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근교 이색적인 공간에 가고 싶다면! 요코하마 아니고 요코스카!
꽉 찬 4박 5일 일정동안 도회지의 모습만 담고 가긴 아쉬운 법.
하루는 교외지로 나가고 싶다는 짝꿍의 요청에 고민해 본다.
요코하마를 갈까? 후지산이 보인다는 가와구치호수?
요코하마 나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지만 확실히 도쿄와 다른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있을까? 똑같이 공원 가고 카페 가고 그럴텐데...
가와구치호수...버스타고 왔소갔소, 편의점 앞에서 보이는 후지산 인증샷 찍고 돌아오기?
(이때 내 핸드폰은 아이폰XR로 5년 6개월이 넘은 노령폰이라 빛번짐이 심한 상태였다)
뭔가 좀 힐링되는 곳 없을까?
그 때 갑자기 머리를 스쳐간 것이 있다.
바야흐로 16년 전...
그렇다. 당시 나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그 당시 미술사 수업을 상당히 많이 듣고 있었고
매주 미술관에 방문할 정도로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했다. 일본 소장품 수준은 상당해서 상설전만 돌더라도
볼거리가 다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울 클레의 대대적인 특별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 듣는 미술관이었다. 요코..스카 미술관?
요코하마를 훨씬 더 넘어가야 하는 곳 요코스카(横須賀).
하지만 지하철로 한 번에 가기 때문에 열차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대학생이던 나는 뭐 가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초겨울에 그곳에 처음 갔다.
30분, 길면 1시간에 한 번 역으로 향하는 버스가 있는 완전 시골이다.
결국 당일치기 여행 하듯 주말의 하루를 온전히 다 쓰고 왔다. 근데 그게 또 너무 좋았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정말 잠깐 1분 정도 걸으면 정돈된 데크길이 보이고 그 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그리고 바다를 등지고 서면 하얀 건물이지만 바다가 비쳐 파란 빛이 도는 미술관이 보인다.
미술관 뒤로는 울창한 숲과 함께 산 속이 이어진다. 미술관 둘러보느냐고 자세히는 못 봤지만
미술관이 참 아름다웠다. 이 정도 디자인에 풍광이라면 미술관으로 관광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 언젠가 소중한 사람과 와야겠다. 이따금씩 생각했던 곳.
근데 한 10년은 잊고 지냈다. 그래, 오늘 가자!
다시 간 요코스카는 당연히 멀긴 하지만 교통편이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버스를 타는데,
어느 터널을 지나면 갑자기 바닷가마을이 펼쳐지는 진풍경을 만난다.
그 때 내 안에서는 <마녀배달부 키키>의 브금, 바닷가가 보이는 마을이 들려 온다.
기분 좋은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에 멀미 한 번 하지 않고
요람에 몸을 실은 듯한 기분으로 가만히 풍경을 바라본다.
'좋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드디어 버스에서 내려 짝꿍에게 대망의 <요코스카미술관>을 보여줬다!
9월치고는 상당히 더운 날씨였음에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식사를 어디서 할까 했는데 미술관 1층에 생각보다 합리적인 가격의 레스토랑이 있었다.
아주아주 간소한 코스 요리! 창가로 보이는 오션뷰! 어떤 걸 먹어도 충분히 만족할 만했다.
다행히 작은 피자와 멸치파스타, 그리고 전채요리로 나온 핑거푸드들 다 맛있었다.
커피는 아이스라떼를 주문했는데 정말 놀랍도록 맛이 그저 그랬다 호호! 그런들 어떠하리~
환희로운 풍경에 맛없는 아이스라떼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으이구~ 이런 풍경에, 꽤나 맛있는 음식들에, 디저트까지, 커피까지 맛있으면 사기지~
이러한 후덕함까지 안겨주는 풍경들이었다.
미술관은 딱히 꼼꼼히 구경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술관으로 이어진 안팎의 풍경들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미술관 옥상에는 무료 망원경이 놓여져 있고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유치하게도 '연인의 성지(恋人の聖地)'라고 쓰여진 곳이 있다.
뭐 어떡해~ 이렇게 빼어난 경관을 들이미는데~ 놀아나주는 수밖에!
옥상에서 나오면 미술관 뒷편 산길코스로 이어진다.
상당히 울창하고 깊숙한 느낌이 있어 올라가다가 포기했다.
중간에 사람이 내려오는 거 보고 안심할 정도였다. 하하.
미술관 앞쪽으로 다시 나와 해변가로 하염없이 놓여진 데크길을 걸었다. 잠시 벤치에 앉아
바닷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야자수같은 나무를 보며 여기 참 분위기 특이하고 좋다...
익숙한데 또 이색적이기도 하다, 라고 얘기하면서 한참을 보냈다.
그리고 요코스카 미술관 옆에는 너무 웅장하지 않은 적당히 좋아보이는 리조트 호텔이 하나 있다.
볼 때마다 꼭 하루 숙박하고 싶다고 느끼긴 하는데 자주 오질 않으니 원.
언젠가 꼭 와 봐야지!
미술관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몇 정거장 걸어갔다.
걸어가다 보니 작고 낮은 건물들 사이로 바다와 배들이 보인다.
그리고 어느 정류장 도착 직전에 패밀리마트가 있었다. 갑작스레 컨셉을 잡아보았다.
외진 학교의 학생인데 동아리 활동을 끝내고 귀갓길에 친구들과 노는 것 마냥
아이스크림과 이온음료를 사서 먹었다.
좋은 풍경은 딱히 어떤 활동이나 체험을 하지 않아도 여행에서 큰 충족감을 준다.
언젠가 또 오자. 그 때는 재미진 특별전까지 하면 더 좋겠다.
그리고 그 땐 바닷길 말고 숲길도 더 걸어봐야지.
지금이 좋고 다음이 또 기대되는 곳이었다.
<요코스카미술관> 1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건재해줘서 고맙다.
5년 안에 한 번 더 갈게! 그 때까지 잘 있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