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빈 Apr 23. 2024

그들에게서 당신이 원하는 가족의 모습을 봤을 수도 있죠

<8화- 목적과 방법을 헷갈리지 말아야 합니다>

4년간 3곳의 정신과를 다닌 끝에 조울병(양극성 정동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꾸준한 치료로 현재는 많이 회복되었고 스스로를 탐구하고 싶어 심리학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듣고, 느끼고, 생각한 걸 기록하고자 합니다.



19. 열아홉 번째 진료-(23.05.15 월요일)


나는 항상 남들과 달라야만 한다,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는 기분이 든다. 아버지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항상 내게 말했다.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다만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도화선이 될 수 있을까?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 가지고, 더 성장해야 하고, 더 뛰어나야 한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않은 것도, 요리를 그만둔 것도 비슷한 사고와 행위의 패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치즘에 가까운 대한민국 교육이라 생각하지만 그 기저에는 버거움이 깔려있었다는 것을. 어쩌면 벽에 던져져 산산조각 난 조각들이 하나씩 맞추어지고 있는 건가 싶다.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요즘 수험생활이 정말 아무런 자극이 없는 게 좋으면서도 걱정돼요. 제가 원래 살아가던 세상이 아니라 가상의 세상, 인위적인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어느 거품 속에 쌓인 삶이랄까요. 수험생활에서 너무 안정감이 느껴지는데 이런 감정이 드는 게 정상적인 걸가요?”


“지금 생활은 굉장히 안정적인 삶이죠.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학원 갔다가 공부하고 집에 와서 자고 다시 일어나서 밥 먹고 공부하고 자는 일상의 반복, 말 그대로 일상에 변동이란 게 없는 상황이죠. 


종종 보면 수능이나 고시 같은걸 5수, 10수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잖아요. 이 사람들이 정말 간절해서 그럴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죠. 그런데 대부분 이 생활의 이 안락함에 빠져 버린 것이죠. 마치 이 진공의 상태예요.그러니 00 씨도 이번 한 해에 끝내서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기 바랍니다. 지금처럼 약을 먹고 치료를 받더라도 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면,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언제든 다시 옛 기질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에 마주치면서 직접 스스로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거지, 이런 텅 빈 상황 속에서는 스스로를 찾고 대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요즘 행복이란 게 무엇일까를 종종 생각해요. 특히 어머니를 보면서요. 어머니는 맛있는 빵과 향기로운 커피가 있으면 너무 행복해하시더라고요. 이런 삶의 만족감은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저도 남들이 좋다고 하는, 선망하는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정말 저로서 온전하다고 느낄 때, 제 자신이 가장 충만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병원에서가 아니에요. 어머니가 맛있는 빵과 커피에 삶의 행복을 느끼시는 것처럼 저는 일요일 휴무날 향기로운 커피에 좋아하는 미드 볼 때 참으로 행복해요. 00 씨가 지금까지 고통스러워하고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했던 건 결국 불안해서 출발 했죠. 그 불안은 끊임없이 비교 대상을 찾고 자학을 빚어내고요. 삶의 충만함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어요. 마치 00 씨가 글을 쓰고 사색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행복해하는 것처럼요.”



20. 스무 번째 진료 - (23.05.22 월요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 마음이 좀 심란했어요. 학원 선생님이랑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거든요. 원래 자주 질문하고 친한 선생님이었는데 농담을 했는데 불편해하시더라고요.”


“혹시 괜찮으면 문자 내용을 보여줄 수 있어요? (쭉 읽어보시더니) 00 씨. 제가 남들에게 물어보지 말라고 했죠? 정답이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왜 또 저기 가서 물어보고 있어요? 저한테 막 안 물어보길래 불안이 괜찮아졌는지 알았는데 다른 데서 계속 묻고 있었던 거네요.


지금 이걸 왜 물어보고 있는지 알아요? 본인이 시행착오를 겪고 이 방법이 나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 계속해서 시도해보고 수정해야 하는데 바로 가시적인 결과가 눈앞에 떡하니 나오길 기대하니깐 계속해서 나한테, 이 선생님한테, 타인한테 물어보고 있어요. 중요한 건 지금 당장 결과를 보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주어진 것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결국 하루하루가 쌓여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거지, 결과를 보고 하루하루 쌓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정답은 없어요. 본인이 계획하고,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스스로 찾아나가야 해요. 학원에서 모의고사 치죠? 그렇게 시험 치면서 중간중간 스스로를 점검하면서 다음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지 남한테 물어서는 방법이 없어요. 이제 좀 그만 물어보고 그 시간에 공부에 좀 집중해요! 제발!”


3번째 심리상담 (2023.02.27 월요일)

"방향성을 찾으면 일정 순간부터는 그 방향성을 강화해야 해요 00 씨는 왜 독일에 가려고 하나요? 왜 의대에 가고 싶나요? 왜 공부를 하려고 해요? 지금 00 씨의 삶에서 중요한 목적성은 무엇이에요?  아까 독일에 가고 싶은 이유가 독일에서 만난 가족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다시 행복을 느끼고 싶다고 했죠?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문장의 전재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 있어요. 지금 행복하면 유지를 원하지 변화를 의미하는 단어를 택하지는 않을 것이니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독일에서의 시간이, 독일 가족에서의 모습이 어찌 보면 00 씨가 그리고 있는 가정의 이상향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요. 00 씨가 되고 싶은 아버지, 만나고 싶은 아내, 만들고 싶은 시간과 공간이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이죠. 정답은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게끔 도와주는 것이니깐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목적과 방법을 종종 헷갈려요. 목적이 뚜렷하면 방법, 즉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부차적인 거예요. 한국에서 워싱턴까지 어떻게 갈 수 있나요? 비행기 타고 간다고 대답하겠죠? 이처럼 방법은 지금껏 자신이 쌓아온 배경지식과 경험으로  웬만하면 다 찾아내요. 하지만 목적지는 스스로 찾아야 해요. 그러니 지금 어떤 꿈을, 어떤 모습을, 어떤 삶을 그리고 있는지. 무엇이 중요한 사람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봐야만 해요.


무엇을 하든 다 좋아요. 이건 선과 악의 기준이 아니에요. 다만 독일에 가든, 한국에 있든 내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차리고 더 챙길 수 있는 상태로,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더 잘 대해줄 수 있는 상태로 시도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죠. 그리고 목적성을 찾아가기 위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앉아서 상담하고 있는 것이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