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편
요즘 사람들은 칼날이 무디어지면 어떻게들 할까. 예전에는 집집마다 숫돌이 있어서 마당에서 갈곤 했는데 아직도 숫돌에 칼을 갈아 쓰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숫돌에 칼을 갈아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요즘 아이들은 “쓱쓱 이상한 소리가 들려 문을 살짝 열어 보니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칼을 갈고 있었다.” 이야기해도 뭐가 무서운 줄 모르겠지. 요즘은 슬쩍 열어 볼 수 있는 미닫이문도 드물고 소복을 입은 여자를 볼 일도 없으니까. 익숙했던 물건들이 사라지면서 함께 잃어버리는 풍경들이 있다. 공중전화, 월급봉투, 열쇠 고리 같은 것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공중전화가 사라지면서 동전 한 움큼을 쥐고 발걸음을 옮기던 밤이 사라졌다. 약속 시간이 되었는데 앞 사람이 전화를 끊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던 간절함도 사라졌다. 월급봉투가 사라지면서 돈 벌어오는 자의 자부심은 사라졌다. 통닭 한 마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벼운 발걸음도 사라졌다.
가난해도 부끄럽지 않던 시절은 이제 이야기 속에만 존재한다. 이제 우리는 연봉을 비교하고 숫자로 서로를 찌르며 살아간다. 열쇠가 사라지면서 세상은 안전해졌을까. 어디에도 카메라 없는 곳이 없고 현관부터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세상이 되었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친구라 어디라도 놀러갈 수 있었던 그 때가 그립다. 물론 지금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공중전화가 스마트폰이 되었어도 사람들은 마음을 전하려 하고, 월급봉투가 사라졌지만 가족을 위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마음은 그대로인데 너무 빨리 변하는 풍경이 서러울 뿐이다. 다들 이렇게 바삐 어디로 가는 걸까. 쓸모없어진 것이라고 이렇게 내버려둬도 되는 걸까.
이제 구미호나 저승사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겠지. 요즘은 좀비가 대세니까. 움직이지만 살아있지 않은 존재를 두려워한다. 살아있지 않은 존재로 가득한 세상을 두려워한다. 공포도 시대를 반영할 테니, 좀비를 무서워하는 건 좀비처럼 사는 지금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풍경을 볼 시간이 없다. 숫자를 비교하느라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다. 온 힘을 다해 살다 본 거울 속 모습은 좀비를 닮아간다. 욕망도 열정도 없이 그저 살아간다면 좀비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사람을 위한 변화인지는 모르겠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문화, 유행하는 콘텐츠, 얼리 어답터, 패셔니 스타. 그게 정말 원하는 모습일까. 시대에 뒤처지기 않기 위해 소중한 것을 너무 쉽게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자신과 공감할 시간까지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 물건들은 사라지면서 내 것이었던 무언가를 갖고 세월의 저편으로 가버린다.
기술은 사람을 향한다는데 그리 편해진 것 같지 않다.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노래를 듣기 위해 페어링을 하고 동기화를 해야 한다. 한시도 스마트폰을 놓을 수 없다. 번거로운 건 마이 마이에 카세트테이프를 넣던 때와 다를 바 없다. 그 시절 감성은 사라졌는데 딱히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지 않는다. 세탁기가 나오며 편해진 건 좋은데 건조기에 살균 옷장까지 갖춰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햇볕 나면 기다렸다는 듯 담벼락에 이불을 널던 그 때보다 행복해 졌을까. 물건을 가득 채우느라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운전하며 잃어버린 길들이 있다. 생에서 배제된 풍경들이 있다. 효율적인 삶을 위해 기계처럼 사는 건 아닐까. 최적화된 코스를 따라 이동하며 놓치는 풍경들이 있다. 모처럼 나온 공원에서 드론 잠시 날리고 사진 몇 장을 찍은 뒤 도망치듯 집으로 온다. 여행지에서도 새로움은 없다. 검색으로 찾은 유명한 가게에서 밥을 먹고 스마트폰이 추천한 핫스팟에 가 인증사진을 찍는다. 삶을 편하게 만들어야 할 기술이 오히려 사람을 소외시킨다. 온라인 세계는 무한을 향해 확장하지만 실재의 삶은 상자 속을 벗어나지 못한다. 디지털화 되지 못하고 버려진 영혼들. 스마트한 기계를 따라잡지 못해 낙오한 인간들. 이쯤 되면 기계가 우리를 사용하는 건 아닐까. 이미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인공지능은 진화했다. 인공지능이 지배할 미래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인공지능이 없으면 안 될 오늘을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인시스템으로 주문을 하고 스마트폰을 따라 걷고 내비게이션 지시에 따라 운전하고. 빅 데이터에 따라 쇼핑을 하는 자신을 돌아볼 때가 아닐까. 해킹. 명의 도용. 정보유출. 도촬. 위조. 사기. 금융피해. 기억력 감퇴. 사유의 종말. 대화 단절. 금단현상. 스마트한 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지불하고 있는 게 할부금만은 아니겠지.
내일이 과연 우리를 위한 것일까. 기계가 사람을 이기는 것보다 소름끼치는 것은 앞만 보며 나아가는 삶이 아닐까. 생을 쓰는 방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손을 자유롭게 만드는 기기들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신에게 시간을 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발을 대신할 수단이 늘어도 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푸른 이빨이 통째로 생을 삼켜버리기 전에 무언가를,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기계의 힘으로 자유를 얻을 수는 없으니까. 기계를 거부할 이유는 없지만 생에서 자신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생을 붙잡지 않으면 스마트폰 검색기록이 유언이 될 지도 모른다. 편리함이 편안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반드시 행복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발전한 게 아닐까. 기술이나 기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충전하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충족되지 않아도 충만한 순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잠시 푸른 이빨에 입마개를 채워야겠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가방에 넣는다. 바람을 느끼고 바다의 속삭임을 듣는다. 몸의 소리를 듣고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편리함을 좇느라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마음이 원하던 풍경이 이곳에 있다. 관계는 사람 사이의 일로 한정되지 않는다. 세상 모두가 관계의 대상이며 물건 역시 다르지 않다. 관계는 존재를 이루나 관계가 존재를 이르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 물건이나 기술을 적대시 할 필요는 없어도 절대시 할 필요까진 없다. 여백 없는 글자는 의미를 품지 못하니까. 쉼표 없는 노래는 소음이 되니까. 띄어쓰기가 없는 문장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어쨌든 주인은 나여야만 하니까.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 인간이면 어때서. 스스로 파도 되어 나아가면 그만이지. 세상의 변두리에 있더라도 생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서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