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우리는 질척이며 살지

필립로스

by 쑥과마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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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나, 죽음에 관한 글들이 즐거울 리가 없다.

노년이나, 죽음이 즐거울 리가 없으므로.


우리는 길게 살기 시작했고,

세상 어디나 노령화인 세계로 가고 있는 지금,

그 현상을 반영하는 글들이 고상하고 향기로운 출판사에서 부쩍 나오는 느낌이다.


이역 땅 미국에서도 도서관에 가보면,

민음, 문지, 창비의 신간들 중에는 노인문제를 다루는 게 많았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골라든 책이 그럴 경우,

나는 그 책을 읽다가 중도에 내려놓는다.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공포스럽고, 외면하고 싶고, 무엇보다 징징거려서다.

문제가 있는 누군가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많이 듣는 나는

문학에서조차 그 푸념을, 불만을, 불편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고 최승자 시인이 삼십 세라는 시에서 말했다.


그 시를 받고 오십 세는 이리 말하고 싶다.

여전히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그 마음 위로 켜켜이 많은 짐들이 내려앉는 세월을 보냈다고.

받은 기억이 도대체 없는데, 내내 채무자 신분으로 사는 기분을 아느냐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모에게 받지 못했는데,

무한한 사랑을 자식에게 베풀라고 강요받으며,

왜 니는 사랑을 모르냐고 타박을 받는다고.

거기다가 미성숙하며 공포스럽던 부모는 힘 빠져도 영생하실 거 같고,

내 내리사랑은 늘 배은망덕에 귀결되고,

이쪽도 그쪽으로 영원할 거 같은 느낌적 느낌이라고.


그런 의미로, 에브리맨은 신선했다.

노년과 죽음에 관해 명확했고, 자비 없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톤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관대해지지 않아서 읽기가 편했다.

이런 주제가 재미있기가 참 어려운데, 재미조차 있었다.


주인공이 죽어,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유태인 이웃과 함께 조성하여 묻힌 묘지에 안장되는 장면이 나오고,

형제 하위가 조사를 하는 장면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곧이어 이제는 땅속에 들어가 안식하게 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주인공이 말하기 시작한다.


삶은 얼마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균등하게 후회스러운가를.

모르고 한 실수보다 알고도 저지른 숱한 잘못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를.

소중한 것들은 왜 그리도 잃고 나서야 후회하게 되는가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과 비슷하게 혹은 조금 빠르게 이 길을 걸었던가를.


재주 있고, 매력 있던 한 청년이 중년이 되고,

어리석은 선택으로 첫 번째 아내를 택하여 두 아들을 낳고,

제대로 한 선택으로 두 번째 아내를 얻어 딸을 낳지만,

첫 결혼의 아들들은 어머니의 아이들로만 존재하며,

그 결혼을 유지하지 못해서 생긴 그늘이 관계를 망쳐버렸다.


훌륭한 여인이고 좋은 사람이었던 두 번째 아내는

충동적인 욕망으로 저지른 실수로 인해 떠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

단지 욕망의 상대였던 어린 모델과 결혼하는 더 큰 잘못을 저질러 버린다.


어렸을 때는 이해 못 했던 많은 부분들이

단순히 잘잘못으로만 구별되던 일상의 서사가

살아도 보고, 겪어도 보고, 질척대기도 하다 보니, 가슴에 와닿더라.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듯이,

우리는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 더 큰 실수를 저질러 덮으려 할 때도 있지 않나 말이다.


그렇게 중년에서 노년이 되면서,

그 사이사이에 있었던 기회들을 놓치고,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망치며,

스스로를 기어이 외톨이로 내몰고 마는 주인공이

나중에 자신이 큰 수술을 받게 되는 순간에

그 누구에게도 연락하기가 마땅치 않아 홀로 수술실로 들어가고..

그 수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고 만다.

소설에 맨 첫 장에 나온 장면이랑 연결되는 이야기가 이렇게 완성된다.


애틋하더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실수하고, 질척이고, 후회하고, 자책하고,

또 실수하고, 질척이고, 후회하고, 자책하다가

곧 떠날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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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선택하며

#그잘못을_바로잡으려는_노력이부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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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네_서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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