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의 '고장난 벽시계'는 우리 엄마가 잘 부르는 노래다. 가사를 가만히 듣다 보면 참 양가감정이 든다. 세월이 고장나지 않고 흐르는 게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니 말이다. 죽을 쑤든 밥을 하든 세월은 꼬박꼬박 째깍째깍 잘 흘러가는 게 좋다. 그런가 하면 야속하게 흘러가 버린 세월은 언제나 아쉬움 덩어리다. 엄마에 대한 감정도 그렇다. 고장도 안 나는 구순 노모의 시계가 더욱 그렇다.
“동생, 잘 있재?”
일요일 오후, 부천에 사는 작은 누나한테서 온 전화다. 안부를 확인하곤 누나가 말했다.
“엄마 보게 다음 주나 그다음 주에 서울에 한 번 갈게.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올게.”
엄마가 우리 집에 묵는 3개월의 마지막 달이니 창원 가시기 전에 누나와 매형이 한 번 뵈러 온다는 말이었다. 모처럼의 남매간의 통화는 우리끼리만 아는 대사로 마무리됐다.
“엄마한테는 내가 언제 간다고 말하지 마. 무슨 말인지 알지?”
“크크크, 알고 말고요.”
누나와 나는 이걸로 엄마를 한참 까며 웃었다. 무슨 소리일까? 딸이 엄마 보러 온다면서 왜 엄마한테는 미리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딸이 놀러 온다는데 엄마도 동네방네 자랑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면 얼마나 좋은가. 지난번 만난 게 겨울이었으니 엄마는 반년 만에 딸과 사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소풍날보다 소풍 기다리는 날이 더 즐거운 법인데, 왜 누나는 엄마에게 미리 알리지 말라 할까?
문제는 시도 때도 없이 걸어대는 엄마의 전화였다. 누나가 온다고 말을 하면 그날부터 엄마는 계속 전화로 확인을 하기 시작한다. 누나가 닷새 뒤에 간다고 알려주었다 치자. 엄마는 그날 저녁쯤에 누나한테 전화할 것이다. “서울 온다고? 아이고 좋다. 다섯 밤 자면 되네?” 며칠 뒤에는 “이제 두 밤 남았나.” 그다음에는 “내일 몇 시에 올 끼고?”
온다고 한 당일이면 아침부터 엄마는 전화기를 붙들고 산다.
“출발했나? 아직도 안 나섰나? 아직도 안 나서면 우짜노.” 잠시 후에 다시 같은 전화다.
“어디쯤 오고 있노?” 다시 또 걸어선 “12시가 다 됐는데, 와 아직 안 오노?” 이런 식으로 시달려본 누나는 엄마한테는 오는 날짜를 미리 알려주지 말라는 거다.
이런 번거로움은 나도 만만하지 않음을 안다. “누나가 며칠에 온다고 했노?”로 시작해서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면 “누나가 내일 오는 것 맞재?” 엄마의 확인이 끊이지 않는다. 온다고 한 그날이면 “누나가 왜 아직도 안 오노? 무슨 일 생긴 거 아이가? 시간이 한참 지난 거 아이가?” 노심초사한다. 서울은 차가 많이 막혀서 늦을 수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엄마는 계속 시계를 보고 안절부절 기다린다. 21세기 손전화기 문명이 가져다준 풍경이다.
전에 내가 시골 엄마집에 갈 때 풍경도 그랬다. 엄마가 혼자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루 전에는 엄마에게 알리고 가야 했다. 엄마가 집을 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간다는 전화를 받고 나면 엄마는 몇 시간 후 확인 전화를 했다. “내일 오나?” 당일 아침에는 “출발했나?”, 대전이나 추풍령을 통과할 때쯤엔 “몇 시에 도착하노?” 창녕을 통과할 때쯤 “다 와 가나?” 그러고도 다시 울리는 전화. “와 안 오노?” 조금 후엔 “어데고?”…
엄마와 같이 살다 보니 이젠 요령이 생긴 셈이다. 내가 나가면 몇 시에 돌아온다는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밤 11시는 넘을 테니 기다리지 말고 주무시라 하고 간다. 전화기에 불이 나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한동안은 엄마는 전화를 했다. 내가 전화를 안 받자 엄마도 전화를 덜 했다. 대신 내가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엄마 방에 불이 켜져 있다. 환갑이 넘은 아들을 왜 기다리냐고 다그치면 잠이 안 와서라고 얼버무린다.
엄마와 함께 지낼수록 나는 엄마가 궁금하다. 김원경이라는 한 사람, 아흔이 넘도록 살아낸 인생에 대해서 말이다. 스물에 결혼하여 쉰 살까지 시아버지를 모셨고 예순에 시어머니까지 떠나보낸 엄마. 예순일곱에 남편과 사별한 후 김원경이라는 이름 석 자를 찾고 자전거로 이동의 자유도 얻었다. 67세 이후 엄마 삶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런 질문을 하기에는 67년 동안 엄마가 길들어 산 가부장제의 그늘이 너무 짙었을 것이다.
엄마도 어린 소녀 시절이 있었고 청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엄마의 시계는 오직 자식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을까? 엄마에게 자식을 빼면 삶의 의미는 더 이상 없는 걸까? 자기만의 꿈, 자아, 자기 길, 자기 취미… 이런 걸 엄마는 가져본 적도 꿈꾼 적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런 걸 생각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오직 남편과 시부모와 가족, 특히 5남매 먹여 살리는 일에만 열중했을 것이다. 허리가 휘고 뼈마디가 굵어지도록 희생하고 헌신했을 것이다.
엄마에게 인생이란 뭘까? 나는 엄마에게서 늘 양가감정을 느낀다. 엄마에게 회한은 없을까? 엄마가 내 곁에 계신 게 고맙다가도 엄마가 살아온 세월에 마음이 아프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사랑과 섬김을 받으며 무난하게 잘 지내는 엄마가 고맙다. 집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며 아들 며느리와 손주의 사랑과 돌봄을 받는 엄마가 고맙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를 보면 짠하다. 자식 말고도 인생의 즐거움이 얼마나 많은데 엄마는 자식 말곤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에게 궁금한 게 많은데 엄마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내게 얘기해 줄 게 없어 보여 나는 슬프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지 않는 엄마가 아쉽다. 몇 해 전에 세상 떠난 막내 고모나 영덕 장모는 자기 얘기를 쓰자면 책 10권도 모자란다던데, 엄마는 아닌 것 같다. 엄마의 세계는 눈앞의 자식뿐이다. 자식들은 각자 자기 삶을 사는데 구순 노모의 시계는 아직도 자식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엄마의 시계는 고장도 없다. 엄마가 고마우면서도 바라보기 짠한 건 어쩔 수 없다. / 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