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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Nov 08. 2024

과거 09.

13화.

“끼이..익..” 소현은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휴.. 오늘은 조용히 잠들어야겠다.” 소현은 불을 켜지 않고 방으로 향했다. “어휴. 깜짝이야!”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그녀의 눈에 소파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딸의 시선에 소리를 질렀다. “.. 유나니?” 소현은 딸의 이름을 부르며 거실의 불을 켰다. 밝아진 거실에는 벌겋게 충혈된 눈과 쥐어뜯은 듯한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유나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소현은 딸이 간절히 부탁한 참관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 미안했지만 변명을 늘어놓았다. “로스터리 일이 갑자기 많아져서.. 다들 바쁘게 일을 하는데 나만 쏙 빠져나올 수 없었어.” 자신을 노려보던 유나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분노 가득한 딸의 얼굴을 보며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딸에게 가시 돋친 말을 했다.


"참관 수업이 그렇게 중요하니? 다음에 참여해도 괜찮은 거 아니야? 로스터리가 바쁜데 참관 수업 때문에 퇴근한다고 말하면 직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니? 그러면 승진도 못하고 해고될 수 있어.” 소현은 자신의 분노와 불안을 딸에게 쏟아냈다.


“내가 로스터리에서 해고되면 네가 어떻게 학교를 다니겠니?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 오래전부터 자신의 일을 하찮게 생각하는 딸에게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이제 됐어.” 씩씩거리며 소파에 앉아 있던 유나가 중얼거렸다.


“뭐라고?” 소현은 딸의 중얼거림을 알아듣지 못한 채 다시 물었다.


“다 끝났어. 다 필요 없다고.”


"뭐가 다 끝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과 말투에 소현은 화가 치밀어 올라 딸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 그만 좀 말해!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좀.. 내 부탁 좀 들어주면 안 돼?"


버릇없는 딸의 모습에 당황한 소현은 딸을 멍하니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씩씩 거리며 울먹이던 유나는 금방 울음을 그치고 무표정하게 엄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는 나 혼자 알아서 할게.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세요." 유나는 온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


"아. 하기야. 애초에 저한테 관심이 없으셨죠?" 딸의 비아냥 거리는 모습에 화가 난 소현은 소리를 질렀다.


"너! 어디서 배운 말 버릇이야!" 하지만 유나는 지지 않고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사실이잖아! 엄마가 나한테 관심이 있기는 해? 항상 나는 혼자였어. 입학식도 혼자! 생일에도 혼자! 졸업식도 혼자! 혼자! 혼자! 매일 혼자였다고!”


딸의 절규를 듣은 소현은 당황하여 더듬더듬 말했다. “그건.. 엄마가 바빠서..” 유나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매일 바쁘다. 바쁘다. 로스터리가 바쁘다. 이제 그만 좀 말해! 그렇게 로스터리가 좋으면 아예 거기에서 살아!” 점점 더 유나의 감정은 격렬해졌고 믿고 있던 딸의 원망에 혼란스러운 소현 역시 감정이 격렬해져 딸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질렀다.


“너. 지금 이게 무슨 버릇없는 짓이야! 너 정말 몰라? 지금처럼 엄마가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잖아! 어리광 좀 그만 부려!”


유나는 자신의 고통을 무시하는 엄마에게 분노하여 소리를 질렀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유나는 현관문이 부서질 정도로 열어젖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날 이후로 모녀의 대화는 끝나버렸다.


“끼익..” 낡은 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에 잠겨 눈을 감고 있던 유나는 고개를 돌려 방에 요란하게 들어오는 동생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야! 방 정리 안 하냐? 여기 너 혼자 써?" 여기저기 널브러진 동생의 물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하지만 승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누나를 힐끗 바라본 뒤 자신의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동생에게 화가 난 유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동생에게 다가갔다. "야. 내 말 안 들려? 지금 내 말 무시하냐?" 허리춤에 두 손을 올린 채 동생이 누워있는 침대 앞에서 험악한 표정을 쓰며 말했다. "아씨.. 정리한다고 책상이 좁은 걸 어떡해? 그리고 책을 바닥에 둘 수도 있지.” 승훈은 침대에 누워 답변하기 귀찮다는 듯이 대충 말했다.


그런 동생의 무성의한 태도에 화가 난 유나는 동생을 발로 툭툭 치며 말했다. “야. 당장 치워. 책만 널브러진 게 아니잖아. 입던 속옷까지 보이는데? 썩은 냄새 풍기니까 지금 치우라고.” 자신을 불쾌하게 툭툭 치는 누나에게 짜증이 난 승훈은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 장난하냐? 기분 더럽게 왜 발로 툭툭 치냐?” 승훈은 누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이런 동생에게 지고 싶지 않은 유나는 힘으로 제압하고 싶었지만 이미 남동생은 본인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강했다. 유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됐다." 동생을 뒤로 한 채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하고 나한테 피해 주지 마. 진짜 정신 좀 차려라.” 냉정한 동생의 충고를 들은 유나는 걸음을 멈춘 채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봤다. “노려본다고 무섭지 않아. 그래. 나는 그렇다고 쳐. 네가 뭘 하든 상관 안 하니까. 그런데 진짜 엄마한테 그러지 마라.” 승훈은 차분하게 말했다.


동생의 훈계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유나는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하지만 욕설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유나와 달리 여전히 승훈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요즘 네가 하는 짓거리를 보면 내가 틀린 말을 한건 아닌데?” 그는 유나가 말을 할 틈을 주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불량한 애들하고 어울리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힘없는 애들도 때리고 다니는 주제에. 학교에서 누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파다해.” 유나는 동생의 말을 부정할 수 없어 그저 노려봤다. 승훈 역시 유나를 노려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방 밖으로 나가려 했다.


자신에 대한 소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한 유나는 지금이 아니면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동생이 나가지 못하도록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잠시만.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뭐야?” 승훈은 누나의 질문에 답하기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아 됐어. 모르면 그냥 그러고 살아.” 승훈은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누나를 밀치며 방을 나갔다. 유나는 자신보다 힘없는 애들의 수군거림은 무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지러움 속에서 유일하게 정돈된 책상에 앉아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야. 이번 뉴스 봤어? 성매매 사건?”


“아. 봤어. 협박 때문에 참여했다는 애들이 있다는 것도 충격이야. 그런데 그걸 관리한 지구인들이 우리와 나이가 같다는 점이 조금..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충격이야.”


“맞아. 이번 사건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애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더라.”


“진짜 비참하더라. 나는 지금까지 성매매하는 애들은 단순히 돈 때문에 자발적으로 한다고 생각했어.”


며칠 전 뉴스에서 보도한 미성년 성매매 사건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화젯거리였고 모이기만 하면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야. 저기. 저기.” 신나게 떠들던 아이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수군거렸다. 수군거리는 그들의 시선 끝에는 당당하게 유나가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 사건에 유나도 연루되었다고 하던데?" "진짜? 하긴 덩치들하고 어울리며 다른 애들을 괴롭히니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유나와 그녀의 패거리가 무서워 소곤소곤 얘기했지만, 워낙 많은 아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바람에 대화의 내용이 유나의 귓속으로 들려왔다. 대부분 자신에 대한 욕이 전부였지만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멍청한 놈들. 너희들이 그러니까 중심부로 올라가지 못하고 평생 이런 곳에서 사는 거야.” 유나는 본인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번에도 그놈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소현의 생각과 다르게 유나는 행실이 바른 아이가 아니었다. 집에서는 관계가 소원해진 엄마와 얘기를 하지 않을 뿐이었고 실상은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신분 상승에 관심과 욕망이 강했고 똑똑하며 현실적인 그녀는 돈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부 학교에서 평범하게 규범을 지키고 도덕적으로 살면 평생을 구질구질하게 이곳에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어! 자기 왔어?” 어느새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던 그녀 앞에 선우가 서 있었다. 살로 인해 터질 것 같은 상의 단추를 풀고 의자에 앉으며 유나의 허리를 감쌌다. 그녀는 뒤룩뒤룩 살이 쪄 조금만 움직여도 거친 숨을 내쉬는 그에게 역겨움을 느꼈지만, 아직 그에게 얻어낼 것이 많았기에 참고 또 참았다. 유나는 허리를 감싼 그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수업 끝나고 얘기하자.” 유나의 애교 섞인 말을 들은 선우는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음흉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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