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헤밍웨이가 불이고 하루키가 바람이라면 김훈 작가는 땅이다. 그의 문장은 대지처럼 나라는 존재를 지탱해 주었다.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천자총통에 직격당한 기분이었다. 주어와 서술어 하나도 떨어뜨릴 수 없었다. 명사는 거기 있어야 했고 동사는 그것이어야만 했다. 그는 필연적으로 이어진 낱말들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그의 문장은 토씨 하나 뺄 것이 없었다. 손톱이 가지런한 이의 문장이었다. 굳은살 사이 돋은 선연한 꽃이었다. 저만치 혼자서 오롯이 피어있는 이야기였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서사의 물결은 힘차고 빨라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끝에 닿았다. 놓친 문장이 있을까 몇 번이고 돌아가 문장을 쓰다듬었다. 혀에 문장을 올려보고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의 문장에는 바쁜 걸음도 멈추게 만드는 힘이 있는데 주저앉음이 아닌 나아감을 위한 여백이다. 김훈이 쓴 장소는 그대로 풍경이 되고 그가 본 것은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 된다. 그는 본질을 꿰뚫는 관찰의 힘으로 세계를 재구성한다. 그의 글에는 여기저기 들이받는 어설픈 사유가 없다. 깊고 긴 호흡으로 사물을 관찰하기만 해도 철학이 된다. 이때의 보여주기는 경박한 뜀박질이 아닌 서서히 차올라 스며드는 강물의 흐름이다. 문장을 자랑하며 사람을 내려다보지 않고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받아들이는 문장이다. 김훈의 문장은 별을 쫓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것들을 세밀히 살피고 맛봄으로써 읽는 이에게 빛이 된다.
솔직히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어릴 때는 위인전으로, 학생 때는 역사책으로, 소설부터 드라마까지 지겹도록 반복된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도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칼의 노래>는 떠나간 이들이 남긴 이야기를 음미하게 했고, 멀어지며 빛이 된 이들의 삶을 생각하게 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나의 삶을 대입하게 만들었다. 그의 문장에 삶을 비춰보았다. 그의 이야기가 나를 비춰주었다. 첫 소설인 <칼의 노래>로 동인 문학상을 받은 건 당연했다, <화장>으로 이상 문학상,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 문학상, <남한산성>으로 대산문학상을 탔지만 수상 이력보다 근사한 것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라는 사실이다. 이 시대에, 우리나라에 100쇄를 찍을 수 있는 작가가 있다.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고 얻어낸 이미지를 적확한 언어로 옮겨낸 그의 소설이 있어 다행이다.
그가 걸었던 사유의 흔적을 더듬더듬 따라갔다. 필사적으로 필사했다. 어둠 속을 헤맬 때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문장이 있었기에 길을 잃지 않았다. 그의 문장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어 한 두 줄만 잘라낼 수 없었다. 한 페이지, 때로는 몇 페이지를 옮겨 적어야 결이 드러났다. 그의 세상에 담긴 지혜로 마음을 채웠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대로 괜찮을까, 사는 게 두려워질 때마다 이순신의 죽음과 우륵의 삶을 떠올렸다. 남한산성에서 살고자 했던 최명길의 마음을 생각했다. 어디로 가도 끝이라면 가보지 못할 길이 없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이라면 나로 살다 끝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유를 따지지 않으면 시작하지 못할 일이 없다. 이해를 바라지 않으면 끝내지 못할 관계가 없다. 스스로 근거가 되면 자신을 납득할 수 있다.
그의 문장은 닿는 순간 마음에 스며든다. 그의 단어는 점점이 뿌려진 창조자의 물수제비였다. 섬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당위성을 갖고 있었다. 섬은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대양으로 뻗어나가는 장소였다. 서사의 힘이 섬과 섬을 이어 바다를 만든다. 어느새 이야기의 물길을 타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문장은 나를 태우고 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숨을 거둘 때까지 세상과 대적하며 징징 우는 칼의 노래를 듣는다. 그의 몸이 살아있는 한 적들은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며 그의 마음이 살아있는 한 생은 그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었다. 임금과 적 사이에서 그의 칼은 쉴 수 없었다. 운명에 맞서 이길 수는 없었으나 운명에 지지 않은 영혼이 있었다. 그의 칼에 새겨진 것은 그의 생이었다. 그는 칼 없이는 살 수 없었으나 칼이 있기에 감옥에서 나와 싸우다 죽을 수 있었다. 그는 칼로 자신을 증명해야 했으나 붓으로 자신을 남겼다. 죽임으로 자신을 ‘증거’했지만 죽음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죽음은 그에게도, 임금에게도, 적에게도, 백성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오는 것이었고, 언젠가 내게 올 것이었다. 죽어가는, 그렇기에 살아있는 존재의 쓸쓸함을 생각했다. 나의 진용이 어떠해야 할지를 궁리했다. 그가 133척을 한 번에 상대하지 않고 한 척씩 싸워 이겼듯이 내 몸을 부려 지금과 마주해야 한다. 지금의 이름을 짓고 다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언젠가 패배하는 날이 오더라도 그 때까지 끌어안고 밀쳐내며 싸워야 한다. 죽음이 각자의 것이라면 삶도 마땅히 저마다의 것이어야 한다. 인생은 영혼이 단독으로 치러나가야 하는 개별적인 전투다. 저마다의 전투는 거룩한 울림이 된다. 각자의 울림이 부딪쳐 세상이라는 노래가 된다.
울림은 <현의 노래>로 이어진다. 신성한 울림은 가야금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아라의 오줌 소리도, 대장장이 야로의 망치질 소리도, 이사부의 칼질 소리도, 니문의 울음소리도 노래가 되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것을 먹는 소리에도 울림이 있고, 살아있던 것을 내어놓는 때도 소리가 나니 살아있음이 노래였다. 살아있는 것은 소리를 낸다. 우리의 몸이 세상과 부딪쳐 한 음이 되고, 마음과 마음이 부딪쳐 한 음이 되고, 사람과 사람이, 몸과 마음이 부딪쳐 한 음이 된다. 줄들은 저마다의 간격을 두고 늘어서서 하나뿐인 선율을 자아내는 것이다. 모든 것은 끝내 사라질 테지만 우리가 남긴 울림은 남을 것이다. 세상에 남아있는 한 ‘울림’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맡겨야 한다. 소리는 흔들리는 동안에만 존재하지만 곡조는 사라지지 않는다. 끝없이 제 몸을 흔들고 마음을 쥐어뜯으며 노래해야 한다. 그러다가 차례가 돌아오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남한산성에 웅크리고 숨어 답을 내어놓지 못하는 왕과 말만 늘어놓는 신하들 사이에서 말과 소의 소리도, 닭 우는 소리도 사라진다. 그 사이에는 말뿐인 말과 마른 바람만 불 뿐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소리 없음 사이에서 죽어간다. 그래도 움직임이 있는 한 성은 완전히 죽지는 않은 것이었다. 대장장이 서날쇠가 전투를 준비하고 비밀 임무를 맡고, 소녀 나루를 가족으로 맞아 새로운 날을 준비하듯이. 우리는 끊임없이 소리를 만들어내야 하며, 치욕을 겪더라도 살아남아 울림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거대한 말도 저마다의 삶에 깃든 개별성보다 위에 있지는 않다. 타인의 말은 몸의 소리를 이기지 못한다. 흑산에서 정약전은 유배지의 섬의 이름인 흑(黑)이라는 글자 대신 지금 여기라는 뜻의 자(玆)를 선택해 자산어보를 쓴다. 이때의 자(玆)는 이곳에 올 빛을 믿는 자의 ‘말’이다. 몸과 마음의 조화를 꾀하는 자의 ‘글’이다. 몸과 마음이 어우러질 때 언어는 삶의 길이 되고 생의 노래가 됨을 보여준다. 몸으로 부딪쳐 울림을 만들어내면 사는 세상이 바뀌고 부딪쳐 내는 깊이가 다르게 된다. 지금의 깊이가 달라지면 거기에서 기쁨이 솟는다. 어두워도 깊으면 빛이 보인다. 그러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이 상황이 어느 때보다 많은 걸 이해하게 해줄 거라고. 이 사건을 납득하고 나면 다른 일을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될 거라고 믿어야 한다.
전국을 자전거로 달린 것도 그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그의 문장은 내게 속삭였다. 자전거 앞뒤 브레이크조차 분간하지 못하던 때였다. 기어 변속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지만 묵묵히 페달을 밟으면 그래도 앞으로 나아갔다. 나아가는 한 무너지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바람을 느꼈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누구나 바람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한 줄기 바람으로 불다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그의 세상을 보았듯이 나 역시 내 자전거를 타고 나의 세상을 돌아보았다. 그래야만 내게 돌아올 수 있음을 예감했다. 두 발로 페달을 굴려 본 세상은 자동차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본 풍경과 달랐다. 속도에 따라, 마음가짐에 따라, 몸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사람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고, 또 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을 구분할 수 없는 풍경을 달리다 보면 둘이 만나는 지점이 나타난다. 그곳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달릴 때에만 나의 세상이 열리는 거였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나아가는 길이었다. 길을 내 몸속에 들였다. 길을 들일 수 있다면 내보낼 수도 있을 터였다. 내 몸이 나아가면 길이 되고 마음이 머물면 집이 되는 거였다. 계절이 두 번 바뀐 늦은 밤 꼬리에 붉은 빛을 깜빡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처럼 깊이 보고 헤아려 듣지 못할 것이다. 그처럼 빛나는 지혜를 갖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나의 눈으로 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별처럼 빛나는 언어를 갖지 못할 지라도 나의 언어에 울림을 담을 수는 있을 것이다. 밤하늘 별이 서늘하다. 내 방에 불을 켠다.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인다. 물이 거품을 내며 끓어오른다.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마오. 물길이 되어 나아가시오. 스스로 파도 되어 세상으로 밀려드시오. 바람이 되어 달려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