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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Apr 05. 2019

퇴사 후 프리랜서의 삶은 시간이 걸린다

직장 다닐 때부터 준비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퇴사 후, 프리랜서의 삶은 시간이 걸린다. 사람마다, 분야마다, 상황마다 그 기간은 다르겠지만 대개는 금방 되지 않는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여행 글쓰기 분야를 보면 상황이 이렇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정보도 없고 이런 길을 걷는 사람들이 없던 시절에는 먼저 어딘가를 갔다 온 사람에게 기회가 많이 왔다. 신문, 잡지, 방송에서 다투어서 취재를 했고, 글 청탁을 받았고, 방송에 출연했었다. 새로운 분야였기에 그렇다. 항상 ‘먼저’가 중요했다.


 그렇게 앞장서서 나간 사람들이 여행작가라는 타이틀로 활동하며 신문, 잡지에 글을 썼고, 가이드북을 썼다. 비즈니스 감각에 밝은 사람은 배낭 여행사를 만들어 성장하기도 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남보다 먼저 저지르는 행위,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런 것도 한 때였다. 한때 자유로웠던 여행과 글쓰기는 이제 ‘비즈니스’가 된다. 새로운 여행지를 선점하고, 기획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경쟁을 하고... 이런 경우, 돈벌이는 되지만 점점 직장 생활, 아니 직장생활보다도 더 힘든 일이 되어 간다.


 나는 그런 길에 선뜻 뛰어들기가 망설여졌다. 그런 생활이 싫어서 직장을 뛰쳐나왔는데 다시 그런 생활로 돌아가기 싫었다. 그런데 돈이 필요했다. 어쩔 것인가? 결국 생활과 여행을 가늘고 길게 만들었다. 비즈니스적인 것과는 거리를 두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했다. 그러다 돈이 모이면 다시 장기 여행을 떠나는 생활이 한 때는 즐거웠다. 하지만 돈이 떨어지면 불안했고 삶의 고민들이 파도처럼 덮여 왔다. 자유와 돈은 함께 가기 힘들었다. 그러므로 삶이 찌그러지고 초췌해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견뎌 나가는가?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가? 정신 승리만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어떻게 버텨나가야 할 것인가? 이런 고민들이 이어졌다.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경험의 축적들이 모여서 새로운 것들이 나왔다. 여행만 다니고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여행 자체를 사유하고, 많은 나라의 문화를 공부하고, 철학, 사회학 책들을 읽고, 여행자들의 의식과 삶을 관찰하는 가운데 글 쓸 거리가 계속 나왔다. 그런 것들을 쓰다가 고갈이 되었을 때 뒤늦게 대학원도 갔다.     

      

 내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과거와 달리, 퇴사 후 자유롭고 돈도 버는 프리랜서의 삶을 빨리 확립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는 것. 여행 분야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분야도 그럴 것이다. 이제 반짝이는 좋은 아이디어, 혹은 남보다 먼저 나가는 용기만 갖고 대접받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다 한들, 몇 년 안 가면 많은 사람이 그 길에 진입해서 경쟁이 이루어진다. 그러니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예전에는 여행작가들이 활동하던 무대가 신문, 잡지였다. 원고료, 사진값으로 돈을 벌던 시절이 있었다. 여행기, 가이드북을 써서 돈을 벌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사람들이 아예 글을 안 읽는다. 인터넷에 수많은 정보, 이미지들이 있다. 그리고 1인 방송, 유튜브들이 떴다. 그쪽에서 수익이 나니까 그쪽으로 몰린다. 한동안은 재미 보겠지만 점점 많아지면 거기서 자기를 드러낸다는 것은 지금도 힘들지만,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앞으로의 변동은 어떻게 될까? 글쎄, 인공지능과 결합된 그 무엇이 되려나?


 세상은 계속 변해간다. 여기서 현실적인 돈과 함께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확립도 필요하다. 자유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퇴사 후에 더 좋은 직장을 얻거나, 자기 비즈니스를 하거나, 돈을 어떻게 많이 버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퇴사 후, ‘자유로운 프리랜서의 삶’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자유란 대가를 요구한다. 남에게 얽매이지 않고, 남과의 경쟁에서 어느 정도 살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또 길게 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쉽지 않다.  퇴사하고 나면 당장은 달콤하다. 힘든 사람들은 좀 쉬어야 한다.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달콤한 노래를 항상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년이 잘 되었더라도 곧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 세상 만만치 않다. 앞으로 전개되는 프리랜서의 삶은 직장 생활보다도 더 심한 고통을 줄 수도 있다. 경제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그래서 다시 내적인 세계관, 가치관의 확립이 중요해진다.     

 

 아... 삶이란 얼마나 힘든가? 직장 생활하면 관계의 고통, 프리랜서의 생활하면 경제적인 고통 못지않게 존재의 고통이 다가온다.     


 어쨌든 준비를 많이 하는 것이 좋다. 20년, 30년 전 같다면, “일단 저질러 보세요, 그리고 수습하면서 헤쳐 나가세요”라는 말을 했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려면 독해야 하고, 인생 다 내던지는 기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인가? 그 막막하고 불투명한 길을 내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권유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하더라도. 

    

 어떤 분야를 택하든 미리 준비하고, 경험을 쌓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한동안 버틸 돈도 미리 확보해 놓는 것이 좋다. 그 여유가 없으면, 얼마 안 가 돈 떨어지면 또 허겁지겁 직장을 알아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윤회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자존심 다 내던지고, 삶을 다시 배우겠다는 자세로, 바닥부터 경험하면서 하나하나 배워야 한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돈을 모으고, 체력을 키우고, 준비물을 챙기듯이 그런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 준비는 직장 생활하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인간관계가 싫다? 그런데 그 경험이 앞으로 프리랜서 생활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직장에서는 더러워도 돈은 나오지만, 프리랜서 생활에서는 더럽고, 수모당해도, 돈이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통해, 직장과 구조와 타인을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수양... 뭐 그런 것을 떠나서, 앞으로 프리랜서 생활을 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여행과 글을 택했다면 부단하게 쓰고, 배우고, 경험하고, 관찰하고, 발표하면서 작은 시도를 꾸준히 해야 한다. 글을 쓰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것과 관련된 책도 보고, 남의 말도 경청해야 한다. 또 사진도 배우고, 그림도 배우고(요즘은 그림이 더 대세다), sns도 해보고, 1인 방송도, 유튜브도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매체가 달라지는 환경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고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것을 갑자기 해서 열매를 따 먹을 수는 없다. 몇 년 동안 꾸준히 해 나가는 가운데, 그것을 토대로 책을 내서 홍보를 하거나, 다른 수익 모델을 찾아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온갖 것을 경험하고 상처도 생기지만 길이 조금씩 열리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것들은 직장 생활에서부터도 할 수 있다. 짧은 여행을 갔다 와서 한 권의 책을 낼 수는 없지만 몇 편의 글을 쓸 수 있고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렇게 조금씩 연마를 해야 한다.      

 그 준비가 직장 생활의 피곤함, 권태, 갈등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줄 수도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아,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한 방’에 뭔가를 터뜨려서 팔자 고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유혹의 말을 하면 경계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피라미드 꼴의 상층부에 해당한다.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알고 보면' 수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그 스토리 안에는 온갖 피곤함, 수모, 치졸함, 더러움이 있을 수도 있다. 매스컴을 통해 보이는 회려함을 선망하면 안 된다.

 어쩌면 직장 생활보다 더 힘든 것이 프리랜서 생활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평생 직장 생활을 할 수는 없다. 언젠가, 분명히 나온다. 그 나오는 것을 조금 더 빨리 결정할 수도 있다. 퇴사든, 은퇴든 어차피 길고 긴 고령 사회에서 자신이 자신의 삶을 운영해나가는 시점은 온다.


 그러므로 언젠가 자발적이든, 강요에 의해서든 퇴사는 하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이 삶이라는 장에서 밀려나간다. 인생 자체가 계약직이란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본다면, '나가는 것'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용감해야 한다. 그런 태도와 인생관, 가치관 속에서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있어지고, 그 여유가 소박함을 준다. 좀 없어도, 결핍되어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폼나게 살고, 여행도 하고, 자유롭고, 편안하고, 안정되고... 그런 삶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늘 삶에서 결핍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그 결핍감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노력하고 땀 흘리면 소박하게나마,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나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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