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떠난 지 13일째 하루가 저물었어. 나는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도 외부 일정을 어지간한 건 다 취소했어. 사람들 속에서 말고 엄마 생각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랬어. 우울하다거나 슬피 울고 있는 건 아냐. 매일 매 순간 생각나는 엄마를 놓치고 싶지 않고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서 그래.
오늘은 엄마가 쓰던 손수건 2장을 곱게 다림질했어. 엄마 가방에 있던 분홍색 꽃무늬 손수건은 장례식 후 엄마 유품 정리할 때 내가 챙겨 왔어. 내가 가져온 감청색 엄마 겨울 패딩 주머니에서 오늘 하얀 손수건을 발견했어. 아기 손수건처럼 하얀 가제에 자잘한 점과 곰돌이 그림이 드문드문 그려진 작은 손수건이야.
분홍 꽃무늬 손수건은 곱고 깨끗해 보이는데 하얀 손수건은 얼룩이 살짝 있더라 엄마. 살뜰히 문질러 빨고 삶아 헹궈 널었어. 마른 후에 보니 하얀 손수건의 얼룩은 다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어. 그래, 새하얗지 않으면 어때. 엄마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더라? 엄마의 땀과 눈물과 콧물 흔적 아니겠어? 새벽마다 기도할 때 엄마 눈물로 젖고 얼룩졌던 손수건들이잖아.
안산천변을 걸어 도서관 갈 때 다림질한 꽃무늬 손수건을 잠바 주머니에 넣고 갔어. 엄마한테 전화할 수 없으니 주머니 속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걸었어. 안산천변엔 햇살이 눈부신데 동해안 날씨는 어떠냐고, 11월 날씨답잖게 포근한데 영해도 그러냐고, 혼자 엄마한테 말하며 걸었어. 엄마 숨결과 눈물이 배어든 손수건을 지니고 있다니 참 좋은 거 있지. 걷다간 땀이 살짝 난 이마를 손수건으로 부드럽게 문질러봤어.
엄마의 장례식장에 엄마교회분들이 조문 와서 예배할 때 눈물 흘리는 분들이 많더라. 엄마를 생각하며 엄마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나도 계속 눈물로 손수건을 적셨지. 시골 교회 노인이 또 한분 돌아가셨다 소식전하던엄마, 그 엄마가 떠나셨네. 연로하신 엄마 친구 권사님들은 대구까지 오지 못하셨어. 엄마를 잘 챙기던 공권사님과 40여 년 만에 포옹해서 좋았어. 장례식 끝나고도 마음을 나누며 통화했어.
그런데 엄마, 목사님이 눈물의 추모예배를 진행했지만 그분의 추도사 내용은 맘에 들지 않았어. 왜냐구? 엄마를 너무 납작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게 싫었어. 엄마는 평생 눈물로기도하셨다, 새벽마다 자식들 위해 우셨다, 그 소리만 했어. 특히 먼저 하늘나라 간큰 아들, 아직 주님을 믿지 않는 작은 아들 때문에 울며 기도했다, 외롭게 사셨다, 반복하대?바로 곁에 엄마 작은 아들이 울고 있는데 알이야. 난 한 귀로만 들었어.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 마음으로 들어주기가 참 불편했어. 김성교란 한 사람의 생애를 자식바라기로밖엔 기억할 내용이 없다는 걸까? 노래 잘하고, 아름답고, 총기 있고, 글 잘쓰고, 대화 깊고, 음식 잘하고, 필사 잘하고.... 잘하는 게 많은 엄마였잖아. 자식들은 온통 엄마를 외롭게 하고 돌아보지 않은 나쁜 자식들로 납작해 지더라? 특히 막내 동생을 '아직 믿음 없고 엄마 뜻 거역하는 자식'이라고 해쌌어.
타산지석으로 다시 배웠어 엄마. 교회가 어떻게 인간미를 잃을 수 있는지, 슬픔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지 맑게 생각해 보게 되더라. 너무 교조적이고 사업적인 멘트만 들리는 건 내 마음이 꼬여서일까? 엄마와 작별하는 자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건 고사하고 엄마 눈물흘리게 한 '못난이'들로 몰아가는 게 과연 예수 마음일까? 하나님을 부르는 예배라는 거룩한 형식만 있고 인간적인 공감과 소통은 없을 수 있다는 게 슬펐어.
엄마! 장례식 때 그런 기분이었다는 걸 고백하는 것 뿐이야. 엄마를 보내며 어떻게 살지 다시 생각하게 된 거 같아. 엄마가 남긴 손수건 2장이 그래서 고마워. 엄마의 눈물, 엄마의 땀, 엄마의 사람 냄새를 기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