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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Oct 05. 2017

아들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20170316

아들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엄마가 사직찍을 것만 같을 때 어떻게든 브이해주려는 노력이 고맙고
흔들리거나 눈 감아 잘 보이지도 않는 사진조차 반갑고
늘 뛰어다니느라 심령사진만 죄다 찍히는 모습에도 웃음이 나고
동생 웃겨주려 온 몸을 던지는 열정에도 눈물이 찔끔난다.
동생과 그네타는 엄마 옆에서 "엄마. 이것 봐봐. 나 닭다리 하는 중이야!"하는 목소리도 넘나 사랑스럽고
사진만 봐고 줄곧 노래를 흥얼거렸구나 싶은 모습들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엄마 다칠까, 우리 엄마 얼마나 잘하나 걱정하고 때론 응원도 하는 뜨거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내 막춤을 괴상스럽다 타박하면서도 같이 어울려 흔들어줄줄 아는 흥겨움에 고맙다.  
 
"엄마 엄마!" 혼자 문 닫고 비밀스레 똥싸던 정후가 나를 부른다. 문을 빼꼼 열고 고개를 들이밀자, 사뭇 진지한 얼굴로 한다는 말이.
"엄마. 그거 알아? 범고래가 가시복어를 삼키면 심장이 독에 찔려 죽는대."
그래놓고선 다시 온 기운을 모아 제 볼 일에 집중한다. 이젠 나가달라는 손짓과 함께.
아침 볼 일 보러 뒷간 갈 때마다
"엄마. 어디 있을거야? 멀리 있을거면 문 닫고 앞에 있을거면 문 열게~"하며 기왕이면 제 가까이 있어주길 내심 비취면서도 응가냄새에 엄마가 괜찮을지 걱정하고 배려하는 매너도 그리울 것 같다.  
 
그 말이 그렇게 좋았다.
"엄마. 그거 알아? 가시 복어가 어쩌고 저쩌고."
이 생각 저 생각 한참을 하다가 불쑥씩 내뱉는 말들. 때론 맥락없이, 무척이나 진지하게. 그러다가도 영락없는 다섯살로 돌아가 우리를 뒷목 잡게 하거나 웃겨 죽게 만드는 아이의 천진함을, 할 수만 있다면 고이고이 접어두고 넣어두고 싶다. 내 기억에서조차 흐려지고 사라질까 두렵다. 그 질감이 생생했던 우리의 순간들이 마치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들마냥 신기루로 그렇게 날아가버릴까 두려워 적는다.  
 
자식이 부모 마음을 알지 못하듯
부모 역시 자식 마음을 절대로 모른다.
이 작은 아이에겐, 나의 형편없는 면모조차 얼마나 절대적일지 그 힘의 세기를 나는 잘 모른다. 아이와 힘겨루기를 하다가고 문득, 이 아이에게 나란 세계가 얼마나 절대적일까 싶어 미안해진다. 어쩌면 힘을 겨룬다는게 처음부터 어불성설일지고 모르겠다. 아이에게 나는 전부고, 나에게 반항하는 순간, 나를 밉다하는 순간, 내 복창을 터지게 만드는 모든 순간 마저 아이는 나의 사랑을 기다린다. 더 넉넉한 바다가 되어주기를 더 넉넉한 하늘이 되어주기를..
 
열두시 다된 시각 아이들을 겨우 재우고 부엌에 섰다. 환풍기를 켤 때마다 대체 렌지 위 전등은 왜 있는건가 싶었는데 비로소 그 용도를 알았다. 잠든 가족을 위해 요리할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음을. 소등하고 누워 곤히 자는 아이들을 위해 렌지 위 불을 켜고 요리를 한다.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뒤척이다 깬 둘째에게 젖을 물린다. 그러다 나도 함께 잠에 들었다. 아침이 시작되고 나를 흔들어 깨우는 큰 아이. 둘째 아이 이유식, 빈혈약을 먹이고 큰 아이 밥을 먹이고 내가 씻고 밥먹고 나와 아이들 옷을 입혀 공동육아에 함께 등원하든지 아이를 보내든지. 언제나 바쁘고 정신없는 아침. 아들의 환대를 기대했던 오뎅국과 시금치는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고, 그나마 먹던 된장국의 냉이 마저 뱉아내기 시작하는 정후.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준후의 모래시계가 다하기 전에 정해진 양을 다 먹여야한다는 의무감에 불타는 나와, 순수하게 즐겁게 밥상 대화에 불붙이는 정후. 요즘 큰 아이는 늘 같은 질문을 한다. '몇 살'에 대한 질문과 '누가 더 힘이 센지'에 관해. 하루의 상당시간을 자기가 몇 살 되면 준후가 몇살이고 사촌누나는 몇 살이고 친한 형은 몇 살인지를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매와 독수리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나는 이름조차 몰랐던 메갈로돈(멸종한 상어)과 백상아리와 범고래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있다. 십삼층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십사층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그럼 이번엔 십사층에서 떨어지는데 바닥에 못 두개가 박혀 있었다면 어떻게 되는지. 이런 류의 질문들. 삼십여년간 거의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질문을 그것도 때때로 계속 겹치는 질문들을 계속해나가면 솔직히 말해 지루하다. 아들과 나눴던 달콤한 이야기들, 하루의 희노애락과 깊은 감정 숨겨진 생각들에 대한 대화는 점차 줄어가고 힘과 과격함과 경쟁과 싸움이 난무한 대화가 줄짓다보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진다. 이왕 있으면 아빠가 같이 있을 따 집중해 밥을 다 먹었으면 좋겠는데, 결국 이 얘기 저 얘기하다 실수로 식판까지 엎고 말았다. 그게 그렇게 화가 났다. 꾹꾹 눌러뒀다 결국 폭발했다. 안되는 줄 알면서 말로 몰아세웠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네가 얼마나 잘못한건지, 내가 왜 화를 낼 수 밖에 없는지....떼쓰며 울었다면 덜 미안했을까. 나를 붙잡고 "엄마. 너무 미안해. 진짜야. 실수였어. 그래도 미안해. 힘들게해서.."란 아이 말에 뒤돌아 울었다. 아.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삼켰어야 했다.
"아침 내내 밥 먹는데 집중도 안하고 똑같은 질문만 계속 하더니. 결국 엄마가 잠 못자고 힘들게 해 놓은 밥까지 다 엎었다."고 퉁을 주는게 아니었다. 대충 상황을 마무리 짓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씻고 씻기고 입고 입히고 또 먹이고, 오늘은 공동육아 교사도 하는 날이어서 회의하고, 밥 먹이고 설거지하고 씻기고 수업하고 기저귀 갈고 또 먹이고 동네 한바퀴를 돌고 젖먹이고 장보고. 너무 피곤해 동생 유모차에서 잠든 정후를 밀고 준후는 아기띠에 안고왔다. 잠든 정후를 눕히고 준후를 재우는데 문득 아침 그 장면이 떠올라서 미안하다. 오늘 하루 사진을 돌려보며 잠든 아이를 바라본다. 콩나물 시루처럼 쑥쑥 커가는 아이. 준후보다 작았던 정후가 어느새 내 반절보다 더 커졌다. 내 힘으론 오래 안지도 못할 정도로 커버린 아이. 세월이 흘러 반가우면서도 세월을 붙잡지 못해 아쉽다. 가끔은 피터팬의 세계처럼 아이들과의 이 시간이 오래오래 계속 되면 좋겠다.  
 
"엄마 그거 알아?", "엄마 누구랑 누구랑 싸우면 누가 이겨?"하며 질문해 오는 아이 모습이 그리 오래지 않을 것 같아 벌써 아쉽다.
"엄마 저기엔 뭐라고 써 있어?"하며 표지판 글귀를 내게 읽어달라는 순간들도 얼마 안 가 추억 속에만 존재하겠지.  
 
더 이상 똥 싸다 나를 불러 말 걸지 않을거고
더 이상 표지판 글씨를 읽어달라지 않을거고
더 이상 오늘이 몇요일이냐 묻지 않을거고
더 이상 생일까지 며칠 남았느냐 되묻지 않을거고
더 이상 오늘은 누가 선생님인 날이냐고 묻지 않겠지.
더 이상 자기 비밀을 내게 말해주지 않을거고
더 이상 오늘은 누구옆에서 잘 지 고민하지 않을거고(엄마 아빠 중 누구 옆에서 자 줄지)
더 이상 엄마를 가운데 두고 동생과 다투지 않을거고
더 이상 아빠가 먼저냐 자기가 먼저냐 묻지 않겠지.
더 이상 멸종한 상어 얘기도 육식공룡 초식공룡 이름도 알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공룡 얘기도, 옥토넛에서 카봇에서 봤던 주인공들의 웃긴 이야기도 내게 전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누가 더 센지 언제쯤 제 나이가 열 살이 될지, 그럴 때 준후 나이는 몇살이 되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묻지 않을거다.
더 이상 오라오쥬스(오레오쉐이크)와 킹가조이(킨더조이) 하나 사달라며 딱 하나만 사 달라며 윙크하지도,
드디어 만화 네 편 보는 화요일이 왔다고 춤을 추지도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동시에 나와 같은 책을 읽을 일도 없을테고,
레고 좀 도와달라 그림 좀 그려달라 조르지도 않을거다.
맛 없는 내 요리를 기다리지도 않을테고 어쩌면 우리 엄마 요리 하나는 정말 맛이 없었다고 할 지도 모른다.
아침에 눈 뜨자 마자 만지고 안고 말 걸고 엉덩이를 닦아주고 씻겨주고 옷 입혀줄 그 날이, 나와 같은 걸 먹고 같은 걸 보고 같은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할 날이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비밀이라고 꼬셔도
더 이상 문 열어주지 않는 시간이 올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때때로의 내 짜증과 신경질에
과감히 맞서고 부당하다 외칠 날도 올 것이다.


마지못해 가족 모임에 따라 나서고
뒤돌아 친구들과 엄마 아빠에 대한 불만을 불꽃처럼 쏟아놓는 순간도 많을테고.
오늘처럼 여전히
우리 서로 부족해 날카롭게 부딪히곤 뒤돌아서는
쓰다 참 쓰다 세월이 흘러도 아직도 쓰다 하며 언제쯤 고질적인 부모 자식 관계 문제에서 자유할지, 언제쯤 엄마가 잔소리를 멈춰줄지, 언제쯤 엄마가 저를 어른으로 대해줄지 답답해 하는 날도 올 지 모른다.  
 
인생이 야속한건
되돌릴 수 없는 때가 되어야 지난 시절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되기 때문이리라.  
 
때늦어 후회않도록
아쉬워말도록
 
사랑 할 수 있는 이 때
더 뜨겁게 사랑해야지 싶다.  
 
아이가 내 사랑을 절대로 모르듯이
나도 아이 마음을 절대로 모른다.  
 
이제 제법 커버려 서운해지는 순간순간에도
이 아이가 얼마나 간절함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내 사랑 내 관심 내 따뜻한 말과 눈빛을
바라고 있는지 나도 다 모른다.
그러면서도 마치
내 사랑만 완전한 것처럼
나만 사랑을 주고 있는 것처럼
나는 아이를 충분히 보듬고 있는 것처럼 자신한다.  
 
그 말이 그렇게 좋았는데.
엄마 그거 알아? 가시 복어를 고래상어가 먹으면 심장에 독이 찔려 죽는대.  
 
잠든 아이를 바라보모
내게 말 걸어 주는 아이가 그렇게 고맙고 소중했는데. 한다.
아침 네게 했던 실수, 미안해.
별 거 아닌 걸로 미안하게 해서 미안해.  
 
며칠 전이었다.
공동육아에서 한껏 들떠 뛰어다니던 두 아이를 큰 소리로 제압했다. 마음에 걸려 밥먹기 전에 따로 두 아이를 불러 안아주었다.  
 
그 날 밤 잠들기 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후에게 물었다.
"정후야. 엄마가 아까 왜 OO이랑 정후를 따로 안아줬는지 알아? 소리 높인 거 미안해서. 좋게 말해줄걸."
그보다 며칠 전 정후가 뜬금없이 내게 따로 부탁을 해뒀던 뒤라 더 마음에 걸렸다.
"엄마 있잖아.(정말 뜬금없이) 엄마도 그럼 앞으로 집에서만 화내고 밖에선 내지 말아줘. OO이모처럼..." 언제나 차분한 OO이모처럼 엄마도 그렇게 부드럽게 말해주면 좋겠단 말에 OO이모가 이렇게 답했던게 이미 몇 달도 더 지난 뒤였는데 말이다.
"정후야. 흐흐흐. 사실 이모도 집에선 화 많이 내. OO이 형이랑 OO 삼촌은 알지. 남들은 몰라도." 갑자기 그게 생각 났는지 내게 진지하게 부탁을 했다. 알겠다 했다.(물론 나는 화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사실과 논리 중심으로 단호하게 말 할 때 T인 나와 달리 나보다 F에 가까울(MBTI 기준) 정후가 그걸 화낸다고 느끼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거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 생각이 나서 부연했다.
"후야. 엄마가 사실 노력하고 있거든. 정후가 부탁도 해서 더더욱. 부드러운 톤으로 천천히 말하려고. 그런데. 엄마도 안될 때가 많아.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랬더니 후가 바로 받아쳤다.
"엄마. 괜찮아. 나도 그래서 엄마가 좋아. 나도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 돼더라. 밥 안 흘리고 먹는거. 괜찮아. 실은 나도 노력중이야."
놀랐다. 귓등으로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말을 귀담아 티도 안내며 홀로 애쓰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부끄러웠다. 아이 마음을 꽤 알고 있다 자신하는 내가.  
 
너 듣고 있구나.
너 노력하고 있구나.
나만 혼자 하고 있는게 아니었구나.  
 
밥을 통 안 먹어 혼났던 날.
친구들과 비교 당했다 느꼈는지 정후가 울먹였다.
나 큰 상추도 먹었는데!!
엄마가 없던 날 내가 일등 한 날도 많았는데!!
엄마 미워 나빠.
안 놀거야.
엄마도 그럼 다른 이모들보다 야채 더 못 먹어.
엄마가 제일 못 해.
어때, 기분 안 좋지?내 기분도 똑같아.
나도 기분 나빠.
엄마가 이모들 중에 제일 못 해. 흥. 엉엉엉.
난 단지 5세 기준이 알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 중에 정후처럼 반찬 가려먹는 친구가 또 있냐고 물었을 뿐이었다.
슬퍼하는 아이가 가여웠다.  
 
이 아이가 내게 바라는 사랑 결국 다 채워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줄 수 있는 한 최선을 주자 한다.  
 
변신로봇 도와달라는데 결국 못해줘 울다 잠든 아들. 재워놓고 나와 로봇을 변신한다. 소파 위에 올려놓고 아들의 기상을 기다린다.  
 
부족하지만 이게 내 최선이었다 하면서.
훗날의 아들에게 젊은 날의 엄마가 연서를 남긴다.  
 
혹 우리가 없을 때라도
누군가를 책임져야할 어른이 됐을 때 언제든지
이 날의 우리사랑 기억하며 다시 힘내라고
웃음지라고 기운내라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남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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