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무탈 조울증 일기
2020년 8월의 보슬비 내리던 어느 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 처음 발을 들였다. 온전한 내 의지로는 아닌, 그즈음에 심해진 무기력감과 우울감, 그리고 별안간 나타난 과호흡 증상 때문에 남편이 동네 정신과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바로 예약이 가능한 병원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병식은 없었던 건지, ‘병원을 가야 할 정도인가?‘라고 의문을 가졌던 나 자신이었다. 어쨌든 몇 가지 검사들을 받고 의사 선생님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눈 후, 의사 선생님은 나를 ‘우울증 환자’라고 명명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나는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당시를 ‘회색 나날들’이라고 기억한다. 무거운 무언가가 내 몸과 마음을 짓누르던 시간들, 모든 것이 힘겹던 날들, 돌이켜보기만 해도 버거운 감정들. 그런데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다른 증상들은 몰라도 무기력감 하나는 기가 막히게 나아졌다. 모친의 화실 셀프 리모델링을 총대 메고 하게 되면서, 페인트 칠하기의 달인이 되었으며 심지어 목수 작업자를 도와 목공일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자전거 타고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매일같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나날들을 꿈꾸며 그려나가곤 했다. 이 즈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퇴사를 기념한답시고 명품백을 샀으며, 수입이 끊겼으나 다양한 이유들로 소비를 더 키워나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약간의 선을 넘은 생활들인 것 같아 보이나, 그 당시에는 희망찬 날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하던 내가 존재한다.
그러던 중 10월의 어느 날, 반갑지 않은 손님이 느닷없이 나를 찾아왔다. 바로 죽음에 대한 생각과 갈망. 그렇게 나는 몇 주 치의 항우울제를 한꺼번에 복용하게 되었다. 그 후 모 대학병원의 응급실에서, 외래 진료실에서, 입원 병실까지 빠른 속도로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조울증 환자’로 개명하게 되었고, 2023년 오늘날까지 대학병원의 교수님 및 연구 간호사 선생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나의 하루하루를 기록해 놓으면, 그 누구에게라도(그 대상이 혹여 나뿐만 일지라도) 갓난 아기 눈곱만큼의 도움이 될까 싶어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본다. 나의 개방 병동과 폐쇄 병동 입원 경험기부터, 조울증과 함께 살아나가려고 애쓰는 나의 시간들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