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성실 Oct 27. 2020

그림자가 운다

당신은 어떤 그림자를 밟고 서 있나요?

매일 밤 그림자 놀이로 하루를 마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림자는 대단한 재주꾼이었다. 

제법 커다래진 제 그림자를 보며 아이가 으쓱해한다. 이것 봐봐, 엄마. 나도 이제 엄마보다 커졌어. 

또 어떤 날엔 남몰래 담장을 넘어 들어 와, 숨 넘어가게 울고 있던 아이를 달래놓기도 했다. 수면등 아래 찾아든 그림자 새가 날갯짓을 시작할 때면, 아이의 슬픔도 짜증도 훠이 훠이 날아가버렸다. 마치 마법을 부린 것처럼. 


그림자는 아이를 위로했고, 아이는 그림자의 친구가 되었다. 


용케도 아이는, 어디서든 그림자를 찾아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도, 희미한 달빛 아래에도 그림자가 있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왜, 엄마가 되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을까. 


[그림자] 물체가 빛을 가려서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다시 말해, 앞을 가로막은 물체에 의해 빛을 받지 못하는, 어둡고 검은 부분. 


엄마가 되고 나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그림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집안에도, 골목 어귀에도, 문 앞에 놓여진 택배 너머에도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 취급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 끝없이 반복되는 그림자 노동에 지친 사람들. 이들을 새롭게 만나고 발견할 때마다, 나는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이 당연한 현실을 왜, 엄마가 되기 전에는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 사실이 내내 부끄러웠다. 


빛이 있는 모든 곳에 그림자가 있다. 


남들이 알든지 모르든지간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제 몫을 살아낸다. 때론 누군가를 위로하고, 어떤날엔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고, 아이의 말마따나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주면서.... 남몰래 운다. 엄마가 그러했듯이, 내가 그러했듯이, 무명의 그림자들이 소리죽여 운다. 그 흐느낌에 응답하는건 응당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전 04화 의심의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