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빈 Apr 29. 2024

지금의 내 가족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이것'

<9화-부모님은 점점 늙어가시지만  당신은 성장해 갈 거예요>

4년간 3곳의 정신과를 다닌 끝에 조울병(양극성 정동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꾸준한 치료로 현재는 많이 회복되었고 스스로를 탐구하고 싶어 심리학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듣고, 느끼고, 생각한 걸 기록하고자 합니다.


21. 스물한 번째 진료 - (23.05.30 화요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학원 커뮤니티가 있는데 거기에 저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왔어요. 제가 수업시간에 어떤 질문을 했는데 누군가가 그 질문에 대해서 '수업시간에 방해 없는 질문을 해서 흐름 끊는거 민폐 행동 아닌가?'라는 글을 올렸어요.”


“수업시간에 어떤 질문을 했어요?”


“지구과학 시간에 지구에 대해서, 대륙에 대해서 배우니깐 그냥 궁금했어요. “선생님 여행을 많이 다니면 지구과학 공부에 도움이 되나요?”라고 물어봤어요. 그리고 천문학과에 가면 지금 배우는 것처럼 천체에 대한 지식을 학습하는지 물어봤고요.”


“00 씨를 지금까지 쭉 보면서 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건요. 00 씨가 현재 여행에 대한, 과거의 경험에 대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아직까지 ‘남들과 다르다’라는 의식이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죠. 마치 ‘내가 한 여행은 남들은 하지 못한 대단한 거야!’라는 생각 말이에요. 그런데 여행은 여행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 손뼉 칠 건 손뼉 치고, 열심히 한건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내가 옛날에 이렇게 여행을 많이 했는데 말이야’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을 거죠? 여행을 많이 다녔고, 많은 걸 보고, 운이 좋았고 열심히 했어요. 그럼 거기서 잘 매듭지으면 되지 왜 그걸 계속해서 질질 끌면서 살아가려 하죠? 현재에 집중하길 바라요.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재에”



22. 스물두 번째 진료 -(23.06.05 월요일)

“선생님 안녕하세요! 드디어 6월 모의고사를 쳤어요. 6월 모의고사는 출발점이자 저를 한번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인데 정말 심란했어요. ‘이게 지금껏 내가 공부한 만큼 나온 성적인가? 이럴 거면 왜 공부 시작했지?’이런 생각이 막 들었어요.”


“00 씨, 지금 우리는 무언가를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지 ‘나는 이만큼 했으니깐 이 정도 결과가 나와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잘못된 사고라고 제가 누차 설명했죠? 빨리 시도하고, 빨리 실패하고 그 실패가 다음의 방향성을 알려줄 거예요”



 24. 스물네 번째 진료-(23.06.19 월요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아버지랑 좀 다툼이 있었어요. 어제 가족들이랑 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가던 길에 수능 관련한 대통령 발언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항상 저는 이 제도에 굉장히 비판적인 사람으로서 이번에도 불만을 표출했어요. 이 대한민국의 교육 제도는 미친 것 같다고, 답이 없는 제도라고. 그러자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아니 그게 싫은데 왜 수능을 준비하고 있냐? 아니면 불만을 가지지 말던가” 저는 또 이렇게 받아쳤어요. “미친 제도에서 탈출하려고!!” 서로서로 의견을 굽히지 않고 끝없는 무한 굴레로 들어서게 되었어요.”


“제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네요. 나중에 새로운 가정을 꾸릴지 안 꾸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00 씨보다 나이가 많고 이번에 새 가정을 꾸린 제가 느끼는 걸 말하고 싶네요. 이전의 가정이 행복하고 잘 안정되어 있어야 지금의 가정에, 지금 내 옆에 식구들에 더 잘 집중하고 내 삶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전 가정 즉 부모님은 이제 나이가 드실 거고 반면 00 씨는 계속 성장해 나가겠죠. 그러면 어느 순간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할 거예요. 돈은 어떻게 쓰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밥은 잘 먹는지.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 두 분이 정말 화목하게 잘 지내고 “이번에 우리 어디로 여행 간다~”라고 말해주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놓일까요. 반면 항상 다툼이 있고 서로 사이가 안 좋고 건강이 나쁘면 얼마나 신경이 쓰일까요.


이걸 00 씨와 아버지 사이에 대입해 보면 이번에도 그런 것이죠. 안 그래도 잘 못 믿겠는데, 아슬아슬하게, 불안하게 느껴지는데 아들이 지금 가고 있는 일에 불만을 표출하니 말이죠. 만약 00 씨가 이번에 수능에 대해서도 “그래도 어때요. 지금처럼 묵묵히 열심히 하면 되죠”라고 했으면 아버지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죠. “약 먹고 꾸준히 진료받으면 괜찮아진대요. 그냥 뭐 하루하루 해나가는 것이죠.” 이렇게 말하는 것과 “하루하루 못 살 것 같아요. 죽고 싶어요”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요?


표현의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00 씨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00 씨가 성인이 된 만큼 부모님도 터치를 하지 않으시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00 씨는 아직까지 그런 신뢰를 한 번도 주지 않았던 것이고요. 00 씨가 잘못됐다고 혼내는 게 아니고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서 이야기해 봤어요. 한번 잘 곱씹어 보면 좋겠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