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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Oct 23. 2024

에브리맨, 우리는 질척이며 살지

필립로스 



노년이나, 죽음에 관한 글들이 즐거울 리가 없다.

노년이나, 죽음이 즐거울 리가 없으므로.


우리는 길게 살기 시작했고,

세상 어디나  노령화인 세계로 가고 있는 지금,

그 현상을 반영하는 글들이 고상하고 향기로운 출판사에서 부쩍 나오는 느낌이다. 


이역 땅 미국에서도 도서관에 가보면,

민음, 문지, 창비의 신간들 중에는 노인문제를 다루는 게 많았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골라든 책이 그럴 경우, 

나는 그 책을 읽다가 중도에 내려놓는다.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공포스럽고, 외면하고 싶고, 무엇보다 징징거려서다.

문제가 있는 누군가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많이 듣는 나는

문학에서조차 그 푸념을, 불만을, 불편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고 최승자 시인이 삼십 세라는 시에서 말했다.


그 시를 받고  오십 세는 이리 말하고 싶다.

여전히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그 마음 위로 켜켜이 많은 짐들이 내려앉는 세월을 보냈다고.

받은 기억이 도대체 없는데, 내내 채무자 신분으로 사는 기분을 아느냐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모에게 받지 못했는데, 

무한한 사랑을 자식에게 베풀라고 강요받으며, 

왜 니는 사랑을 모르냐고 타박을 받는다고.

거기다가 미성숙하며 공포스럽던 부모는 힘 빠져도 영생하실 거 같고, 

내 내리사랑은 늘 배은망덕에 귀결되고, 

이쪽도 그쪽으로 영원할 거 같은 느낌적 느낌이라고. 


그런 의미로, 에브리맨은 신선했다.

노년과 죽음에 관해 명확했고, 자비 없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톤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관대해지지 않아서 읽기가 편했다.

이런 주제가 재미있기가 참 어려운데, 재미조차 있었다. 


주인공이 죽어,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유태인 이웃과 함께 조성하여 묻힌 묘지에 안장되는 장면이 나오고,

형제 하위가 조사를 하는 장면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곧이어 이제는 땅속에 들어가 안식하게 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주인공이 말하기 시작한다.


삶은 얼마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균등하게 후회스러운가를.

모르고 한 실수보다 알고도 저지른 숱한 잘못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를.

소중한 것들은 왜 그리도 잃고 나서야 후회하게 되는가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과 비슷하게 혹은 조금 빠르게 이 길을 걸었던가를.


재주 있고, 매력 있던 한 청년이 중년이 되고,

어리석은 선택으로 첫 번째 아내를 택하여 두 아들을 낳고,

제대로 한 선택으로 두 번째 아내를 얻어 딸을 낳지만,

첫 결혼의 아들들은 어머니의 아이들로만 존재하며,

그 결혼을 유지하지 못해서 생긴 그늘이 관계를 망쳐버렸다.


훌륭한 여인이고 좋은 사람이었던 두 번째 아내는

충동적인 욕망으로 저지른 실수로 인해 떠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 

단지 욕망의 상대였던 어린 모델과 결혼하는 더 큰 잘못을 저질러 버린다.


어렸을 때는 이해 못 했던 많은 부분들이

단순히 잘잘못으로만 구별되던 일상의 서사가 

살아도 보고, 겪어도 보고, 질척대기도 하다 보니, 가슴에 와닿더라.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듯이,

우리는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 더 큰 실수를 저질러 덮으려 할 때도 있지 않나 말이다.


그렇게 중년에서 노년이 되면서,

그 사이사이에 있었던 기회들을 놓치고,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망치며, 

스스로를 기어이 외톨이로 내몰고 마는 주인공이

나중에 자신이 큰 수술을 받게 되는 순간에 

그 누구에게도 연락하기가 마땅치 않아 홀로 수술실로 들어가고..

그 수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고 만다.  

소설에 맨 첫 장에 나온 장면이랑 연결되는 이야기가 이렇게 완성된다.


애틋하더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실수하고, 질척이고, 후회하고, 자책하고, 

또 실수하고, 질척이고, 후회하고, 자책하다가 

곧 떠날 우리 모두가. 










#내가평생을혐오하던

#잘못선택하며

#그잘못을_바로잡으려는_노력이부족한

#질척이고실수하며

#허물투성이인

#노인네_서사까지

#이해하고연민하게한 

#필립로스는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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