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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라임 Nov 17. 2023

[그림책에세이]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오늘의 책> 안녕, 나의 등대 / 소피 블랙올

소소한 일상과 그림책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작가의 목소리로 나눕니다.

글 고픈날에는 브런치에서, 이야기가 필요한 날엔 팟캐스트에서 만나요

오디오 에세이 팟캐스트 링크 ▶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23822


 몇 년전, JTBC에서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해 진행된 백상연예대상에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 '김혜자' 선생님이 연기 대상을 받으셨죠. 그녀는 시상소감을 위해 무대위에 올라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아요."그러면서 떨리는 마음에 잊어버릴까봐 드라마 대본 중 한 부분을 들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대사로 그녀의 수상소감을 대신했죠.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했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살아가면서 엄청나게 큰 행운을 만나는 것보다 매일 매일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하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잊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이, 늘상 곁에 있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이 너무나도 익숙하기에 오늘도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살아냈다고요.


 그래서 매일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꿈을 위해 오늘을 그저 살아내는 날도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을 잘 견디면, 몇 년 후에는 행복해질거야.'라는 희망을 안고서요. '원하는 대학에 가면, 열심히 일해서 집을 사면, 언젠가 건물주가 된다면'. 이렇게 되내이고 다짐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지금의 순간들을 그저 스쳐지나가 버렸는지요. 사실 나와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을 붙잡기만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드라마의 대사처럼요.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가고 있는 옆사람 때문에 불안해져 나도 무작정 내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요? 곁눈질하며 다른이처럼 속도를 올리다 인생의 파도를 만나 크게 휘청이고 나서야 우리는 보게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을, 지금 이 순간에 내 곁에 있는 감사한 것들을요.


 오늘 소개 할 책은 그렇게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감사함으로 충만히 살아내고 있는 등대지기와 가족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자신의 삶 뿐 아니라 망망대해에서 헤매이는 누군가를 위해 밤, 낮으로 밝은 빛을 비추는 그의 삶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며 오늘의 감사와 행복을 찾아야겠다고요. 그리고 그 힘이 나에게 줄 에너지와 해사함으로 내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도 따뜻함과 위로를 전해주고 싶다고요.


오늘 소개 할 책은 '소피 블랙올' 작가의 그림책 '안녕, 나의 등대'입니다.


제목 Title - 안녕, 나의 등대

저자 Author - 소피 블랙올

출판사 Publisher - 비룡소

 파스텔 톤으로 보드랍게 그려낸 등대와 잔잔히 부서지는 파도가 참 아름답습니다. 표지 뒷면에는 그곳을 가꾸며 삶을 살아내고 있는 등대지기의 모습이 보입니다.

(좌) 책 커버 이미지, (우) 책 커버를 벗겨내면 확인 할 수 있는 속 표지

 책 커버를 벗겨내면 선물 같은 속표지가 모습을 드러내요. 낮보다 더 아름다운 밤바다와 등대의 모습입니다. 거친바다를 잠잠히 재우는 듯, 등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서 누군가를 위해 빛을 밝히는 등대지기의 모습이 참으로 든든해 보입니다.  

 책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어느 날, 이곳 등대에 새 등대지기가 왔어요. 이전의 등대지기는 나이가 많아 더는 일할 수 없었거든요." 멀끔하게 각잡힌 검정색 유니폼과 검정 모자를 쓴 턱수염난 청년이 등대에 도착을 했습니다. 뱅글 뱅글 돌아가는 내부의 가파른 계단을 따라 성큼성큼 올라가요. 자신의 새로운 일터로요. 단면으로 보여지는 등대의 내부는 참으로 아늑합니다. 지하 1층부터 옥상 다락까지 갖춘 등대는 마치 좁고 기다란 꼬마 주택을 보는 것 같아요.


 옥상에는 등대의 존재 이유인 빛을 머금은 커다란 등이, 그 아래로는 등대지기의 업무 일지가 쓰여지는 서재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위한 공간인 침실과, 주방, 팬트리도 연이어 모습을 나타냅니다. 처음 보는 등대의 내부는 참으로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제 눈길을 사로 잡은 건 책 한켠에 붓을 들고 서있는 등대지기 였습니다. 그는 푸른 바다, 그리고 하늘과 어울어지는 옅은 초록빛의 페인트로 등대 내부의 하얀 벽들을 채워나가고 있어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그 넓은 공간을 아름다운 색으로 하염없이 채워나가는 그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저와 참 비슷하다고요. 반가웠어요.

 

 집순이인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냅니다. 글을 쓸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심지어 친구를 만날 때도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에게 집이란 공간은 그저 잠을 자고 밥을 차리는 공간이 아니라, 하루의 전부를 함께하는 동지입니다. 반려 동물을 사랑하는 누군가처럼 저에게 집이란 반려 공간인거죠. 사랑해마지 않는 그런 존재 말이에요. 그렇기에 서랍장 하나도, 책장 위 작은 공간도 그냥 무심히 내버려두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이 제가 숨쉬고 마주하는 공간이고 그 사소함들이 모여 저에게 미소와 행복을 가져다 주거든요. 그렇기에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에도 참으로 많은 애정을 쏟곤해요. 나의 취향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채워갑니다. 등대지기 처럼요.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화가난 듯한 바다에 거센 파도가 몰아칩니다. 그런 밤이면 등대지기는 옥상에 올라 검은 바다에 노랗고 곧은 빛을 하염없이 뿜어냅니다. "여기에요! 여기에요! 여기 등대가 있어요!"라고 간절히 소리치는 듯이요. 거친 파도에 난파된 배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러 거세게 일렁이는 바다를 헤치고 다가가 그들을 구하기도 해요. 함께 등대로 돌아와 몸을 따스히 녹여줄 담요와 다정함이 담긴 스프를 건내기도 하죠. 그 시간들을 꼼꼼히 매일 업무 일지에 적어내려 갑니다.


커다란 일이 있던 날도, 아무도 만나지 못한 한가로운 날에도 그는 5층 서재에 앉아 하루를 써내려가요. 쳇바퀴 돌 듯 비슷한 나날들에 대해 적어 내려가면서도 그는 지루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온화하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그의 얼굴을 마주 할 수 있거든요. 좁고 길다란 건물의 가파른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내리면서도 그는 매일의 소소한 행복들을 찾았던게 아닐까요?

 저 멀리 아득히 커다란 배가 다가옵니다. 배는 등을 밝힐 석유와, 소박한 한끼를 위한 식료품을,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도 데려다 주었습니다. 등대 안 작은 둘만의 세상에서 새로운 생명이 찾아와요. 작가는 등대를 위에서 바라보는 동그란 시선안에 점점 배가 불러오는 아내와 남편인 등대지기를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소소한 일들이 가득했던 등대지기의 업무 일지에는 바다를 비추는 밝은 등대처럼 밝은 빛이 쨍하게 비치는 특별한 날들도 있었겠죠. 이렇게 아이가 태어나는 날 처럼요. 등대지기의 부인은 바다 위 등대에서 아이를 출산합니다. 거센 파도를 잠재울 만큼 맑은 목소리로 '응애'하고 아이가 태어난 날, 등대지기는 아이의 보드라운 솜털에 대해서, 소중히 감싼 포대기에서 탈출한 작고 귀여운 아이의 손에 대해 썼을 겁니다. 그렇게 그 순간이 주는 환희와 감동을 온 몸으로 만끽하고 감동하면서요.

 평소와 다름 없는 한가한 어느 날, 등대지기는 육지에서 보내온 신문과 책, 그리고 해안경비 대장의 도장이 찍힌 편지도 받아듭니다. 여느때처럼 등대의 렌즈를 깨끗이 닦고 불을 밝히고 업무 일지도 썼지만, 그날은 좀 달랐습니다. 편지에는 등대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으니까요. 이곳에서 태어나 걷고 말하게된 어린 딸 아이와 사랑스런 부인도 함께 이곳을 떠나야 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등대지기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 마지막으로 업무 일지를 펼쳐본 뒤 덮었어요. 슬픈 눈을 하고 애써 입가에 웃음을 띄고서 말이에요. 그의 하늘 친구인 갈매기들이 다가와 말없이 따뜻한 눈빛을 건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떠나보내던 그 물길을 따라 가족들도 이곳을 떠나갑니다. 하염없이 멀어지는 등대를 바라보면서요. "안녕, 등대야! 안녕!... 잘있어!... 안녕, 나의 등대야!"

 그렇게 멀어진 등대는 밤이 되자 등대지기가 없는 옥상에서 변함 없이 밝은 빛을 발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등대를 향에 밝히 불을 밝히는 누군가가 있어요. 떠나간 뱃길을 따라가다보면 바다건너 맞은편에 자리한 언덕과 빨간 지붕을 가진 작은 집이 보입니다. 그도 등대와 같은 노란 빛을 밝혀요. 슬픈 빛이 아닌 애뜻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서요.

  

 등대지기의 가족들은 그렇게 등대가 보이는 건너편 언덕에 터를 잡고 초록색 벽지가 아름다운 빨간 지붕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밤이면 작은 등을 들고 아련히 멀리서 빛나고 있는 등대를 바라봐요. 이제는 더 이상 등대지기가 아닌 그의 미소에는 떠나온 것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묻어있지 않습니다. 매 순간을 사랑했고 최선을 다해 만끽했던 그와 가족들이기에 그곳에서의 시간이 다해 떠나야 했을 때도 아쉬움보다는 진한 추억이 남았을 겁니다. 그의 거실 한켠에 자리한 등대 사진을 보면서 생각해봅니다. 언젠가 지금 이 순간을 떠올렸을 때, 고되었던 기억이나 후회들로 가득하지 않도록 지금을 충만히 살아야겠다고요. 그래야 가슴 한켠에 지금 이 순간을 고이 담아 마음 속 액자에 걸어두고 흐뭇하게 추억할 수 있을테니 말이죠.    


언제 돌아봐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 당신의 등대를 당신은 지금 찬찬히 살피며 누리고 있나요?

언젠가 머나먼 날에도 서로를 비춰주며 돌아볼 수 있는 옛 기억이 가득한 삶이 되도록 오늘도 저는 지금의 순간을 스쳐 지나보내지 않고 꼭 붙들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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