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빈 May 06. 2024

진단을 내리는 건 의사인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10화-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다 한다는 것>

4년간 3곳의 정신과를 다닌 끝에 조울병(양극성 정동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꾸준한 치료로 현재는 많이 회복되었고 스스로를 탐구하고 싶어 심리학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듣고, 느끼고, 생각한 걸 기록하고자 합니다.


25. 스물다섯 번째 진료 (23.06.26 월요일)


“00 씨는 지금 보면 스스로의 능력을 굉장히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내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현실에서 스스로를 마주할 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서 굉장히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조리고등학교를 갔을 때도,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을 때도, 지금 의학도의 꿈을 꾸는 것도 ‘어 나라는 사람은 단시간 내에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사고로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나 세상 어떤 일이든 시간은 걸릴 수밖에 없고요. 이걸 병적증상으로 ‘조증’이라 부르고요 그래서 지금 의학적으로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 거예요


그리고 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공부가 너무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도 됩니다. 아직 젊으니깐 언제든지 다른 길을 찾아도 되는 거예요. 그러니 나 자신의 생명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26. 스물여섯 번째 진료-(23.06.29 목요일)


“00 씨 제가 누차 이야기하지만 너무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이 안 된다고, 그것이 안 돼서 차선책을 선택해야 한다면 죽어버려야겠다는 건 정말 병적인 생각이에요. 너무나 위험하기도 하고요. 수년간 어떤 성취의 경험이 없으니 성취할 수 있는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시급해 보입니다”



27. 스물일곱 번째 진료-(23.07.03 월요일)


“잘 지냈어요? 어떻게 보냈어요? “


“지난번에 왔을 때 선생님이 조증이라고 하셔서 유튜브, 인터넷에 막 검색해 봤어요. 그런데 조현병 증상이 지금 저의 증상이랑 똑같은 것 같더라고요. 한 주 내내 ‘나 조현병인가?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계속해서 그것들 찾아본다고 공부에도 삶에도 집중하지 못한 거 같아요”


“00 씨 잘 들어요. 일단 지금 조현병 아니에요. 조현병 환자들은 환청과 망상을 동반해야 하는데 지금 환청과 망상은 없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지금 인과 관계가 바뀐 게 있는데 우울과 불안으로 인해 사고가 왜곡된 것이 아니라 지금 사고가 왜곡되어 있는데 그걸 못 받아들이면서 우울과 불안이 생긴 거예요.


그리고 제가 지난주에 종합심리검사를 하자고 한 이유는 정신과 전문의인 저도 자세히 알고 싶어서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하는 건데 지금 왜 스스로를 본인이 진단하려고 해요? 조현병이면 이런 큰 검사도 필요 없어요. 환청과 망상이 동반되면 바로 알 수 있어요. 진단을 내리고 연구를 하는 건 의사인 제가 해야 하는 일이고 00 씨가 해야 하는 일은 공부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공부를 안 하나요? 지금 해야 하는 공부에 충실하기를 바라요.


4번째 심리상담 (2023.03.06 월요일)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불안. 불안이 단순히 자괴감 혹은 우울감만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인류는 불안했기 때문에, 불안할 줄 알았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불안의 부정적인 측면 만을 보지 말고 불안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해요.


불안을 잘 활용한다는 것은 불안을 느끼는 요소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죠. 인간이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행동들을 보이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웹툰, 유튜브, 게임 등에 빠지고요. 하지만 정작 불안을 일으키는 요소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불안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고 계획을 짜는 것이 필요해요. 나는 지금 어디에서 왜 불안을 느끼는지, 그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을 생각할 때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구별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제가 지금 저 도로 위에 달리는 차를 멈춰 세울 수는 없죠. 하지만 공부는 다른 이야기죠. 내가 계획을 짜고, 내가 실행을 하고,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고 나의 책임이죠. 한마디로 내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아까 성적 되는 대로 결과 나오는 대로 학교를 생각해 보겠다고 했는데 이건 스스로에게 무책임한 말이 될 수도 있어요. 스스로를 의도치 않게 느슨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렇기에 최대한 정확하고 선명한 목표를 가지는 것이, 그리고 목표까지의 단계를 세분화하는 것이 목표달성에 도움이 될 것이에요. 갈 수 있는 학교를 검색해 보고 목록화해 보기를 바라요.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가지고 있는 명분이 선명하지 않다고 해서 계획을 뒤엎을 필요는 없어요. 시간이 필요한 거니깐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