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유리감옥>을 필두로 한동안 인공지능이나 미래학을 다룬 책들을 쭉 읽어나갈 계획이었지만 이쯤 되면 <오래된 미래>는 잠시 보류다. 고독한 미식가가 식당을 찾듯이 마음을 달래줄 문장을 찾는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도, 에피쿠로스의 쾌락도, 장자도 아니다. 오늘은 월든을 다시 읽어야겠다. 헤밍웨이가 불꽃이라면 소로는 강물, 고요한 문장을 따라 걷는다. 소로가 호숫가 에서 홀로 살았듯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혼자 산다. 내 손으로 번 돈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1845년 봄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월든 호숫가로 걸어 들어간 소로처럼 친구가 빌려 온 SUV 뒷자리에 15년 치의 짐을 싣고 통영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표현으로는 “욕심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문제” 인 인간이다. 낡은 텀블러 두 개, 주전자 하나, 밥그릇과 대접, 트레이닝 복 몇 벌이면 부족함이 없다. 과연 풍요로움에 행복이 깃들까. 어린 시절 주말이면 토요명화를 볼지 주말의 명화를 볼지 선택해야 했다. 조금 일찍 시작하던 토요명화를 보다 주말의 영화로 넘어가곤 했다.
그 때 보았던 영화들은 몸에 스며들었다. 이번을 놓치면 다음은 없었기에 몰입해야만 했다. 비디오테이프와 DVD 시대를 지나 넷플릭스 시대에 이르렀다. 채널 숫자는 늘어났는데 머무를 곳이 없다. 수 만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목록만 보다 잠들어 버린다. DJ가 노래를 소개하는 동안 공 테이프 녹음 버튼을 누르기 위해 긴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산 카세트테이프에는 가사가 없어서 몇 번이고 같은 구간을 반복하며 옮겨 적다 테이프가 늘어나버리는 일도 잦았다. 이제는 카세트테이프 하나 살 돈으로 매일 쏟아지는 신곡을 들을 수 있지만 인생 노래를 찾는 건 어려워졌다. 그곳에 머무를 시간이 없다. 한두 번 듣고 지워버린다.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삭제 버튼을 누른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세계가 집으로 배달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편리한 것들은 많아졌지만 기쁨을 누리는 순간은 줄어든다. 머릿속에 남는 영화도 가슴을 울리는 음악도 없다. 사람들이 옛날 노래를 찾아 듣는 건 그 시절의 향수만은 아니겠지. 그 시절의 몰입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있을 거다. 선택의 폭은 좁았지만 기쁨은 깊었다. 삶은 풍요롭지 않았지만 감사는 넘쳤다. 배고픈 이가 음식을 가리지 않듯이 주어진 것들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때가 좋았다는 흔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 때를 빛나게 만들었던 무언가를 지금으로 가져올 수는 없을까.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거기에 깃든 기쁨은 옅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소유보다 향유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들이지 않고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면 되지 않을까.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라던가. 흔하면 귀함을 찾기 어려운 법이니까.
애써 비우려 하지 않는다. 애초에 번거로워 채우지 않는 까닭이다. 물건이 많아질수록 그에 상응해 노동도 증가한다. 물건을 구매하기 위한 노동은 물론이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노동, 물건에서 본전을 뽑아내기 위한 노동, 쓸모를 다했을 때 그것을 처리하기 위한 노동까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소유라는 과정은 지나치게 번거롭다. 냉장고 안에는 며칠 먹을 음식만 있으면 충분하다. 쌈 채소 한 봉지. 김 한 움큼만 있어도 풍요롭다. 라면이나 간편식으로 끼니를 해결해도 괜찮다.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건 재료의 귀함이 아닌 감사하는 마음이니까. 물리적으로도 공간을 비울수록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난다. 물건을 적게 들이면 그만큼 자신을 둘 공간이 넓어진다. 비움에 집착해서 쓸 만한 물건을 내다버릴 필요는 없지만 물건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창고지기처럼 살게 된다. 나를 위해 자리를 비워둔다. 여기에는 무엇을 놓으면 좋겠네. 여기는 이게 어울리겠어. 그러다보면 마음이 쉴 자리가 없어진다. 옷이 아무리 많아도 입을 옷은 없고 냉동실이 가득 차 있어도 먹을 게 없다고 불평하게 된다. 마음의 빈자리는 물건으로 채울 수 없다.
다림질 된 와이셔츠를 벗어버렸다. 푸른 바다 모래 해변에 아무렇게나 드러눕는다. 산 속 흙 묻은 바위라도 개의치 않고 쉬어간다. 반짝반짝 닦은 구두를 벗어던지니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차가 없고 돈이 없어도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애써도 잡히지 않던 확실한 미래는 오지 않아도 좋다. 지금에서 지금으로 간다. 구멍 난 양말과 닳아빠진 운동화가 부끄럽지 않은 건 체면이나 명예 같은 것도 벗어버린 까닭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결혼이나 안정에 대한 욕구를 벗어던지고 나서야 애초에 어울리는 옷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집에서 속옷만 입고 있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고 삐거덕거리는 자전거를 끌고 다녀도 잔소리할 사람이 없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아도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는데 이제는 감탄만 남았다. 이토록 홀가분하게 살 수 있는 거였다. 치렁치렁 매달린 관계와 끈적끈적 달라붙는 욕심을 벗어버리니 비로소 몸 있는 곳에 마음을 주고 마음 준 것에 시간을 내어줄 수 있었다.
소로가 지은 3미터짜리 오두막보다 좁은 집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비록 내 집은 아니지만 널빤지 대신 시멘트와 철근으로 튼튼하게 지은 아늑한 공간이 있다. 어차피 몇 십 년 머물 것도 아니다. 조만간 이 별에서 떠나야 한다. 아무리 넓은 집이라도 살아갈 세상으로는 좁지만 작은 집이라도 세상을 여행할 배로는 부족하지 않다. 언제 어디에 무슨 꽃이 피는지 알고 있으니 온 동네가 내 정원이다. 억지로 붙들고 갈 필요 없고 매달려 좋을 일도 없다. 혼자를 견뎌야 오롯해진다. 홀로를 고집하지 않으나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오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어 보내고 곁의 사람에게 시간을 내어주며 나아간다. 사랑을 위해 선물 포장을 뜯는 정도의 번거로움은 감수해야지. 꿈을 위해 날갯짓 정도의 수고로움은 있어야지. 마음 준 것에만 시간을 내어주면 가능한 일이었다. 벗어던지고 나니 알겠다. 몸 하나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겠다. 발 딛을 곳은 지금 뿐임을 알겠다. 모든 걸 벗어던져도 소중한 것은 마음에 있으니 사라질 리 없다. 짊어진 것이 없으니 가볍게 살게 된다.
벗어버려야 벗어날 수 있다. 벗어버려야 품어지는 것이 있다. 이토록 별 거 아닌 거였다. 이토록 근사한 세상이었다. 별 거 아닌데 벗으니 좋다. 놓아버리면 끝장 날 줄 알았지만 벗어버리니 삶은 근사해졌다. 이루기 위해 기쁨을 미루지 않는다. 기쁨은 지금이 아니면 담을 수 없다. 지금은 무정한 시간의 파도 사이로 잠시 열리는 틈새. 기쁨은 시간의 틈에서 찰나의 순간 피어나는 꽃이다. 지금에 몸을 맡긴 사람만이 기적과 조우한다. 오늘도 월든이 나를 안아준다. 일상에 갇힌 사람에게 숨결을 불어넣는 책, 무인도에 가져가 읽어도 용기를 줄 책,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이 적힌 책. 지금 가진 것으로 이미 충분함을 깨닫게 하는 책.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가치를 더한다. 그 때의 통찰은 미래를 꿰뚫고 있다. 그래, 소로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몇 번을 읽어도 호수를 비추는 달빛처럼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월든. 여전히 푸른 기운을 뿜어내는 지혜로운 친구와 함께 파도에 몸을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