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 세상을 떠난 후 15일째야.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게 실감이 안 나는 건 뭐지? 삶과 죽음의 경계도 이승과 저승의 경계도 흐릿한 거 같아. 우린 어쩜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닌지도 몰라, 그치?
나는 지금 우리 딸- 엄마의 손녀- 민지가 공부하는 대학교 한편에서 글쓰고 있어. 서울이야. 딸은 도서관에서 자기 공부하고 있지. 모녀는 밥시간에만 뭉쳤다가 다시 떨어져 자기 할 일하며 한 공간에 있어. 10월 초순 엄마한테 다녀온 후에도 여기 와서 엄마한테 편지 썼더랬지. 그때만 해도 한 달 후에 엄마가 이 세상에 없을 줄은 생각도 못했지. 야속한 시간이 어찌나 나를 속이며 달아나는지, 감당이 안 돼 엄마.
잘 가오 그대 이 어둠은 오래지 않으리, 잘 가오 엄마....
글 쓰는 내 귀에는 416 합창단이 부르는 '잘 가오 그대'가 흘러들어오고 있어. 슬픔도 절망도 아픔도, 이 어둠은 오래지 않고, 그 눈부신 아침엔 다 잊는대 엄마. 엄마를 다시 만나는 그날, 찬란한 아침이 온대. 그날 우린 어떤 모습일까? 그날 우리는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엄마? 슬픔도 절망도 아픔도 다 잊었으니 우리 얼굴도 옷도 찬란함에 어울리는 모습이겠지? 그때 우린 함께한 시간을 다 잊었을까? 기억할까?
엄마, 수의 입은 마지막 엄마 모습이 또렷이 떠올라. 꿈에 올 땐 무슨 옷을 입고 올까? 사람들이 그러더라. 망자의 옷을 다 태워줘야 황천길에도 꿈에 올 때도 입을 옷이 있다고. 난 안 믿어. 엄마야 세상 고운 수의 입고 떠났으니 그대로 꿈에 와도 환영이야. 나는 엄마 옷을 다 못 버리고 좀 챙겼어. 내가 지금 입은 옷 보여? 밝은 베이지색 패딩, 엄마가 아주 잠깐 입었던 옷이라 기억할라나? 맞아. 10월에 내가 사준 거.
아픈 엄마가 입고 벗기 좋게 내가 휙 나가서 사 왔던 거잖아. 엄마가 나 쓰라고 준 지역화폐로 나는 옳다쿠나, 엄마에게 경량패딩을 사 입혔지. 기력이 많이 약해져서 엄마 혼자 길고 무거운 옷은 입기 어렵겠다 싶었거든.이걸 10월 중순 영덕 병원에 다시 입원할 때 입고 갔고 10월 말 대구로 전원할 때도 입었지.예감은 왜 적중할까....깃털처럼 가벼운 엄마 몸에 맞는 가벼운 패딩, 이게 마지막 새 옷이었지.
몸이 아픈 최근 몇 년간 수시로 옷장을 정리하던 엄마가 생각나. 내가 갈 때마다 "이거 니가 입어라.", "후원할 데 있으면 줘라." 며 비워나갔지. 가을에 가서 보니 과연 옷장이 말끔하더구먼. 대구 가는 차 안에서 세 딸에게 둘러싸여 힘없이 웃던 엄마. 그때 입고 있던 패딩을 엄마 장례식 후 내가 가져와 입고 있어.
엄마, 이 세상 떠나는 날 나는 무슨 옷을 입게 될까?
엄마, 나는 엄마처럼 수의 입고 가진 않을래. 엄마 세대 어르신들은 수의를 따로 장만하는 분위기였지? 난 평소 내가 좋아하던 옷으로 갈거야. 장례식장에서도 고운 옷들 입으라 미리 말해 둘까 해. 일제 이전엔 평민들은 혼례복을 수의로 많이 입었다며? 솔직히 장례식장 검은 상복이 맘에 안 들어. 35년 묵은 내 결혼 예복 한복과 두루마기를 수의로 남겨 둬야겠어. 천연 소재니까 태울 때 환경오염도 적을 거라고 봐.
엄마, 염하고 입관할 때 지나치게 엄마 몸을 세게 다루고 동여매는 게 영 싫더라. 먼 산으로 상여 메고 갈 것도 아니고 부패하도록 시신을 방치하는 시대도 아니잖아. 나는 우느라 차마 제지하진 못했지만 쓰잘데 없는 예전 풍습에 시간과 에너지를 쓴 거 같아. 살살 옷 입혀 관에 눕혔다 잠시 운구하면 불구덩이로 들어가잖아. 태워질 내 몸에 화려한 옷은 사양할 거야. 꽁꽁 동여매는 염습도 과하지 않아?
엄마, 이 세상 마지막 날 우린 무슨 옷을 입고 만나게 될까? 내가 뭘 입은들 엄마가 못 알아볼 일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