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우연이 필요하듯이
경상남도 진주를 여행했다. 길고 짧은 여행을 다녀 본 결과, 나는 장소를 ‘맛’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국내 여행만큼은. 그래서 이번 여행은 지도 어플을 뒤적이며 맛있는 식당과 좋은 카페를 미리 찾아두었다. 지도 어플 속 사람들의 평가를 꼼꼼히 읽고 광고인지 아닌지 따져가며 고른 덕에 모든 곳이 완벽했지만, 여행이 끝나고 어쩐지 내 기억에 남은 건 시장에서 우연히 사 먹었던 길거리 음식과 박물관이 닫아 그늘 밑에서 쉬면서 먹었던 자판기 음료수 같은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기억하는 여행의 맛에는 모두 계획에 없던 ‘우연'이라는 양념이 있었다. 담양에 국수거리에서 먹었던 멜론처럼. 국수거리에서 웬 멜론이냐 싶은데 사실 국수거리에 계란을 먹으러 간 거였다. 담양의 국수거리는 큰 가마솥에 계란을 대량으로 삶아서 팔기로 유명해서, 계곡에서 너도나도 국수와 계란을 먹는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아주머니가 혼자 멜론을 팔고 있는 게 아닌가. 호기심이 동해 물어보니 멜론이 담양의 특산품이라고 한다. 한 통에 이천 원 밖에 하지 않았는데, 구입한 즉시 그 자리에서 먹기 좋게 썰어 접시에 담아주셨다.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나무 그늘 밑 평상에서 계란과 같이 먹던 멜론의 맛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 후로 멜론이 몇천 원 정도로 저렴해지는 철이 되면 담양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나에게 멜론은 여름의 수박처럼 1년에 한 번은 꼭 먹는 과일이 되었다. 여행에도 음식에도 확실히 우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우연이 필요하듯이.
덧. 해외여행은 ‘향’으로 기억한다. 면세점에서 향수를 하나 사서 여행지에서 사용하기 때문인데, 오키나와에 갔을 땐 물 색깔의 향수를 샀다. 비록 오키나와에 가서 바다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지만 향수를 뿌릴 때마다 오키나와의 바다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