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거런 달리는 사람들의 평균 연봉이 1억 이상이래!
나는 왜 달릴까?
숨이 턱턱 막히는 더운 날씨에도 나는 왜 꾸역꾸역 달렸을까?
앞서 말했듯 달리기는 나에게 잡념을 지워주는 행위 중 하나였다.
집중을 잘 못하는 나에게 조금의 집중력이라도 부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어쩌면 하루의 성공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나를 느끼고 싶어서 달리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결국 달리기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크게 느낀 적은 없었다.
헥헥 거리면서도 10분이나, 30분이나 1시간이나 뛰게 된 것에 뇌가 도파민을 느낀 것을 아마 즐거움으로 인식하고 있겠거니 했다. 즉 나의 내적 니즈에 맞춰 행동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도쿄에 와서 여행러닝을 해보니 러닝의 오락적인 즐거움을 어느새 느끼고 있었다.
진짜 웃으면서 러닝하게 됐고 러닝을 수행하고 달성하는 기분보다는 달리는 것 자체에 대한 쾌감이 더 컸다.
엔터테인먼트적인 러닝의 정점을 느끼게 해준 게 바로 그 유명한 <황거런(고쿄런)>이다!
일본은 황궁을 중앙에 두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러닝코스를 설정해 두었다(중간중간 안내판에 써져 있음). 1주 5키로 코스로 4바퀴 돌면 하프 마라톤 거리가 나온다. 우리나라엔 아직 많지 않지만 일본에는 러너스테이션도 상당히 많다. 특히 황거런 인근에는 유독 많다. 아마 최소 10군데는 넘을 것이다. 약간의 업힐과 다운힐도 있어 초심자에게도 중급자에게도 지루하지 않은 코스다. 무엇보다 뛰는 사람 천지다. 나 위화감 한 번 느껴보고 싶어~~ 세상 모두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어~~ 이런 별난 감정이 든다면 황거런 코스에서 시계방향으로 러닝을 해봐라. 누군가 와서 지적하고 끌어내진 않아도 나만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어 굉장한 이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만큼 사람이 아주 많은 코스임에도 룰을 잘 지키는 게 또 일본답다.
러닝크루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 요즘 한국에서는 러닝크루들이 매너 없다, 민폐다 라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 아직 과도기라서 그런 것 같다. 일본은 이미 유구(?)할 정도의 역사를 가진 러닝크루가 많고 일반 시민 러너임에도 상당히 고수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 많다. 근데 또 천천히 달리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40대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아예 고령자도 꽤 보인다. 이미 갖춘 러닝복장이나 장비, 그리고 이 사람 여름 내내 뜀박질만 했나 할 정도로 그을린 피부, 딱 마라톤 해본 것 같은 피부가죽이 딱 붙은 듯한 얇은 근육질 몸, 맨날 업힐만 하나? 할 정도로 꽉 차 오른 장단지...
나같이 갓 뛰기 시작한 러너들이 보기에 무림고수의 아우라를 뿜뿜 뿜어대는 러너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심지어 나는 처음으로 러너스테이션에 가보았는데 이미 들어오는 사람들끼리 인사 나누고(심지어 따로 약속하고 만난 것도 아니였다) 서로 오고 가며 가볍게 목례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더라. 아니 일본 사람들 이리도 러닝에 진심이야? 달린 지 이제 1년 채운 나는 좀 진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튼튼하게 형성되어 있는 러닝 문화.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나, 황거런 도전! 실제로 황거런 일주를 해보니 이거 텐션 무지하게 올라버린다!
무려 일본 '황궁'이다 보니 조경이나 이런 것도 너무 깔끔하게 잘 되어 있는 건 물론이고 어찌보면 계란 노른자를 보면서 흰자 테두리를 뛰고 있는 것임에도 노른자가 너무 영롱해서 뛸 맛이 난다. 조경으로 만들어 놓은 호수나 정원, 그리고 성같이 쭉 펼쳐진 건축물이 왼쪽에 있고 오른쪽에는 고층 빌딩, 미술관들이 있어 뛰면서 양쪽을 비교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파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러너들과 함께 뛴다. 중간중간 경비원 분들이 있는데 작게 화이팅을 외쳐주시거나 주먹 꽉 쥐고 화이팅 포즈만 취해주시거나 여튼 응원의 눈빛이 어마어마하다. 내가 좋아서 뛰는데 모두가 날 응원해주는 느낌? 그만큼 여긴 러닝 문화가 깊이 자리 잡은 거다.
평소 혼자 뛰던 사람이라면 한 번 뛰어보시라. 각자 따로, 때로는 그룹의 형태로 뛰고 있지만 묘하게 전체 러너들이 이 거대한 황거런 그룹에 속해있다는 소속감이 생긴다. 나중에 회사에 담당 일본인 엔지니어에게 황거런을 뛰고 왔다고 말했더니,
에~~~?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워낙 돈 잘 벌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건강까지 잘 챙기려고 하다보니 돈 많고 잘 버는 사람들이 도쿄역 근처이니 거기서 많이 뛴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 얘기가 있다고 알려줬다. 묘하게 고양감이 차오르는 건 왤까 후후. 건강하고 좋은 에너지가 넘치는 그룹에서 러닝을 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이제 나도 거기 소속해봤다고 말할 수 있어서일까? 유치하지만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달리면 별별 생각을 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이 없어지기도 한다.
근데 여행지에서 달리게 되면 그 장소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게 된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팔과 다리, 눈코입으로 꼼꼼하게 풍경을 담아내고 내가 이 여행에서 느끼고 있는 점에 대해 곱씹어보게 된다.
정말 여행지에서 달리는 건 그 동네, 풍경, 주위 사람들에 잘 녹아들어 온전히 내 몸 하나로 여행을 누리는 행위같기도 하다. 달릴 때 느꼈던 오감으로 그 곳을 기억하고 새기고 추억할 수 있게 된다. 그 날의 러닝도 특별해지고 그 날의 여행도 특별해진다.
<SAWAMURA>라는 곳인데, 히로오(広尾駅)에 있는 매장을 유독 좋아한다. 내가 이용한 러너스테이션이 히비야역 근처였는데 히비야역(日比谷駅)에서 몇 정거장만 가면 히로오(広尾駅)으로 갈 수 있다. 하하, 사실 다 계산하에 히비야역 러너스테이션을 이용했다. <SAWAMURA>는 대사관이 많이 위치한 히로오역 바로 옆에 있는데 빵바구니 메뉴가 있어 여러 빵 종류를 식빵 한 조각의 4분의 1 사이즈로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브런치 메뉴도 정말 맛있고 커피까지 맛있는 곳이다. 가면 거의 그릇 핥고 온다. 원래도 그릇 핥고 오는데 러닝 후 그곳에 갔다??? 정말 환장한다. 브런치 각자 한 종류 시키고 빵바구니 작은 거 시키고 커피 한 잔씩 다 클리어하고 또 디저트빵 하나랑 커피 한 잔씩 추가했다. 히야, 사람이 늘 많지만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기는 그 분위기가 너무 좋다. 여기 올 때마다 늘 내가 여기 살아서 슬리퍼 대충 신고 와서 커피 마시고 브런치 먹는 날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