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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Feb 10. 2018

이 모든게 독감 탓이다

한껏 센치한 채 써내려간 일기

이 모든 게 독감 탓이다. 


직전 새벽까지만 해도 모든게 순조로웠다. 부부는 서로에게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고 격려했고, 아이들은 티격태격 별 것 아닌 일들로(그러나 저들에게는 무척이나 별거인 사건들로) 의리를 다지며 끊임없이 아이다운 에너지를 발산해 내고 있었다. b형 독감의 여파로 공동육아가 급히 방학을 맞았지만 흔쾌히 두 아이를 돌봐주겠다는 친구가 있어 예정돼 있던 스케쥴도 무리 없이 진행되려던 찰나였다. 새벽녘에 시작된 큰 아이의 기침 소리가 꺼림칙하더라니 점점 열이 오른다. 이미 가까운 친구 두 명이 독감 확진을 받은 터라 이 상황에 영아가 있는 친구 집에 두 아이를 맡기고 일 하러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남편이 작은 아이를 돌보고 내가 큰 아이와 함께 소아과를 찾았다.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이 있는 집에 독감일지도 모르는 큰 아이를 보낼 수는 없었기에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알겠다"고 하면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상치 않게 본인에게 주어진 책무와 무엇보다 그로 인해 헝클어진 스케쥴이 짜증스러웠을 것이다. 남편이 급히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가 와주시기로 하고 그 전까지 남편이 나 대신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다. 나였어도 비슷하게 반응했을거라 이해하면서도, 지난 새벽녘까지만 해도 나를 응원한다던 남편이었기에 '쳇. 응원한다더니 막상 자기 스케쥴에 차질이 생기니 짜증스러운가보군. 나는 지난 5년간 수도 없이 겪은 일인데.' 싶어 씁쓸했다.  

 10시까지 국회 행사 일정에 맞춰 도착하려면 21키로가 넘는 큰 아이를 안고 냅다 뛰는 수 밖에 없다.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 늦을까봐 조바심이 나고 그렇다고 힘든 아이를 재촉할 수도 없어 큰 아이를 다시 들쳐 안고 뛰었다. 

안기라고 손을 내미는 나에게 아이가 말했다. "고마워, 엄마."


그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울렸다. 그게 별거라고 고맙다니. 벌써 이렇게 컸나 싶어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애틋하다. 언제까지고 힘껏 안아주고 싶었지만 어쩌면 이내 곧 네가 나를 안아주겠단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 싶어 묘하게 아쉽기도 한 모순된 감정...


힘겹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결국 아이는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 40도 고열과 두통, 복통을 호소하는 큰 아이와 천방지축 끊임없이 창의적으로 사고를 만들어내는 18개월 둘째 아이를 돌보는 하루가 너무 힘에 부쳤다. 그 다음 날 결국 나도 b형 독감 확진을 받고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 축 처져 누워 있는 내게 아이들이 해맑게 달려든다. 

"엄마! 왜 아빠 오기 전까지는 기분 좋아보였는데 갑자기 힘이 없어졌어?"

"엄마! 지금 아빠는 준후 보느라 바쁘고 나는 심심해. 엄마가 나랑 놀아주면 좋겠어."


"후야. 엄마도 지금 후랑 놀고 싶은데. 후처럼 엄마도 지금 많이 아프거든. 내일 하루종일 정후랑 준후를 혼자 돌봐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쉬어두지 않으면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아. 오늘 밤에는 아빠랑 놀고 내일 엄마랑 놀자."

그 얘기를 듣고선 큰 아이가 나서서 둘째를 타이른다. 

"엄마. 그럼 내가 등 주물러줄까?"

"엄마. 심심하진 않아?"

"준후야. 엄마 아픈데 자꾸 올라타면 엄마가 더 아파져."


자꾸만 내게 오는 둘째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가고, 내 마스크를 챙겨주고, 제 마스크를 챙겨쓰고, 아빠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한다. 


나도, 아이도, 남편도 저마다 최선을 다 하는데
우리 모두 힘에 부치고
한껏 날카로워져 서로를 할퀴게 되는 건, 
이 모든게 독감 때문이다. 


시름 시름 앓는 소리가 나오는데도 옆에서 잠든 둘째가 깰까봐 소리를 내지 못하고 울며 밤새 뒤척였다. 둘째가 깨면 누군가는 아이를 돌봐야 하고 그 소리에 아픈 큰 아이까지 깨면 모두가 힘들어지니까. 


마음껏 혼자 아프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는 노릇.  '어차피 남편 출근하고 아이들 아픈 날에는 나도 늘상 하는 일인데.' 싶으면서도 본래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해야 하는 남편에게 괜시리 미안하다. 그렇다고 마음껏 아플 자유도 없는 나의 상황.  


열나는 아이를 안고 냅다 달리는데 
고맙다던 아이의 한마디가 계속 뇌리를 울린다.
아이가 내게 이어 말했다.
"엄마. 엄마가 매일 회사가는 친구도 있다고 했잖아.
그럼 이렇게 매일 뛰어야 하는거야?
힘들겠다"

"후야.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사회가 우리에게 시간을 주지 않아서지.
그걸 바꾸기 위해 엄마가 정치하러 가는거야."
"그래도 우리 엄마는 매일 일하러 안 가니까 좋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답을 해주어야 하는 걸까.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아이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누군가는 돌려 말했다. 

유독 아이에게 애틋한 것 같다고. 


맞다. 나는 자식 덕후. 

"엄마 오늘은 정말 멋진 날이었어. 내가 처음으로 치즈를 한 번에 떼어낸 날!"

"엄마.
오늘은 내가 처음으로 동그라미를 혼자서 예쁘게 잘랐어."
란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뭉클하고, 

가능한 오래도록 이 언저리에 머물러 있고 싶은
내 욕심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자랄 것이고, 우리에겐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할테고 그럼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할테고, 나 역시 엄마가 아닌 인간 조성실로서의 내 자리를 더욱 더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 사실들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아이들과 뒤섞인
나의 오늘에 
집착한다. 

가능한 오래도록 이 상황에 머물고 싶다. 


힘들고 벅찬 시간이지만
이 시간의 소란스러움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다.

아마 많은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너무 힘들어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갔으면 싶다가도, 독감 한 번 마음껏 앓을 수(?) 없는 오늘의 상황이 답답하기 그지 없다가도. 한 켠으론 이 아름다운 시절을 더 뜨겁게 껴안고 더 자세히 맛보고 싶단 열망에 슬퍼지기도 할 것이다. 


나의 이름과 엄마의 이름이 병행 불가한 현실 속에서
엄마란 이름 없인 더 이상 나를 설명할 수 없게 된 나,
그렇다고 엄마로만 살기엔
나 자신도
뜨겁게 사랑하는 나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 

어느 세계에도 제대로 귀속되지 못한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 

한껏 센치해질 때면 몸이 흠뻑 젖을 때까지 아이들과 몸놀이를 하거나

사진첩을 열어 한 장 한 장 아이들의 흔적을 더듬는다. 

내게 주어진 역할과, 나의 역량 사이의 격차가 현격히 드러날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고군분투 해왔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그간의 우리의 기록들, 어쩌면 나의 오답노트이기도 한 육아일기들을 남몰래 꺼내 들춰보기도 한다. 

 

가끔은 그런 상상도 해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공간을 초월하는 상상. 문을 열면, 아이들로 북적대고 아이들과 뒹굴던 아름답고 분주하던 그 때 그 시절, 육아기의 한 순간으로 뛰어들어갈 수 있는 상상. 반나절 한나절 마음껏 뛰놀다 다시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혼자만의 동굴에서 충전하는 상상. 그러다 다시 아이들과의 소란스러움으로 뛰어들어가는 상상.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삶은 쉼 없이 지속되고 지속적으로 분주하다. 

하여 내게 허락된 이 시절의 기쁨 역시 손 쉽게 잊혀진다. 너무 가볍게 놓치고 만다. 순간 순간 그 사실이 참 아쉽다. 


그게 아쉬워 악착 같이 글을 써 왔는데, 어느 순간부턴지 그 조차도 마음껏 하지 못했다.


오늘은 애써 고갈된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하고자, 몇 글자 끄적여보는데 그조차도 쉽지 않다. 몽롱한 정신 탓인지 센치한 기분 탓인지 무엇에 대해 쓰고 싶어 자리에 앉았는지조차 희미해져버린 채로 한참을 방황하고 있다.


에잇.

이 모든게 독감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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