다. 미찬이도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여기까지였다. 기억의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그리운 냄새가 났다. 흐릿하지만 확실했다. 미찬이였다.

  미찬아, 고마워. 나 이렇게 건강해졌어.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다신 못 볼까 봐 무서웠어. 그 모든 마음을 담아 힘차게 꼬리를 움직였다. 미찬이는 투명한 벽 너머에 손을 올리고 한참을 울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그만 슬퍼해도 돼, 미찬아. 이제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한참이 지나도 슬픈 냄새가 사라지지 않던 미찬이는 다른 사람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여씨 안대개서요...... 이러게 다시 봇제를 항다고...... 우리 테리가 도라오느게 아니자나요. 재송해요......'

  이후로 미찬이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나는 몇 번의 밤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지만 분명 그는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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