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첫 번째
작품 속에 어린 소년이 술집마다 돌아다니며, 아버지를 찾는다.
어머니가 피를 토하고 누워계신다고,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를 모셔가야 한다고 돌아다닌다.
소년은 술집 가게마다 들려 자신의 불행한 이야기 전하고, 술꾼들 사이에게 술을 슬쩍 마신다.
무슨 소리에도 늘 깔깔 웃는 술꾼 아저씨, 놀리는 아저씨,
고만고만한 아저씨들 사이에서 팔 하나를 잃어버린 나무인형 깎는 아저씨만
유독 그를 미워하며, 죽이려고까지 하며 적대적이다.
적당하게 술이 취하고, 딱 두 잔만 더 마셨으면 하는 취기가 오르자,
길거리에서 쓰러져 자는 취객의 주머니를 뒤져서 마지막 술집으로 향한다.
평양집이라는 술집 아주머니 방에서는 아기가 울고,
그러거나 말거나, 돈을 쥐고 온 아이에게 술을 파는 아주마이는
소년이 술을 마시며 아주마니는 애가 다 클 때까지 부디 죽지 말아 달라며 주정을 하자,
그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한다.
이 빛나는 단편이 그 돋보이는 반전을 보이는 건, 그 소년이 취하고 싶을 만큼 취하고 난 뒤다.
소년은 자신이 배회하던 동네 언덕배기에 올라서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고아원을 바라본다.
들키지 않고 돌아가서 자신이 나온 이부자리에 도로 누우려 개구멍을 찾는다.
애초에 소년에게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어머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아바이가 없었을까?
아니면, 그런 어머니나 아버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둘 다 없어졌을까?
소년은 밤마다 그런 순례를 행하며, 착실하게 자기 아바이의 길을 걸을까?
글이 우화적이면서도, 스릴이 넘치고,
문장은 또 얼마나 뛰어난지.
뛰어난 원단 하나를, 딱 한 번의 가위질로 재단한.. 그렇게 보이는 옷 같은 단편이다.
그중 인상 깊었던 건, 평안도 사투리였다.
전쟁 이후에 술집에서 아바이를 찾는 소년에게, 뛰어난 장치로 설계되었더라.
후반에 반전을 만나기 전에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전쟁 겪은 이후 버전처럼 느껴져서,
세상 물정 모르는 백석의 흰 당나귀에게 옆차기를 날리는 고아 소년의 세상 풍파 내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같은 피난민이라도, 이북 피난민은 돌아갈 고향이 없고,
같은 고아라도, 이북 출신 고아는 찾아 나설 먼 친척 하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어마어마한 단편은 정말 필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들게 한다.
작가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든, 그 시대를 제대로 꿰뚫어서,
그 작가 정신으로 작품 속 인물로, 사건으로, 상황으로 기록하여 남기면,
그 정신은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읽던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는 불멸의 힘을 가지는 것을 느낀다.
대학에 들어가서, 교양 과목으로 들은 한국문학 시간에 최인호 작가의 글을 처음 접하고,
별들의 고향 작가가 맞는지를 몇 번을 확인했는지 모른다.
대단한 작가가 맞고, 그렇게 소비되어 안타까운 면도 있지만,
어찌 보면, 그 또한 시대상이고 환경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거.
#모든작가지망생을
#기죽이는
#빛나는글
#최인호작가
#후덜덜이유
#그러나
#늙어가며발견한
#늦게읽는재미에
#중년독자는
#괜찮어라
시장 골목엔 찬 겨울바람이 불고
신문지가 이리저리 날아다녔습니다.
해 질 녘부터 술집 다섯 군데를 들렸고,
최소한 술 일곱 잔은 마셨는데도
아이는 마치 아직 공복인 듯 부족했습니다.
시장 끝, 평양 집에 도착한 아이는
유리창 너머로 낯익은 얼굴이 있는지 들여다봤습니다..
.....
구레나룻 기른 사내가 껄껄 거리며 웃었다.
술만 취하면 그는 늘 웃었다.
제 여편네가 피난통에 총알 맞아 배에 공기구멍이 휑하니 나서
죽어버렸다는 얘기를 하면서 웃었고,
나이 오십 되기 전에 자살하겠다면서도 웃었다.
그 사람과 비교하면 또 한 사내는 아주 달랐다.
걷어올린 팔뚝에 문신이 거뭇거뭇한 사내로,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이프를 던지곤 했다.
전쟁에서 잃은 그의 오른손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주춤주춤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탁자위엔 투명한 막소주가 놓여있었다.
아이는 그 소주의 맛을 알고 있었다.
.....
‘아, 아, 이 어두운 밤 아바지는 정말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잠시 비틀거렸다.
허나 술에 취했다고 해서 자기가 빠져나온 철조망 개구멍이
어디에 있을까 잊어버린 그는 아니었다.
그는 잠시 비로드 빛깔로 빛나는 어둠 속에서
보모에게 들키지 않고
체온이 아직 남아 있을 침구 속으로
어떻게 무사히 기어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허나 그는 술취한 사람 특유의 자기나름식 안이한 낙관에 자신을 맡겨버렸다.
언덕 아래에서 차가운 먼지 냄새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사냥개처럼 그 냄새를 맡으며 이를 악물고,
내일은 틀림없이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