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과 그림책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작가의 목소리로 나눕니다.
글 고픈날에는 브런치에서, 이야기가 필요한 날엔 팟캐스트에서 만나요
오디오 에세이 팟캐스트 링크 ▶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22011
매주 월요일 아침 10시면 나와 팀원들은 회의실에 모여 앉아 팀장님께 이번주에 진행되는 업무 보고를 했다. 새까맣게 적힌 일정들 끝엔 언제나 '마감날짜'가 적혀있었다. 마케팅팀에서 광고를 제작하고, 출시되는 제품의 홍보 업무를 담당했던 나는 늘 크고 작은 마감에 시달렸다.
'째깍째깍', '틱톡틱톡', '띵동'...
광고 촬영 현장에서, 신제품 론칭 파티가 열리는 그랜드 볼룸에서, 연관부서가 한데 모여 캠페인 전략을 논의하는 회의실에서, 홍보자료를 쓰고 있는 사무실 책상에서... 언제나 크고 작은 마감 시계가 사방에서 울려댔다. 시한 폭탄처럼 진종일 울려대는 알람은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전략 회의 중에도, 촌각을 다투며 홍보글을 마감해야하는 그 순간에도 어김없이 비집고 들어와 시끄럽게 '쾅쾅' 문을 두드렸다. "과장님, 죄송한데 이거 지금 빨리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급히 회신 부탁드립니다."등등. 사방에서 서라운드로 마감 경보가 울려대는 날이면, 그 날카로운 초침 소리 하나 하나에 내 남은 인생의 일부가 깎여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연속적으로 긴밀하게 돌아가는 크고 작은 마감의 톱니바퀴 속에서 8년여의 시간을 보내다 주재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해외로 이주를 했다.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회사원이 아닌 자연인이 되었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사방을 감싸던 초침소리가 그치고 잠잠해 진것은. 이제 무얼하든 마감일은 내가 정하면 되었다. 무엇이든 하다가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 버려도 뭐라고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마감일이란 애초에 나만 혼자보는 다이어리에 있는 것으로 내가 눈길을 주지 않으면 그냥 잊혀져 버리는 아주 가벼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드디어, 나는 스트레스 제로의 경지에 다가선 것이다.
시간이 날때면 책을 고르고 영화를 보고, 유튜브 알고리즘 세상에서 유영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를 다닐때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것들이었다. 힘들이지 않고 컨텐츠 소비하는 삶이라니! 처음에는 너무 편하고 좋았다. 그런데, 성격탓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좋기만했던 컨텐츠 소비자의 삶이 점점 헛헛해져갔다.
아마도 균형이 무너져서 였을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던 생산자의 삶을 떠나 모든 것을 탐닉하고 받아들이기만하는 컨텐츠 소비자의 삶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무언가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희망'과 한번 사는 인생 의미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갈망'이 평온한 일상을 뚫고 빼꼼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눈에 닿는 모든 것에 관심을 주고 관찰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을 붙잡아 놓는 나였다. 마감을 쳐내며 '내 안에 있는 것'과 '세상에서 흡수한 것'을 잘 융합해 내보내야하는 '생산자의 삶'을 살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흡수하는 것에 비해 내보내야하는 것이 너무 많아 늘 부족하고 갈급하다고. 그런데 반대상황이 되고 보니, 마치 목 끝까지 음식이 차오른 상태에서 계속 새로운 것들을 밀어넣는 듯한 버거움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여유를 만끽하느라 그간 마음과 머릿속에 켜켜히 쌓이고 뒤엉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포화상태로 아우성 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받아먹고 너도 무언가를 좀 내 놓으라'고 말하는 듯이.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내 마음속에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편의 글을 쓸때마다 조금씩 소화가 되는 것 같았다. 더부룩함이 내려가고 숨이 좀 쉬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두편이고, 세편이고 쏟아져나오는 이야기들을 글로 받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비워내고 채워가면서 알게됐다. 내가 글을쓰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한다는 걸 말이다. 브런치글과 연계해 직접 쓴 글을 내 목소리로 녹음해 내보내는 '오디오 에세이 팟캐스트'를 시작하면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분명 좋아하고 신나는 일인데 일상에 바빠 치이는 날이면 금세 글쓰기를 더디했다.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하는 상사가 있는것은 싫었지만, 누군가 내 삶을 독려하고 매니징해주는 존재는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놔두면 한없이 편안함을 추구하는 나는 그런 나약한 인간이었다.
'좋아하는 것마저 마감이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니! 아, 인간은 어느 정도의 구속을 필요로 하나봐.'
브런치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지 만 4개월이 지났다. '출판 프로젝트'라는 매력적인 공모전 덕분에 짧은 시간동안 집중해서 맘속에 있던 생각들을 끌어와 적어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감일을 앞두고 두권의 브런치북이 세상에 나왔다. 역시 마감일 덕분이었다.
이제 공모전이 끝나서 어쩌나 하고 있었는데, 얼마전 브런치에서 또다시 반가운 알람을 보내왔다. 그건 바로 브런치북에 '요일별 연재 기능'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작가 본인이 직접 선택한 요일에 정기적으로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종의 알람 같은 것이었다. 한달음에 달려가 화요일에는 '일상 에세이', 금요일에는 '그림책 에세이'를 업로드하겠다고 설정한 후, 연재 브런치북을 발행했다.
'정해진 규격이나 데드라인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나를 위해 브런치팀에서 이런 신박한 기능을 만들어주었나?' 싶을 싶을 정도로 참으로 시의적절하고 반가운 기능이다. 정말이지 격렬히 환영한다. 기다리는 독자가 없어도 내가 먼저 내 글을 기대하며 볼날을 고대할테니까. 다른이의 반응에, 조회수에 전전 긍긍하며 했왔던 무언가들은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반응들에 실망해 그만두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를 즐긴다면? 실망할 필요도, 그만 둘 필요도 없지 않은가!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그 순간을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나에겐 가장 어려운 일이자, 꾸준히 무언가를 지속하는 힘'이 될 것이다. 물론 반응도, 조회수도 좋아 더 많은 사람과 내 창작물을 공유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다 :)
매주 화요일에는 일상에세이를, 금요일에는 그림책 에세이를 연재한다. 내 머릿속에서 떠다니던 생각들이 세상에 짠하고 나타날 수 있는 마법의 시간표가 완성되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째각째각 마감일을 향해 달려가는 시계 바늘 소리가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든든하기도 하다. 처음부터 내달리다 금세지쳐 포기하지 않게 꾸준히 옆에서 내 상태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남은 거리를 상기시켜주는 런닝메이트를 만난 느낌이랄까?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은 색이 바랜것이 아니라 그간 광합성하느라 걸치고 있던 엽록소를 벗어던지고 본래의 색을 내는 중이라고 한다. 낙엽 색은 곧 그 나뭇잎의 진짜 색이라는 말이다. 나도 인생 중반기를 맞이하며 이제야 나를 감싸고 있던 '다른사람 다움'을 벗어던지고 '나답게' 살아가려한다. 그리고 그 첫 단추를 '글쓰기'로 야무지게 끼워볼 생각이다. 내 이야기를 풀어내려가는 정공법을 무기삼아 나다움을 이어나가는 여정에 브런치 연재 기능이 든든히 내 곁을 지켜주길.
고마워요. 브런치팀!
그리고 잘 부탁해! 나 자신.
나의 첫 연재 북이자 첫 오디오 팟캐스트인 '다정하고 포근한 오디오 에세이'로 매일 매일 진짜 나로 살아가보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