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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라임 Nov 10. 2023

[그림책에세이] 목놓아 울며 하늘에 묻고 또 물었던 날

<오늘의 책> 줄무니 없는 호랑이/제이미 윗브레드

소소한 일상과 그림책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작가의 목소리로 나눕니다. 

글 고픈날에는 브런치에서, 이야기가 필요한 날엔 팟캐스트에서 만나요

오디오 에세이 팟캐스트 링크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19904


그날은 그런 날이었어요. 꾹꾹 눌러왔던 감정의 통이 찰랑이며 위태위태 했던 날. 기어코 마지막 물방울이 떨어지며 그간 단단하게 막고있던 감정의 샘이 쏟아져 나온날이요. 애써 견뎌온 마음이 무너지면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울음과 거친 호흡을 따라 뭉개져 나온 나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두평남짓한 고요한 상담소를 가득 채웠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눈 앞에 푹 젖어 산처럼 쌓여있는 휴지들을 주섬주섬 모아들고 일어났어요. 체념한 듯, 휴지통에 힘없이 툭 던져 넣으며 생각했죠. 큰일났다고요. 마음속에 꾹꾹 눌러놓았던 속상함과 억울함이 터져나와 이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흘러나오고 있었거든요. 


끝끝내 깨져버린 마음 틈 사이로 쉴새없이 새어나오는 감정의 홍수를 간신히 틀어막은채, 버스 창에 기대어 집으로 가는길.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한중간에 버스 정류소가 보였어요. 평일 오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과 그 위에 평화롭게 자리한 노들섬이 보였지요. 잠시 쉬다가라는 듯 한가로운 그 곳에 내려 걸어들어갔습니다.


곧장 눈 앞에 펼쳐진 잔잔한 물가로 달음질하듯 다가가 한참이나 서있었어요. 아무도 내가 우는 것을 보지 못하게 강을 바라보고는 주체할 수 없이 울음을 토해내면서요. 그리고 무심할만큼 쨍하니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거냐고, 나한테 왜 이러느냐고요. 여름의 하늘은 그저 맑게 빛나기만 했어요. 아무말이 없었지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2020년 여름. 돌이켜보면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어찌 할 수 없었던 나의 결핍들이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모두들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그 무언가를 나는 죽을만큼 노력해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동경과 희망으로 시작했던 마음이 깨져 원망으로 터져나오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말이에요.


당신을 울부짖게 만들었던 그날의 기억이 있나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혹은 인생의 한중간에서 만난 당신의 결핍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당신은 해답을 찾았나요? 아니면 아직도 때때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묻고 있나요? '왜'냐고 말이죠. 



오늘 소개 할 책은 어찌 할 수 없는 아픈 손가락, '나의 결핍'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목 Title - 줄무늬 없는 호랑이

저자 Author - 제이미 윗브레드

출판사 Publisher - HB

이 책 커버 뒷면에는 간단한 책 소개가 나와있어요. 주인공의 마음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합니다. 제가 한번 읽어 볼게요.

날카로운 이빨과 황금빛 눈동자와 비단 같은 털을 가졌지만, 줄무늬가 없이 태어난 호랑이는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줄무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열심히 찾지 않아서일 수도 있잖아. 노력하면 틀림없이 얻을 수 있을 거야.'


줄무늬가 없는 호랑이라니! 다시 앞으로 돌아와 이 책의 첫장을 넘기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럴수도 있지'라고요. '저리도 윤기나는 아름다운 털을 가졌는데 줄무늬가 뭐 그리 대수일까' 라면서요. 주인공의 엄마도 오빠들도 이야기합니다.


"신경 쓸 것 없단다.", "맞아. 아무렴 어때." 

그러나 다음장에서 제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습니다. 나의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작고 귀여운 아기 호랑이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줄무늬가 없는 호랑이라니. 그건 조금도 괜찮지 않았어. 그 호랑이가 바로 나라고 생각해 봐."

상대에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에 덤덤하게 위로를 건내왔을까요? '그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너무 신경쓰지마.' 라고 건낸 말들에 생채기 난 그의 상처는 더 깊어졌을지 모릅니다. 맞아요. 나라고 생각하면 가볍지 않은 결핍들인데 말이죠.  


줄무늬 없는 호랑이는 길을 떠납니다. 모두가 평범하게 햇빛아래 누워쉬고 사냥을 나가는 동안 깊은 산길을 바라보며 생각해요. 

"어쩌면 줄무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열심히 찾지 않아서일 수도 있잖아. 노력하면 틀림없이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호랑이는 모두가 당연한 듯 가지고 태어난 줄무늬를 얻기 위해 견디기를 선택합니다. 


뜨거운 햇빛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황금빛 털이 그을려진 자리에서 줄무늬를 찾아요. 가시덩굴에 뛰어들어 생채기를 내고 얻은 상처로 선명한 줄무늬를 만들죠. 거센 바람과 빗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걸어들어가 뚝뚝 떨어지는 빗물로 줄무늬의 흔적들을 새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햇빛에서 멀어지고, 상처가 아물고, 비가 그치면 잠시 잠깐 그의 몸에 스미는 듯 했던 줄무늬는 사라지고 맙니다.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한 듯, 비통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뜬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호랑이는 묻습니다. 


"왜 저만 줄무늬가 없나요? 다른 호랑이들은 뜨거운 햇빛을 견디지 않아도, 어두운 숲에서 헤매지 않아도, 세찬 비바람을 맞서지 않아도, 왜 처음부터 줄무늬를 갖고 태어났나요? 저는 그걸 다 견뎠는데 왜 줄무늬가 생기지 않는 거죠? 아직도 노력이 부족해서인가요?"

'차라리 포기하고 그냥 살아가지.'라는 생각이 들만큼, 죽을 힘을 다했지만 줄무늬를 얻을 수 없었던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슬퍼보입니다. 이빨을 한껏 드러낸 채, 온몸으로 포효하며 하늘을 향해 화를 내고 있는 그를 보며 마음 한켠이 아려왔습니다. 그건 아마 죽을만큼 성실히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를 해 본 사람만이 공감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닌가 싶어요. 저도 그때의 제가 떠올라 안타까워졌습니다. 홀로 강을 바라보며 넘쳐흐르는 감정을 쏟아내던 그 여름이 생각났거든요. 

저의 그날처럼, 아무말 없는 하늘을 뒤로하고 암흑속으로 들어간 호랑이는 밤새도록 생각합니다.

"저에게 주신건 무엇인가요. 무엇을 주셨나요." 

갖지 못한 줄무늬에 대해, 그리고... 타는 듯한 태양과 칠흙같던 숲과 휘몰아치던 비바람에 대해서요.

그렇게 긴긴밤을 보내고 낮이 되었습니다. 호랑이는 다시 어제의 그 곳을 찾아가요. 하늘 끝까지 닿은 높은 곳을 한달음에 올라가 외칩니다. "고맙습니다."라고요. 비아냥거림이 아닌 진심을 담아서요. 모든 호랑이에게 당연한 듯 주어진 줄무늬가 없었기에 다른이는 가질 수 없었던 모험을 견디고,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으며, 하늘을 바라보며 물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 어떤 호랑이도 할 수 없었던, 아니. 너무 당연해서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을 줄무늬 없는 호랑이만은 할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처음 이 페이지를 마주하고 눈물을 왈칵 쏟았던 건, 그의 마음이 저와 닮아있어서 였어요. 석양이 핑크색으로 물들인 하늘에 좀 더 가닿고자, 높디 높은 곳에 올라 두발로 서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나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목놓아 울며 하늘에 따지듯 물었던 그 날 이후, 저는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던 것 같아요. 죽을 듯이 힘들었지만, 그래서 많이 원망했지만, 그랬기에 지금 제가 이 길에 서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끝도 없이 가라앉으며 깊은 어둠을 지나면서 쓰라릴듯 아파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 할 수 있게 되었고, 위로하고 싶어졌고,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유리알처럼 연약했던 내면이 단단해져 갔어요. 


왜 나에게만 없는 거냐고, 나는 왜 남들은 하지 않는 노력을 해야하냐고 울부짖었던 날에는 몰랐습니다. 처음부터 당연한 듯 주어지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결핍을 통해 얻는다는 걸요. 그건 남들은 얻을 수 없는 아주 진귀한 것이라는 걸 아주 오랜 시간을 견딘 후에 알게되었지요. 


그래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또 다시 울부짖고 싶은 날에도, 이제 막 세상을 향해 한발, 한발 발걸음을 내딛는 나의 아이들에게도 말해줄 수 있으니까요. 너만 겪고있다고 생각되는 그 억울한 순간들이 네 인생을 더 깊게, 성숙하게 만들어줄거라고. 그리고 그 결핍이 결국 너를 특별한 길로 안내해 줄거라고 말이죠. 

이 책에는 감동적인 부분이 하나 더 숨겨져 있습니다. 책 커버 뒷면 하단을 보면 책의 정보를 담은 바코드가 있어요. 길게 쭉뻗은 유려한 몸으로 앞을 향해 힘차게 달려나가는 호랑이 몸에는 바코드 모양으로 굵고 얇은 줄무늬가 명확히 새겨져 있습니다. 그건 모든 풍파를 겪어내고 성숙해진 호랑이에게 경이를 표하며 꿈에서라도 한번쯤은 줄무늬를 느껴보라는 출판사의 애정이 담긴 선물이 아닌가 싶어요. 


어디선가 이 책을 만나게 된다면 호랑이 몸에 새겨진 이 귀여운 바코드 줄무늬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호랑이 몸에 깊이 새겨진 바코드 줄무늬를 바라보며, 어쩌면 우리는 그간 바래오던 무언가를 잠시나마 품에 안아보는 상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 내가 서있는 현실을 바라볼 때는, 가질 수 없어 내 속을 까맣게도 태웠던 나의 결핍이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었다고, 감사하다고 고백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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