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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Feb 03. 2020

엄마. 나에게도 엄마가 필요해

그럼 아무렴 내게도 네가 필요한 걸

어젯밤이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 양팔에 두 아이를 안고 있던 참이었다. 이제 막 다섯살이 된 작은 후에게


"뚜야.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는 네 편이야.

뚜가 아플 때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화가 났을 때도, 실수할 때도.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겠지만 혹시라도 뚜가 큰 잘못을 하게되더라도. 엄마 아빠는 뚜 편이야. 만약 누군가를 크게 다치게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순간적으로 너무 욕심이 나서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거나, 정말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혹 사람을 죽게 하는 일이 생기게 되더라도. 엄마가 네 편이라는 걸 잊지 마."


그러자 큰 아이가 거들었다.

"그럴 땐 엄마에게 말해야지. 숨기면 안되고.

왜냐면

엄마는 우리 편이고 우리를 도와줄거거든. 어떤 상황에서든"


물론 잘못된 행동은 해서는 안되는거라고.

그렇지만

정말 정말 노력했는데도 실수를 하거나

혹은 책임지기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도 엄마가 혹여 화날까봐 걱정말라고 이야기했다. 아이가 웃는다.


며칠 전엔 뜬금없이 혼자 (자)부심 느껴하며 으스댔다.

"우리 엄마는 내 발냄새도 좋아해주잖아. 그치 엄마?"


해야 할 일들에 비해 주어진 시간이 작을 때,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비해 내 역량이 작다고 느껴질 때,

이루어내고 싶은 목표보다도 내 한계가 더 크게 보일 때


마치 내 자신이

모래주머니를 차고 물 속을 걷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언제나 변함없이 스스로 빛이 난다.

내 컨디션과 상황과 무관하게 영롱하게 제 몫을 살아내주건만.


그럼에도 가끔은 엄마란 사실이 버겁게 다가온다. 쉬지 않고 달리는데도 아이들도 일도 나 자신도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 그나마 힘겹게 지속하고 있는 이 내 저글링이 자칫 작은 실수에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불안.


어쩌면 나는

아이들이 나를 떠나버린 후 홀로 남게 될 때,

그 때의 나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몇 주전이었던가.

그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던 큰 아이가

하루 아침에 글자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운전을 하고 아이들은 뒷 자리에 앉아 어김없이 쫑알쫑알 저마다 할 말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큰 아이가 작게 읊조다.

500, 마포구청....

"엄마 여기서 500걸음을 가면 마포구청이 있다는 뜻인가봐"


깜짝 놀란 내가 되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아이가 의연히 답했다. "저기 간판에 써 있어"


수 년을 이 곳에 살아도 단 한 번도 자각하지 못했던 표지판. 그걸 아이는 읽고 있었다.

그리고 더듬더듬 그러나 막히지 않고 온갖 간판을 읽어댄다.


아이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고 반가워하면서도 내심

한켠 불안이 엄습했다.

이 아이가 더 이상 나와 같은 렌즈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직관적으로 와 닿자 조바심이 났다.

아이들이 나를 더 이상 지금처럼 찾지 않을 때에 나는 과연.

아이들에게 매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서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희들 때문에 나의 젊음을 기회를 커리어를 포기했노라며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에 태어나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이

아이를 낳고 기른 일이었다 자부하면서도.

그럼에도 엄마란 이름에 밀려 86년생 조성실로서의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겠다 다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나도 아이도 함께 지켜야 우리 함께 행복할 수 있기에.


며칠 전엔 새벽에 자다 깬 큰 아이가 엉엉 울었다.

"엄마도 일 그만둬"

"엄마. 이미 국회 그만 뒀잖아."

"아니. 그거 말고. 국회 말고 정치 그만 둬. 다른 이모 삼촌들에게 하라고 해"

...... 무어라 말해야 하나

후가 힘들었구나. 엄마가 일하러 가는게 싫구나.

그치만 후야. 엄마들이 직접 하지 않으면 누구도 어린이들에게 큰 관심을 안 주더라. 스쿨존에서 차를 안 세우고 달려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썩은 감자가 급식으로 나와도 다들 문제라고만 하지 누구 하나 나서서 대신 싸워주진 않더라. 그래서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서는거야"

그간의 활동을 보아 온 아이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더니  이어 외쳤다.

"그럼 엄마. 나 학교 가는 시간에만 정치해.

.

.

.

왜냐면 나한테도 엄마가 너무 필요해. 나도 엄마가 필요해"

그럼 그럼 아무렴 아무렴. 말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짠했다.


아무렴 아가야.

엄마도 그렇지.

게 엄마가 필요하듯

사실은 엄마에게도 네가 필요해. 너희들이 필요해.


그 시간을 지키고 찾기 위해,

엄마가 정치를 한다는걸

아이는 알까.


언젠가 우리 함께 그 이야기 도란 도란 나누며

웃을 날 있기를.


적어도 너희에게만큼은

우리 엄마, 참 멋지다.

인간적으로, 우리 엄마 참 좋다.


그 한 마디 들을 수 있다면, 바람이 없겠다.

그 날을 향해 때로 흔들리고 실수해도

멈추지 않고 살아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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