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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Oct 20. 2020

조금 더 느리게 걷기

악착같이 육아일기, 다시 시작합니다.

세상이 증명해주지 않는 내 시간들을

스스로 지켜내고 싶어서 ...

아이를 키우는 내내 기회가 닿을 때마다 기록을 남겼다.


현실의 벽이 압도적으로 나를 짓누를 때

아이들로 인한 행복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때

그 모든 순간을 단 한 자의 단어만으로라도

남겨 놓고 싶었다.


왜였을까.

나는 왜 그리도 기록에 집착해왔나.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세월이 지나면 옅어질까

그 모든 기록들을 어떤 것들보다 소중하게 다뤘던 내 마음 이면엔. 어쩌면 두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훗날 이 때의 온기. 그 생생한 감각들을 추억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이 

힘에 벅차고 가슴 벅찬

이 양가적 시간이

머잖아 끝날 거란 사실에

조바심이 났다.


그런 상황들을, 그 순간의 마음들을
도저히 형용해 낼 재간이 없어
자주 애가 탔다.


세상도 아이들도
전업모로 분투해 온 나의 시간들을
기억해내지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찬란하고 가열찼던
사랑의 시간들을, 그 유효성을

증명해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런 기록을 남기는 와중에도 늘.

아이들과는 연결되지 않은

나만의 오롯한 정체성을

더 또렷이 붙잡으려고 애써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

.

2018년 11월 13일의 일기.


아마도 이 글을 쓰다가, 아이가 잠에서 깨 뒤척였거나 아이를 하원 하러 갈 시간이 되었거나, 업무상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날짜를 헤아려보건대 비리 유치원 활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때로군.


그렇게 마무리되지 못한 채 메모장에 남겨진 글.


우연히 이 메모를 꺼내 읽는데 풋 하고 코웃음이 났다.

구구절절 마치 방금 막 내 마음에서 꺼내 정렬해놓은 것만 같아서.

덧, 그 당시 잠도 제대로 못 자던 시절인데 그 와중에도 나는 내 마음 한 조각을 애써 글자로 남겨놓았구나 싶어서 웃었다.


언젠가 여성주의 관련 발표 자리에서 "우리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란 주제로 정치하는엄마들 활동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덧붙여 내가 정치하는엄마들로 살게 된 연유와 방향에 관해, 생애사적 관점에서 풀어놓은 자리이기도 했다.


"저는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가 되기 이전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록하려고 애써왔습니다. 그야말로 '악착같은 육아일기'였죠.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한 손으로 써 내려가기도 했고, 도저히 기록할 틈이 나지 않을 때에는 강박증이 있는 사람처럼 단어만이라도 휘갈기거나 그 짧은 문장들을 굳이 녹음해놓기도 했습니다. "


그때는 몰랐지만 뒤 돌아 생각해 보니 저는,

제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증명해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유명한 카피 중에 '엄마라는 경력은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라는 말이 있잖아요.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나의 분투를,

이 치열한 일상을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온갖 종류의 노동에 대해

무엇보다 찰나에 숨겨진 희열과 번뇌에 관해


적어야 하겠구나. 싶었던 거죠.


그리고 개인적인 기록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를 향해 더 나아가기로 결심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정치<하는>엄마가 되어 변화를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겠구나. 하고요."


강의를 마치고 발제자셨던 정희진 선생님과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인상적이었다는 몇 마디 말과 함께 나중에 기록들을 엮어 책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구태여 따져보자면 정치하는엄마들을 만난 이후 나는

꽤 오랫동안 개인적인 글을 써 내려가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일차적으로는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수명을 미리 가져다 쓰는 심정으로 활동하길 자처해왔으니까.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었다. 쓰고 싶은 글들이 오시기야 한다면, 시간이야 어떻게서든 더 짜냈을 것이리라.  


그저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두려워했다.


그 전이라면 막힘없이 써 내려갔을 글 -추억, 단상, 소회, 고민, 만족 등 모든 것에 관하여-이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퍽퍽 찌르고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즈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랫동안 나를 지치게 만들었던 주제들,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나와 다른 환경에 놓인 어떤 이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그러나 좀처럼 도달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았다.


어쩌면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울 한복판에서 공동육아를 하고, 대안학교를 하며, 시민단체 활동가로서도 살 수 있는 내 일상이란 것은.

나 자신에게 있어서야

몹시도 절박한 자세로 많은 것을 짜고 또 쥐어 짜내서 가능한 것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범접 불가능한 형태의 것이었다. 마음이 부대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문득 실무 룩...... 내가 몹시도 배부른 낙서를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지기도 했다. 그렇게 다음 구절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이란 게 언제나 생각을 따라오는 것만은 아니기에. 아무리, 그렇게 느낄 필요까지 없진 않느냐며 나 자신을 설득해보아도, 그렇게 느껴지는 데는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폭풍처럼 지난 총선을 마치고, 여유 있게 아이의 얼굴을 마주한 첫 순간.

두어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깨달았다.

아이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는 사실을.


나를 대체해 준 양육자들이 여럿 있었고, 그 마저도 어떤 이들에겐 허락되지 않는 '은혜'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감사한 상황과 별개로 아이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아이가 무의식 중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신호들이, 그렇다고 굳이 나 때문만이라거나

엄마인 내가 일을 해서만은 아니란 사실을 나도 안다.


우연히 내가 선거에 출마한 시점과,

일상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코로나의 출현과 상승세,

난데없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 외에도 내가 발견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을 숱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을 뿐이다.


그러나 아이가 전방위적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표현해낸 이상, 무엇이 가장 큰 원인이었는지를 논하는 자체가 무의미했다.


연유가 어찌했든, 무엇이 트리거가 되었든지간에. 중요한 건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다. 는 것과

그 누구도 아닌 나와의 시간을 원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제반의 돌봄과 살림이 엄마에게만 맡겨져서는 안 된다며 부당함을 역설하는 내가 겪는 딜레마가 이런 것이다.


내가 처한 딜레마적 상황은 쉬지도 않고 실시간으로 모양을 달리해대는데, 부당하다 목청껏 외쳐대는 이들의 노고가 무색하게도. 그놈의 사회는 꿈쩍도 않는 기분 같은 거랄까.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더 이상 아이가 없었던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아이가 곧 나의 전부인 것도, 내가 아이의 전부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별개의 독립변수로 '가정'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나는 제아무리 힘든 현실을 맞이한대도, 추호도 아이가 없었던 시절의 나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너라는 우주를 새로이 만나'


언젠가 내 메모장에 적어둔 글귀.

아이를 만나 그렇게 내 세계는 확장되었고, 무채색이었던 내 삶은 비로소 총천연색의 옷을 입었다.


도저히 말로는 형용해낼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런 아이가, 나를 기다린다.


우선, 내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당분간만이라도. 아이들 곁에 언제든 손이 닿는 곳에 서 있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이 가을을 마주하고 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낙선을 하자마자 여러 활동을 쉬게 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국회란 공간에서 아이들과 양육자들의 의제가 얼마나 가볍고 부차적인 것으로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잘 알기에(다각도로 경험해왔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그렇게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목소리를 내고 싶다. 미친 듯 몰입해 일을 만들고 쳐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내 머릿속 낯설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의 낯선 얼굴, 낯선 표정, 낯선 몸짓, 계속된다면 혹은 악화된다면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정직하게 묻고 곱씹어본다.


아니.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 두려움에 다시 눈이 감긴다.


우선 당분간이라도,

해야 할 말들과 하고 싶은 일들, 그리고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이런저런 기회를 애써 붙잡지 말자.


돌이킬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후회,를 남기지 않는 수준까지만이라도 조금 더 속도를 낮추자.


아이와 함께,

'우리 함께' 행복하기 위정치를 한다면서도


정작 내 아이는 달빛 아래 놀이터를 그리며

 "우리 엄마는 늦게 오신다.

아빠도 늦게 오신다.

나는 한솔 이모랑 있는 것도 좋지만

엄마가 보고 싶다"는 시를 써 내려가는 현실.


정치랑 국회만 빼고(?) 다른 일을 하면 안 되는 거냐며, "그럼 다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울까?"라고 재차 물어오는 아이.


그런 아이를 꼭 안아본다.


그래. 네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행복할 수 없구나.

그렇게 우리는 이미 따로 '또 같이' 살아가고 있구나.


물론 아이는 커갈 테고, 제 몫의 어려움을 견디고 소화해낼 체력 또한 저 스스로 길러가야 한다. 그 선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믿고 기다리고 언제든 쉬어갈 품이 되어 주는 일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내 일의 속도를 굳이 조절하지 않으면서 병행할 방도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누군가

나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애태워 기다릴 때


손이 닿는 곳에 있어 주는 이야말로

오늘의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고 믿기에.


그렇게

조금 더 느리게 걷기로 한다.  

서로에게 결을 맞추고 속도를 맞추면서, 쉬어도 가면서 그렇게.


그리고  다시 사부작사부작 메모장을 다시 열어보았다.


누구에게나 있는 진부한 이야기 그러나 오롯이 하나뿐인 장면들.


가장 작은 이들 곁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들이

또 다른 매개가 되어 우리를 연결해주기를 바라며.


오늘 여기 다시, 악착같이 육아(育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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