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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Oct 29. 2024

입원 중인 엄마와 통화, 살날이 얼마나 남았나 싶어서

구순 노모가 자꾸만 인지가 흐려지고 기운이 약해지고 있다

덧없는 시간

       김금여(1940~    )


책을 읽다가 자주 덮는다

무얼 깨달았나 싶어서


길을 걷다가 자주 뒤돌아본다

걸어온 길이 그리워서


잠을 자다가 자주 깬다

살날이 얼마나 남았나 싶어서




 '덧없는 시간'이 읽히는 계절이다. 아파서 누워 있는 엄마에게도 시간은 여축없이 흐른다. 걸어온 날을 돌아볼 기운도 기억할 힘도 없을 엄마. 살날이 얼마나 남았나 생각하기 힘들 엄마. 덧없는 시간에 온 몸을 맡기고 누워있는 엄마. 엄마에게로 서성이는 내 마음.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썸네일의 사진 속 엄마는 제법 기운이 있고 또록또록한 표정이다. 겨우 3주전 모습인데 그새 엄마 상태는 하루하루 내리막이었다. 통화하는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인지가 흐려지는 엄마. 구순의 엄마에게 혈뇨를 계속 쏟게 하는 방광암이 야속하다. 매번 혈관 찾아 바늘 꽂기도 4시간 동안 수혈받기도 엄마에겐 고역이다.

 



나: 엄마, 오늘 기분은 어때?

엄마: 안 좋다. 온몸이 아프다. 내가 멀리 병원에 와 있다. 집에 가야 되는데 우예노.

나: 엄마, 병원에 있는 거 알지. 무슨 병원에 있는지 알지 엄마?

엄마: 내가 멀리 서울 와 있잖아. 어딘지는 모르겠다.

나: 엄마, 생각이 안 나는구나. 엄마 거기 영덕인데 모르겠어?

엄마: 여기 서울이구마느

나: 엄마 그럼 나는 누구야? 내 이름은?

엄마: 그거야 알지. 화숙이.

나: 그래, 엄마 내가 무슨 띠더라?

엄마: 호랑이 띠 아이가.

나: 잘했어 엄마. 그럼 화숙이 아주 어렸을 때 별명이 뭐더라? 엄마가 화숙이 부르던 별명?

엄마: 별명? 있었지. 모르겠다 기억 안 난다.

나: 엄마가 설마 그걸 잊어버려? 며칠 전에도 말했잖아. 무슨 '단지'잖아. 생각해 봐.

엄마: 니 별명 있었는데 모르겠다.

나: 엄마, 알분단지 차단지를 우째 잊어버리노.

엄마: 아이구 맞대이 알분단지 차단지. 하하하하 맞다.

나: 엄마, 지금 엄마 나이는 몇 살?

엄마: 90!



엄마: 화숙아, 언제 오노? 왜 아직도 안 오노?

나: 엄마, 나 기다리고 있는 거야? 아직 엄마 대구 병원 가자면 1주일 더 기다려야 하는데.

엄마: 그래, 온다면서 니 언니도 안 오고.

나: 그래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려. 내가 며칠 있다 잠깐 들를 거야.

엄마: 내가 이래 멀리 나와서 오래 있으모 우예노. 집에 가야 된다. 얼릉 온나 집에 가게.

나: 엄마, 집에 가고 싶구나? 엄마 지금 집에 누가 있는데?

엄마: 너그 아부지도 있고 아덜도 있지.

나: 집에 애들 누가 있는데 엄마?

엄마: 진량이도 있고 화숙이도 있고 다 있지.

나: 엄마, 화숙이는 지금 안산에서 전화하잖아. 엄마, 집에는 아무도 없잖아.

엄마: 아이다, 내가 이래 오래 집을 비우면 안 된다. 집에 아덜 기다린다 빨리 나 데리러 온나. 집에 가자.




나: 엄마, 오늘은 기분이 어때?

엄마: 화숙아 언제 오노? 왜 이래 안 오노?

나: 엄마, 내가 두 밤 자고 모레 엄마 병원에 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줘.

간호사: 여보세요 보호자님? 어머니가요, 계속 집에 가신다고 짐 싸놓고 밤에도 병실 나가려 하시고 그래요.

나: 네, 선생님 엄마 상태가 많이 안 좋죠? 수고 많으십니다.

간호사: 너무 힘들게 하세요. 마침 전화오셨으니까 따님, 싸인해 주셔야 해요. 전화로라도요.

나: 전화로 무슨 싸인요?

간호사: 어머님이 침대에 가만히 안 계시고 자꾸 내려오시고 나가려고 하세요. 이러다 사고 나면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보호자님 오실 때까진 묶어 놔야 할 거 같아서요. 안 그러면 무슨 일 나도 책임 묻지 않겠다는....

나: 침대에 손발을 묶는다는 뜻인가요?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침대 난간 높여서 안전하게 해 주시고 잘 달래주시면 안 될까요?

간호사: 그렇게 해 드렸지만 소용없어요. 높은 난간을 넘어서 내려오시려 하고, 말을 안 들으세요....

나: 선생님, 묶는 건 아니라고 봐요. 제가 형제들하고 상의하고 다시 통화하기로 해요.




나: 언니야, 엄마 상태가.... 기력도 딸리고, 인지도 흐린 거 같고 섬망이 하루 다르게 심하네 우째노.

언니: 그렇제. 병원에 오래 계신 노인들 다 그렇다.

나: 근데 언냐, 통화하니까, 엄마가 집에 가야 한다고 자꾸 보따리 싸서 나갈라 한대. 그래서 간호사가 나보고 싸인하래. 안전을 위해 침상에 묶어야 한다고(훌쩍훌쩍).

언니: 뭐라고? 그건 안 되지. 말해라. 묶지 말라고. 언니가 당장에 엄마한테 갈게.

나: 언니 시간 되겠나. 나는 모레 갈 수 있어. 병실에서 한 밤 자고 오려고 시간 빼놨어.

언니: 묶는 건 안 되지. 상태가 많이 안 좋구나.




나: 간병사 선생님, 엄마 좀 잘 부탁드려요. 언니가 곧 올 거예요.

간병사: 네, 어머니가 소변줄 달고 기저귀 하시고도 30분에 2~3번 화장실을 가세요. 그냥 하시라 해도 요의를 느끼면 꼭 스스로 하려고 가시니, 얼마나 힘들어요. 저러다 쓰러질까 걱정돼요.

나: 아, 그러게요. 넘 수고 많으세요 선생님. 혈뇨를 화장실 안 가고 보신다는 게 용납이 안 되시는 거죠.

간병사: 혈뇨가 안 멎으니 기운이 없으시죠. 말려도 자꾸 일어나세요.

나: 조금만 기다리시면 언니가 올 거예요. 



나: 엄마, 많이 힘들어? 지금 누구랑 있어?

엄마: 힘들지. 에미하고 있어서 괜찮다.

나: 그래 엄마, 좋아? 지금 어딘지 알아?

엄마: 그래 좋다. 서울 왔으니 좋지.

나: 엥? 아하, 엄마 서울 아들네 왔다고 생각하는구나. 아들도 있어?

엄마: 아들은 홍콩 있지. 에미하고 손자들 있다.

나: 그렇구나 엄마. 언니는 왔다가 올케하고 교대하고 갔지?

엄마: 그래 왔다 갔다. 또 올 거다.

나: 그래 엄마, 내가 내일 엄마한테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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