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는 왜 루틴이 필요할까?
삶은 습관의 집합이다
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나온 말이었던가.
일년간 꾸준히 해 오던 러닝을 무릎 뒤 오금이 아파와서 강제로 쉬게 되었다.
러닝이라는 루틴으로 삶의 균형을 유지해오고 있던 참인데 한 달을 그렇게 쉬다보니
내 삶이 일그러진 느낌을 받았고 마음이 부쩍 조급해졌다.
그러던 와중에 보게 된 영화가 빔 벤더스 감독, 야쿠쇼 쇼지 주연의 <퍼펙트데이즈>다.
우리집 거실 상영관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이 영화가 상영됐을 때,
짝꿍은 나지막히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지 못할까?"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할 법한 말이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에 있는 공공화장실 청소부다.
개인 욕실이 없는 10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에서 그는 어스름한 새벽,
앞집 할머니가 마당 쓰는 소리에 눈을 뜬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듯 세수를 하고 수염을 정돈하고
걸어 놓은 청소부 유니폼을 입고 현관문을 연다. 하늘을 보며 그 날이 햇살이 있어도 비가 와도
미소를 짓는다. 그의 하루가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히라야마의 삶의 루틴을 대사 없이 쭉 보여준다.
끊임없는 알람, 정보 그리고 응당 알아야 할 것들, 흥미로운 것들, 등
끝없이 펼쳐지는 도파민과 자극 속에서 헤엄치는 현대인들이 보면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삶인가 싶을 정도다. 나 또한 그의 삶에 반했다. 아주 홀딱 빠졌다.
주인공 히라야마를 맡은 야쿠쇼 쇼지는 진짜 대배우인데, 형사역도 하고 성실하기 짝이 없는 직장인 역할도 하고 반대로 야쿠자역도 하고...! 정말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다. 예능에도 거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정말 배우 일만 하는 천상 배우랄까? 우리나라에서는 <쉘 위 댄스>로 이름이 알려진 배우다. 30년 전 영화이긴 하지만!
그의 화장실 청소부 역할이 아주 일품이었다. 정말 일해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본은 화장실이 정말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엄청난 유흥가 이런 곳만 아니라면 공공화장실이 오래돼도 평타를 친다고 해야하나? 오래됐지만 깨끗하고 사람 손이 많이 가 있는 느낌을 받는다. 나도 일본 편의점에서 일할 때 화장실 청소를 담당했는데 청소 체크 항목이 그 당시만 해도 꼼꼼하게 적혀 있어 그 체크항목만 확인해도 상당히 깨끗하게 청소되곤 했다. 알바생이 그 정도 할 정도니 아마 당시 점장님은 더 꼼꼼하게 했을 거다.
극 중 히라야마는 자신만의 청소 도구까지 개발하여 정말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비데를 아예 다 드러내고 그 속까지 닦아내고, 안 보이는 곳은 거울로 비춰 혹시 물때라도 낀 건 아닌지 아주 면밀하게 청소한다. 같이 일하는 젊은 동료가 "뭘 그렇게까지 하세요?"라고 묻는데 아랑곳하지도 않고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 그리고 대답도 안 한다. 야쿠쇼 쇼지는 실제로 도쿄 화장실 청소부가 청소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은 걸로 공부하고 또 며칠동안 따라다니며 청소를 배웠다고 한다. 그 모습이 일련의 리듬이 느껴져서 반드시 저 리듬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 리드미컬한 청소 모습을 보면 내 맘 속 지저분한 잡념까지 청소되는 기분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쩌면 나조차 눈감으면 그만일 곳까지 수행자처럼 청소를 한다.
화장실 청소 모습을 보고 경건해지고 내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나는 얼마나 많은 보조장치와 루틴을 세워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가?
-매번 모르는 단어가 나와 눈을 질끈 감고 몰래 수치심을 느끼고
-어째저째 넘어가는 식의 통역을 나는 스스로 눈감아 주고 있지는 않은지.
-예기치 못한 일에 와르르 무너질 정도의 루틴밖에 세우지 못한 건 아닌지?
-무슨 일이 생겨도 다시 탄탄하게 돌아올 만한 탄력성 있는 루틴을 세우고 있는지?
-그리고 극 중 히라야마가 휴일에 취하고 있는 루틴처럼,
나는 스스로에게 제대로 쉼을 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를 주고 있는지?
작년에는 목표로 했던 것을 일찍이 이뤄내기도 했고 남들 다 한 졸업을 못하기도 한 해다.
(통번역대학원은 졸업시험을 통과해야 졸업을 할 수 있다)
그나마 러닝으로 한 가닥 붙잡아 놨던 자신감이나 내적 안정감도 오금 이슈로 마구마구 흔들렸다.
또 통역이라는 업무가 참으로 수동적이고 때론 기계적으로 대하게 되는 일인지라
스스로 괴로운 나날도 많았다. 나와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는 일도 적잖이 있었다.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인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게 할 일을 수행하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작은 순간에 따스한 미소 짓고
그런 삶을 하루하루 켭켭이 쌓아가면 되는 일인데!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히라야마지만,
사실 히라야마에게도 과거가 있다.
감독이 직접 야쿠쇼 쇼지에게 얘기해준 거라던데, 부잣집 아들, 그리고 경영승계자로 자란 히라야마는 그 속에서 무언가 마약, 중독 같은 문제를 일으켰고 아마 자식과 가족과 연을 끊었을 거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 삶을 종결시키려고 했다. 근데 그 순간, 그 순간에 밖에 볼 수 없는 코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를 보고 다시 삶을 살기로 결심한 거라고...!
1월에 본 영화지만 나는 확신한다.
아마 2025년 나에게 최고의 영화는 단연 <퍼펙트데이즈>라고!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내던 반짝이는 삶의 찰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영화이니, 시간이 나실 때 꼭 한 번 음미해보시길.
마지막으로 감독인 빔 벤더스와 시나리오를 함께 쓴 야나이 작가가
요미우리 신문에서 대담을 나눈 것을 올리며 이번주 주간OTT를 마친다.
(https://yab.yomiuri.co.jp/article/ttt_4/) 23년 12월 22일 요미우리신문 기사 발췌 (번역: 구일철)
사람은 모두 다르고 매일도 그 하루하루가 다 다르다
ヴェンダース そうですね。多くの人はルーティンという言葉をネガティブに捉えると思います。退屈さとか、自由の逆をいく状況を連想しがちですから。でも、平山さんが映画の中で重ねるルーティンを見ていくと、彼はまさにそのルーティンの中からたくさんの喜びを得ている。ルーティンがあるからこそ彼の日々にはストラクチャー、構造があり、構造があるからこそ自由が生まれるんです。
빔 벤더스 : 그쵸. 많은 사람들이 '루틴'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지루함이라던가 자유로움의 반대편에 있는 상황을 연상하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히라야마가 영화 속에서 쌓아가는 루틴을 보고 있으면 그는 마치 그 루틴 속에서 많은 즐거움을 찾아내고 있죠. 루틴이 있기에 그가 보내는 날들에는 스트럭처, 즉 구조가 있고 구조가 있기에 자유가 생기는 겁니다.
今は、多くの人が人生の中のストラクチャーを見失って苦しんでいる気がします。朝同じ時間に起きるといったことだけでは、ストラクチャーにはなりません。それは単なる習慣、必要性です。ストラクチャーとは人生に目的を与え、私たちの助けになるもの。ストラクチャーがあって、リミットがあればこそ、自分にはどのくらい自由があるのかがわかる。平山さんは、そういったパラメーターを再定義してくれる存在です。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 속 스트럭처를 잃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만으로는 스트럭처, 구조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습관, 필요성이라 할 수 있죠. 스트럭처라는 건 인생에 목적을 부여하고 우리들의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구조가 있어서, 그리고 limit,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법이죠. 히라야마는 그러한 파라미터를 재정의해주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