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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Oct 25. 2020

나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아이를 만나 나의 삶은 전복되었다

열심히 달려, 쉬지 않고 노력해. 그 결과가 곧 네 자신이 될거야. 

나는 세상의 가르침을 따라 의심 없이 달렸고, 세상은 나에게 엄마와는 다른 미래를 약속했다. 


사람들은 내게 끊임없이 "커서 무엇이 될것인지"에 관해 물었다. 그 질문을 따라 나는 어느 날엔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또 다른 날엔 과학자가 되었다. 햇살 좋은 날엔 탐험가가 되었다가 우울한 어떤 날엔 문인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엄마는 '그저 되는'법이었고 내 삶은 엄마와는 다른 것이어야 했다. 일종의 불문율이었고 깨지지 않는 신화였다. 


'여'학생이란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여풍, 알파걸과 같은 말들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밀레니엄 시대가 아니었던가. 최초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전례없는 기록들을 갈아치웠고, 유리천장은 뛰어넘어야 할 수식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머잖아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가르침이 신화에 불과했음을. 


나는 엄마가 되든지 내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만 선택했어야 했다. 내가 어리석었다. 의심 없이 믿어왔던 신화는 엄마가 된 순간 소리 없이 무너졌다. 


엄마는 '부던히 되어가야 하는' 자리였고, 나는 엄마가 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 뿐이던가. 나의 이름이란, 또 다른 엄마의 희생을 거름 삼아야만 자라나는 '비정한 물건'이었다.


엄마는 나의 아이를 키워주기 원했지만 나는 엄마의 호의를 거절했다. 다시 엄마에게 '나'를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만' 되었고, 그 사실은 나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되어 버린 날이었다.  


너의 이마에 안간힘이 맺힌다, 송글
목젖을 따라 생명줄이 흐르고
네 작은 숨결과 몸짓에 눈물이 흐르고.
(2013.07.18 첫 수유)

아이가 열어제낀 새로운 세상은 한 번도 본 적 없던 총천연의 색으로 가득했다. 경이롭고 아찔했다. 젖을 삼키는 일, 목을 가누는 일, 심지어는 똥을 싸는 일조차 저 스스로 해낼 수 없는 작은 생명 앞에서 나는 한 없이 겸허해지기 일쑤였다. 


내 뱃속을 가득 채웠던 기이한 생명체가 이토록 작고도 '완전한' 것이었다니. 여기서나 저기서나 관능과 음란의 상징으로 묘사되던 가슴이란게 사실은 생명을 살리고 먹일 수 있는 밥이기도 했다니. 뒤집고 앉고 기고 서는 이 모든 행위가 그토록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니. 엄마란 이 짧은 단어 하나를 말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과 연습이 필요했던가. 


그리고, 그 위대한 '엄마'의 자리를 우리는 

얼마나 하찮고 볼품 없이 대해왔던가.  


아이는 매 순간 나를 성장시켰고 나는 그런 아이를 품에 안고 매일을 살아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뼘 한 뼘 서로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그 사실에 경탄하다가도 나는 자주, 한 없이 작아지곤 했다. 


내 아이를 나의 손으로 기르면서도, 내 이름 석자로 해왔던 일들을 지속해가는 삶. 그저 인간답게 나답게 살아가는 하루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좌절했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분열되지 않은 채,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턴가 더 이상 누구도 나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나는 그냥 정후의 엄마였고, 1306호 아줌마였으며, 때로는 사모님이 되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경단녀라고 불렀고 어느 때는 이유 없이 맘충으로 분류됐다. 이류 시민이 되는 급행 열차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 친구들의 일상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출퇴근을 반복해야 하는 이들은 "그렇게 일해봐야 별로 남는 것도 없는데 그 어린 애를 하루 종일 남의 손에 맡기며 일하는, 불쌍한 엄마(생계형 취업모)"가 되거나 "대단하지도 않은 직업을 포기하지 못해 아이를 고생시키는, 매정한 엄마"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마저도 또 다른 엄마의 무임금 또는 저임금 노동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렇다고 남편이라고 다를손가. 그 역시 스스로를 돌보고 아이를 돌볼 권리와 기회를 빼앗긴채, 생계형 연구자로서 위태로운 저글링을 지속해가고 있던 차였다. 


그럴 때마다 두려워졌다. 


내가 그러했듯, 나의 아이 역시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괴로워하는 날들을 맞이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속절 없이 마음이 무너졌다. 

우리 엄마가 그러했듯 

나 역시 아이들에게 별반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알았다. 

이 아이들 역시 이전의 나처럼

자신들이 곧 나의 젊음이었음을 머잖아 깨닫고 괴로워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이는 내게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양 극단의 세계를 선물해주었다. 

매 순간 나는 힘에 '부쳤고' 또 감격에 '부쳤다'. 


그 두 세계의 거리가 너무도 멀고 아득해서 때로는 어지럼증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이는 분명 나의 세계를 전복시켰고, 그렇게 나는 '나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과 이별했다. 새로운 질서와 언어가 필요했다.


아이를 얻고 나를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는 내게 그 억울한 삶의 굴레를 벗고 지금 당장 사회로 뛰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익숙한 삶을 잃고 아이를 얻었다고 생각했을 때, 

또 어떤 이들은 내게 그 자리만큼 값지고 귀한 곳은 없다며 불평등을 감내하라고 역설했다.  


쏟아지는 말들의 한 가운데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그저 내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저의 온 우주를 맡겨 오는 아이. 그 아이들이 하루 세끼 흘리고 간 밥알들을 수도 없이 닦으면서, 녀석들이 잠든 틈을 타 어떻게든 악착같이 그 날의 육아일기를 갈겨대면서. 그렇게 나는 줄곧 내 자신에게 되뇌이곤 했다.

나는 아이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을 지킬 것이다. 
나는 분열되고 싶지 않다. 분열되지 않을 것이다. 
이 질서는 부당하다. 나는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삶의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나는 답을 찾을 것이다.   

나는 기필코 답을 찾아야했다. 나로서도, 엄마로서도 공존할 수 있는 제 3의 길에 관하여.


육아를 하다보면 가끔씩,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일거라 생각되는 평범한 하루를 만나고만다. 


아무도 관심 있게 보지 않았던 순간, 어느 집에나 있었을법한 장면들.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오던 그 날 그 밤, 아이들과 함께 줍던 이름 모를 풀들과 돌들, 쏟아지는 하늘 아래 아이들과 함께 손잡고 달리던 풀밭의 그 내음까지. 그저 아무 말 없이 저들은 저대로 저 할 일을 하고, 나는 나대로 그 옆에 앉아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채워주었던 세월들을, 그 순간들을....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회는 나에게만 주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평생 나의 그림자로 살아 온 내 엄마의 일이 되어서는 더욱 더 안 될 일이었다. 그 무게는 나와 함께 부모가 된 남편이 짊어져야 할 몫이기도 했고, 동시에 우리 사회가 함께 져가야 할 책임이었다.


세상은 계속해 돌봄과 살림을 '엄마의 일'로 떠넘겼지만 나는 '우리의 일'이라 믿었고, 내 자신과 나의 아이를 스스로 돌볼 권리를 되찾고 싶어 분투했다. 그 길 위에서 <정치하는엄마들>을 만났고, 비로소 다르게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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