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이빨에 잠시 입마개를

상편

by 김민


니콜라스 카의 <유리 감옥>을 읽고 나니 어디선가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섬뜩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출간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책이건만 지난 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어제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가 달라서 가끔은 ‘미래학’이라는 단어조차 클래식한 느낌이 든다.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정말 이 정도 기술까지 필요한 걸까?’ ‘정말 이렇게까지 빨리 가야 하는 걸까?’ ‘과연 과학기술이 펼칠 미래가 장밋빛일까?’ 란 의문을 품는 아날로그 인간이다. 운전 면허증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가 장을 본다. 여태껏 체크카드 한 장 없이 살았다. 종이책이 아니면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한다. 뒤죽박죽 이미지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친다. 비트 코인이 없으면 메타버스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네버 랜드로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버려진 도시를 지킨다. VR에 시신경을 연결한 트렌드 세터들은 눈앞의 꽃을 보지 못한다. 알고리즘 괴물은 갈고리로 아이들을 납치하고 키오스크는 노인을 죽인다. 블루투스에 물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구의 역사가 1년 이라면 현대 문명은 고작 2초라던가. 나이 들수록 세월의 흐름이 빨라지는데 과학기술의 진화까지 더해지니 눈 깜짝할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지나가 현기증이 난다. 아직 운전석에 앉아 본 적도 없는데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 된단다. 집전화가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어린 아이가 나보다 먼저 늙는 모습 같아 서글프다. 기술이 지나치게 앞서나가니 법과 윤리가 따라가지 못한다. 기술 발전이 정말 인간을 해방시켜 줄까? 오히려 소외받는 기분이 드는 건 나뿐일까. 그래도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은데. 기술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란 걸 깨달았지만 이미 중독된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술 발전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면서 길을 정했으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정말 나뿐일까. 자신이 쓰는 기기들을 이해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자동차가 고장 나면 정비소에 가고 전자제품이 고장 나면 새로 산다. 단지 신상품이라는 이유로 휴대폰을 바꾸고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하지만 구동하는 방식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세상도 무언가 고장 난 상태인데 인지조차 못하는 건 아닐까. 삼십 년 전 집 전화번호는 기억나는데 이제 가족들의 전화번호조차 외우지 못한다. 이 십 년 전 군번부터 총기번호까지 기억하는데 이제는 버스 노선조차 외우지 못한다. 기계가 알아서 해주니까. 몇 걸음을 걸었는지, 몇 칼로리를 먹어야 하는지, 물 마실 때는 언제인지 친절히 가르쳐준다. 언젠가 사람이 살아가야 할 삶의 형태까지 계산해주는 기계가 등장할 지도 모른다. 허황된 이야기 같지만 유전자 기술과 통계 예측 시스템 따위를 적당히 버무리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HAL 9000이 데이비드 보먼을 우주로 던지려 했듯이 기계가 인간을 이물질로 규정했을 때 인간은 그에 대항할 수 있을까? 터미네이터의 세상이 오지 않을 거라고, 매트릭스는 영화일 뿐이라고 확신할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미드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의 ‘머신’처럼 전자 장치를 통제하고 휴대폰을 비롯한 모든 카메라에 접속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말살하려 든다면 막을 수 있을까?


바람을 읽는 이가 사라졌다. 파도를 읽는 이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하며 젊은이들은 폰포비아에 걸렸다. 인류 중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대기권 바깥으로 나갔을 뿐이고 달을 밟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지만 지금도 수천 개의 인공위성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나는 그들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은 내 땀구멍까지 볼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또 다른 뜻으로 읽힌다. 우주 탐사선들은 지금도 인류가 가보지 못한 저 너머로 나아가고 있겠지. 우주 관광 시대가 열린다 해도 기계는 인류보다 먼 곳에 있겠지. 나의 밤하늘을 인공위성으로 뒤덮는 일에 찬성한 적이 없다. 아마 인류 대부분이 그랬을 거고 앞으로도 동의 따위 받지 않을 테지. 오래전 신해철이 “누구를 위한 발전인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된 것이 옳지만은 않듯이 새롭다고 좋은 것만은 아닐 텐데 왜 오래된 것들에게 하는 만큼 낯선 것들에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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