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벌 김화숙 Nov 20. 2024

엄마 55, 나 28, 아빠 60

35년 전 사진 속 우리 세 사람은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엄마!


엄마 떠난 후 20일째 아침이야. 그저께부터 밤 최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어. 지난 주말 우리 딸 학교에 같이 가서 글 쓸 때만 해도 경량패딩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덥게 느껴지던 날씨가 드디어 훅 추워졌어. 오늘 아침엔 엄마가 내 몸을 감싸고 있어. 몇 년 전에 엄마가 준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엄마가 끼던 장갑을 끼고 나왔어. 싸늘한 아침 공기로 숨을 쉬며 내가 무슨 생각했는 줄 알아?


이제 엄마의 겨울나기를 걱정할 일이 없네? 추운 날 난방 안 되는 욕실 드나들 엄마 신경 쓰일 일도 없네? 제발 보일러 아끼지 말고 따뜻하게 지내라 잔소리해 댈 일도 없어져버렸네? 잘난 딸년 잔소리 안 들으니 좋아?


"엄마! 춥다고 방에만 있어? 보일러 켜고 따뜻하게 살아!"

"내 방 하나만 난방하지 전체 돌리면 돈을 어째 감당하노."

"엄마, 부시킬 자식이 있어 식솔이 있어? 돈돈돈 아끼 남겨 둘라 하지 말고 엄마한테 쓰란 말이야!"


그래, 징하게 실랑이했지 우리. 아~~  날씨 까이꺼 겨울인데 추워야 맞지. 늦가을이 비정상적으로 이상고온이더니 드디어 추워지고 있어. 울 엄만 더 이상 시골집 독거노인 아녀. 추위 걱정 안 해도 되는 곳으로 갔다 이거야. 더위도 외로움도 아픔도 없는 데서 잘 지내지 엄마?




엄마! 엄마 보낸 후에 옛날 사진을 찾아보게 됐어. 엄마랑 찍은 사진을 한 장 꺼내 내 책상 앞에 새로 꽂아 놓고 날마다 보고 있어. 뭐냐구? 내 결혼식 날 신부대기실에서 나랑 엄마랑 아빠 셋이서 찍은 사진이야. 긴장해서 잘 웃지도 못하던 그날, 아빠와 엄마가 신부 대기실에 들어왔지. 면사포쓰고 드레스 입고 손에는 백합 부케를 든 신부와 양복 정장한 아빠 그리고 분홍 한복 입은 엄마. 이렇게 셋이 찍은 사진이야.


스물여덟 살 신부도 그렇지만 엄마도 아빠도 너무너무 젊고 고운 모습인 거 알아? "오늘은 당신의 남은 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그 말이 이해되는 거 있지. 저 때 엄마는 55세였고 아빠는 60세였어. 지금의 내 나이 기억해 엄마? 엄마 떠나기 얼마 전엔 내 나이도 막 헷갈렸잖아. 62세 이 딸 보다 저 때 엄빠가 더 젊었다는 말씀이야. 엷은 미소 짓고 앉은 두 분 얼굴 좀 봐. 시집 안 갈 줄 알았던 딸년을 드디어 치우니 좋았어?


숱 많고 까만 엄마의 머리카락은 또 어찌나 고운지. 엄만 여든이 넘도록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으로 살았지. 엄마가 잠시 염색하던 80대엔 이 딸은 회색 자연머리카락으로 사는 50대. 내가 엄마집에 가면 웃픈 장면이 연출되곤 했지. 80대 노모는 까만 머리카락이고 50대 딸은 반백이고. 잔소리 꽃이 피어날 수밖에. 


"젊은 사람이 염색 좀 하고 그래라. 화장도 안 해 염색도 안 해, 추레한 아줌마라고 사람들이 무시한다."

엄마 지청구에 내가 들은 척도 안 하다가 한 번씩 결국 들이받았겠지.

"내가 염색을 안 하든 하든 남이 무슨 상관이래? 나이 먹고 머리 하얘지는 게 흉이야? 남의 눈에 좋자고 몸에 안 좋고 눈에 안 좋은 염색을 해? 나 건강하게 살고 싶으니 제발 걱정 붙들어 매셔."

"야가 세상모르는 소리 하고 있다. 요샌 좋은 염색약 많단다. 촌 할마이들 염색 안 사람 있나 봐라. 혼자만 허옇게 댕기면 더 늙고 없어 보여 안 된다."


엄마는 내가 남한테 욕 들을 게 그렇게 걱정됐어? 남하듯 하고 살라고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가르쳤건만 엄마 자식들이 남 좋도록 애쓰며 사는 인간이 없어 보여. 어쩌지? 엄마 외롭고 섭섭했어?

"그곳 풍습을 알면 진장구를 지고 다니라 했다. 사람들 하는 거 봐 가며 해라."

"집안에서 욕먹고 크는 자식 밖에 가면 칭찬받는다."

"여자는 시집가면 시집 풍습이 법이다. 본데 있어야 친정 욕을 안 먹인다."


엄마는 그렇게 살았더니 행복했어?

엄마 가르침 따르려고 나름 애쓰는 딸이었잖아? 인정하지 엄마?


인생 덧없지? 엄마가 가장 엄하게 잡아 키운 딸년이 알고 보니 가장 지멋대로 살고 있지? 자식이란 그렇더라. 24시간 단속하고 지킬 수도 없잖아. 내가 엄마 눈밖에 안 나는 딸노릇은 딱 스무 살까지더라. 아니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이미 내 자아가 꿈틀대더라. 나도 내 안에서 올라오는 질문을 어쩔 도리가 없더라 엄마.


왜?

꼭 그래야 해?

누구 좋으라고?




그래, 내 결혼식 사진 속의 55세 엄마, 볼수록 참 곱다.


저때의 엄마하고 많이 이야기하지 못한 게 아쉬워. 내 50대를 돌아볼 때 35년 전  50대의 엄마가 이제야 자꾸자꾸 궁금해. 갱년기는 어땠어? 엄만 갱년기를 어떻게 겪었지? 아니, 엄만 갱년기 따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랬던가? 갱년기 에너지 폭발해 날뛰는 나를 보고 80대의 엄마가 한 말은 기억해. 신앙생활하는데,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갱년기라고 뭐가 문제냐고 말이지. 그래, 엄마의 인생이 그랬을 거야.


가난한 장돌뱅이집의 딸로, 여자로 태어나 열아홉 살부터 아내로 며느리로, 그리고 5남매의 엄마로 살아내야 했지. 자아가 무엇이며 꿈이 뭐겠어. 자식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제 앞가림하도록 뒷바라지하는 것 말고 엄마가 뭘 더 생각할 수 있었겠어. 남편하고 뜻이 잘 맛길 하나 돈이 있길 하나....


엄만 40대에 큰 자식 둘 결혼시켜 손자들을 봤고 50대에 남은 세 자식 다 시집장가보냈더라? 내가 결혼하고 폴란드로 떠난 뒤 아래로 두 동생들도 연이어 결혼했잖아. 엄마의 50대는 차례차례 자식들 혼사였고, 다시 차례차례 손자손녀들을 보았더라. 달리 말하면 엄마는 하나하나 딸과 며느리 산바라지를 했고 미역국을 끓여줬고 손자손녀들의 기저귀를 빨았다는 말이지. 어떤 놈들은 집에 데려다 키워주기도 했고.


엄마, 지금 와서 엄마가 궁금하면 뭐 하나. 살아 있을 때 좀 잘하지, 그쟈? 한 번 간 인생 다시 불러 낼 길이 없는 게 야속하다 엄마. 50대면 흔히, 여성이 돌봄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때라고들 하지. 엄마의 50대도 그랬을까? 좀 숨 쉴만하니 아빠가 아팠고 수발 끝나고 나니 80대였지? 


엄마! 55세 엄마 60세 아빠 28세 나. 35년 전 사진 속 우리 세 사람은 언제 또다시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



이전 04화 이 세상 떠날 때 나는 무슨 옷을 입게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