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깜빡 잊었는 데도
어느 해의 봄에 자전거를 타고 경주를 여행하다가 오들오들 떨면서 모자가 달린 도톰한 겨울 니트를 사입은 적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해의 봄에 제주도를 갔을 땐 생각보다 더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원한 바지를 사 입었다. 따뜻한가 하면 추워지고, 추운가 하면 또 덥고… 아, 어쩌란 말이냐.
이번 부산 여행에선 비가 내렸다. 흐리고 바람이 부는 덕에 하늘도 바다도 모두 회색이었다. 맑은 날엔 꽃가루 알러지로 눈과 코에서 계속 물이 흘러 여행을 즐길 수가 없었다. 봄에는 여행을 하지 말아야지 결심하고 서울로 돌아오니 옥상 텃밭에 뿌려 두고 간 씨앗에 귀여운 새싹이 올라와 있었다. 봄은 내가 깜빡 잊은 새싹에 대신 물을 주고 갔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