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성실 Oct 28. 2020

당신을 지켜 온 그림자 노동

엄마는 평생을 매일같이 새벽 4시반이 되면 눈을 떴다. 가족을 위해 기도했고 아침을 차렸고 회사에 출근했다. 중간 중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 적도 없지 않았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변함없이 성실했다. 


나는 엄마에게 빚진 나의 삶을 부끄러워한다 말하면서도 엄마가 차려 준 밥상을 참으로 태연하게 얻어 먹는다,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활동으로 정신 없던 어느 날, 엄마가 당일치기로 우리집에 다녀간 적이 있었다. 못 잡아도 왕복 7시간은 더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퇴근하고 보니 집안 곳곳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모순적인 나의 삶에 진절머리가 났다. 염치없게도, 살림과 돌봄을 엄마에게만 떠맡기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발언을 한 직후였던걸로 기억한다.  


급하게 서울을 다녀간 엄마의 이유를 듣고는 마음이 쓰렸다. 발표하러 간 내 대신 두 아이를 돌보고 있는 사위와 통화를 했는데 목소리가 힘들어보이더란다. 주말에 혼자서 두 아이 보며 집안일 할 사위 걱정에, 한켠엔 미안함으로, 어쩌면 죄책감으로 단숨에 그 먼거리를 달려온 터였다. 때는 무려 2018년. 그 날의 그 걸음이 사실은 엄마의 기도였단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엄마에게 하나뿐인 막내딸은 꿈이었고, 미래였고, 자화상이었기에. 엄마는 그렇게해서라도 딸의 일-가정 양립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두산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비경제활동인구'란 만 15세가 넘은 인구 가운데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 곧 일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일할 의사가 없거나 전혀 일할 능력이 없어 노동공급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얼마나 빈곤한 개념이던가. 저 개념대로라면, 허리가 굽어지도록 고생하며 살아 온 우리 할머니도 그저 '비경제활동인구'일 뿐이다. 소싯적에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비경제활동인구'란 단어는 아무리 들어도 비논리적이고 거북한 개념이다.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아라. 경제 활동에 혁혁히 기여하면서도 임금노동으로는 치환되지 못한 온갖 종류의 노동(勞動)이 우리 도처에 만연해있지 않은가! 


엄마가 평생에 걸쳐 반복해 온 일 중, 어디 노동 아닌 일이 있었던가. 사람을 품고 낳고 기르고 먹이고 돌보는 모든 일이 노동 아니고 무엇이었던가. 그런데도 이 사회는 돌봄을 포함한 갖가지 노동을, 누군가 값싸게 혹은 공짜로 대신해주면 좋은 일 정도로 전제한 채 굴러가고 있다. 그저 '집안일'이란 단어 하나로 덤핑 처리하면서.. 


노동 - 표준국어대사전

1. 몸을 움직여 일을 함
2. (경제)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그런 의미에서, 카트리네 마르샬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는 단비 같은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주류 경제학이 전제하고 있는 현실이란것이 얼마나 조악한 것인지 조목 조목 비판한다. 애덤 스미스가 그 대단한 이론들을 자신의 언어로 정리해내는동안, 그의 어머니 역시 그와 함께 발맞춰 빨래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장을 보고 집안을 청소했을 것이다. 주류 경제학의 이론대로라면, 그의 어머니 역시 '일할 능력은 있지만 일할 의사가 없거나 전혀 일할 능력이 없어 노동공급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밥값도 못하는 인간 같으니' 

굉장히 모욕적이지만 생활 속에서 은근히 자주 쓰이는 관용어. 


아이러니컬한건, 이 문맥 안에서조차 밥값은 참으로 값싸게 그려진다는 사실이다. 평소엔, 값조차 쳐주지 않는 것을, 밥'값'이라 표현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하려나.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단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이반일리치는 <그림자노동>이란 저서를 통해 산업화 이후에 새롭게 출현한 '그림자 경제(shadow economy)'현상에 대해 규정하고 '그림자 노동'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해당 저서는 1979년에서 1980년에 걸쳐 강연된 원고를 바탕으로 출간되었다. 무려 30년 전이다. 


그는 '그림자 경제'라는 새로운 현상을 조명하면서, "화폐거래 영역에 속하지 않으면서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경제 형태를 말하기 위해"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림자 노동은 "자급자족 활동이 아니라 공식 경제에 기여하는 노동"이며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임금 노동보다 더 중요성을 띄게 띈다"(그림자노동, 이반일리치 지음, 노승영 옮김, 사월의 책 참조) 


쉽게 말해, '그림자 노동'이란 경제 활동에 기여하면서도 그에 따른 금전적 보상은 되돌려받지 못하는 형태의 노동을 일컫는다. 임금 노동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무보수 노동말이다. 돌봄, 살림은 물론이거니와 출퇴근 노동자의 이동,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택배 노동자의 분류 작업 등이 이에 포함된다.


지난 30여년에 걸쳐 꾸준하게 문제제기가 되어온데 반해, 변화는 참으로 더뎌보인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해 국민총생산(GDP)에 포함하라는 UN의 지속적인 권고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2018년이 되어서야 이를 공식적 통계에 반영했다. 


통계청은「가계생산 위성계정 개발 결과」(2018)를 통해, 2014년도 기준 우리나라의 무급가사노동 가치가 약 360조 7천억 정도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명목 GDP 의 24.3% 수준에 해당한다. 주목할만한 수치는, 무급가사노동 가치의 75.5% 정도를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아마도 실제는 그 이상이 아닐까?) 여성의 가사노동 시급이 여전히 남성의 72.7%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 1인당 가사노동 시급은 약 13,564원인 반면, 여성의 시급은 9,864원 정도에 불과했다.) 이조차도 불완전한 통계라고 비판을 받는다. 가사노동 서비스의 시장가격이 이미 평가절하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시장가격에 준해 발표된 통계청 자료가 자연히 "가사 노동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고 가사노동시간 또한 과소 추정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뿐만 아니다. 그나마(라고 해야할까) 장을 보고, 식재료를 다듬어, 음식을 하는 등의 가사 노동은 물리적 시간으로 계상할 수 있는 축에 속한다. 속칭 집안일로 폄하되는 일들 중, 좀체 티도 안나고 눈에도 안보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이를 일컫어 'the mental load of household chores'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던데, 정말이지 이건, 경험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수준이다.  


장애인 가족 돌봄 또는 노인 돌봄 없이, 딱 아이 둘만 돌보면 되는 우리 가정만 하더라도 '배우자와 나눠 하려는 시도 자체가 더 큰 노동이 되고 마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각종 은행 업무 및 공과금 처리, 가족 행사, 설거지, 요리, 청소, 쓰레기 버리기, 등하원 등을 분담해 처리한다손 쳐도........ 의류, 휴지, 세제, 식자재 등을 포함한 생필품 구매 행위에서부터 계절별 옷 꺼내기에 이르기까지, 역할을 나누려는 시도 자체가 또 다른 일이 되어버리고 마는 순간이 적지 않다.


그 뿐인가. 아이들의 대소사(예방접종, 정기검진, 어린이집/학교 준비물 및 행사 챙기기, 아이들에게는 몹시 중요한 각종 이벤트 등등등등등)는 또 어찌나 많은지. 다 덜어내고 최소한의 것만 하더라도 한가득이다. 


*때에 맞춰 구매해야 할 품목들 
- 기저귀, 분유는 물론이거니와 그 시기를 지난다 하더라도 실내복, 외출복, 외투, 양말, 속옷, 신발, 모자/가방 등 기타 소품, 수저/젓가락/포크, 칫솔/치약, 마스크 등등


가뜩이나 겨울에는 사고(또는 구하고) 꺼내고, 입히고, 벗기고, 빨고, 널고, 말리고, 개야 할 일들이 몹시도 많아져서, 엄마가 된 이후 겨울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농담을 할 정도니 말 다 했다.


물론 돌볼 가족이 없이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경우에도 이 중 상당수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것과 가족의 일을 처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우리 가정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아빠가 요리를 주로 하는 편이다. 적어도 부엌만큼은 신혼 초부터 그의 영역에 가까웠다. 기계 빨래는 그가 자주 하고, 손빨래는 내가 전담한다. 양가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이런 우리의 가사 분담 상황을 대단하다고 치켜세우곤 했다. 나 역시 그의 노력과 책임의식에 자주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 정도 남편인게 어디냐", "너무 부럽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의 기분이란... 그의 사랑과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내가 이제껏 만나 본 사람 중 (아마도)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몫을 찾아해내려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짜여진 시스템 속에서, 굉장히 다른 결의 삶을 헤쳐나가고 있다. 우리가 찾아낸 최선의 값이란게 결국엔 가부장제 중심의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임금노동자로 살고 나는 프리랜서 또는 전업주부의 삶을 살아가는 형태. 그가 '집안일'을 하면 대단한 사람이 되고, 내가 '집안일'을 나눠 하면 팔자 좋은 여자가 되고마는 현실은, 우리 둘이 열심히 싸워댄다해서 해결될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코로나 펜데믹 현상은 그림자노동을 더욱 가중시키고 빠른 속도로 차별을 강화시켜 가고있다. 온라인수업과 재택근무로의 전환은 일차적으로 '전환이 가능한 수준'에 속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자간의 간극을 심화시킨다. 나아가, 가정 내 체류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여성의 돌봄 및 가사 노동 역시 폭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간 민간에 위태롭게 위탁되어 온 아이 돌봄, 노인 돌봄, 장애인 돌봄 서비스마저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운 요즘. "코로나 19로 모든 것을 멈추더라도 딱 한가지 멈출 수 없는게 있는데, 그게 바로 '돌봄'"이라던 여성노동자회 배진경 대표의 일갈을 우리는 새겨들어야한다. 


물론 우리가 처해 있는 총체적 난국은 한두개의 법안으로 해결될 수 없다. "돌봄 공백을 한큐에 해결해 줄 대안이 제게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정치인이 있다면 단언컨대 그는 사기꾼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굉장히 지난하고 복잡한 투쟁의 과정을 거쳐가야하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 역시 감수해야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 그 자체다. 

당신을 지켜 온 그림자 노동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젊음이고, 세월이며, 인생이고, 눈물일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자각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림자 노동, 얼마를 지불하나요?"


얼마전 경기도에서는 위와 같은 멘트로 시작되는 가사노동인식전환 캠페인 홍보 영상을 제작, 배포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jrci1EnCSQ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해도 해도 티나지 않는 일, 아무도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일, 
그러나 우리 삶에 없으면 안 되는 꼭 필요한 일. 

그림자 노동. 그림자에 그려진 당신의 가치는 모두의 삶을 밝히는 '빛'입니다.

<출처 : 경기도청, 가사노동의 또 다른 이름 #그림자_노동ㅣ#경기도ㅣ#워라밸ㅣ#가사노동인식개선캠페인>


반가운 영상이었다. 나는 덧붙여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림자 노동, 그림자에 가려진 누군가의 수고는 당신이 갚아야 할 "빚"입니다"

잊지 않고 오늘은, 엄마에게 꼭 안부 전화를 드려야지.



이전 05화 그림자가 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