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지금 엄마가 생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 '목포의 눈물'을 들으며 흥얼거리고 있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익힌 흘러간 노래 중 아마 첫 노래였을 거야. 왜냐면 엄마가 꽤꼬리같은 목소리로 잘 부르는 노래였거든. 엄마 혼자서도 불렀고 동네 사람들과 노래하며 놀 때도 부르던 애창곡이었지. 내가 꼬마였을 때 특히 시골 고향에서 라디오도 TV도 없던 시절에 엄마는 이난영이고 이미자였지.
아~~ 목포의 눈물, 엄마의 애창곡이 다르게 들려.
엄마가 떠나고 나니 엄마가 좋아하던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되네. 이 노래를 지금 와서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엄마가 애절한 목소리로 부르던 목포의 눈물을 엄마 목소리로 다시 듣고 싶어. 울 엄마 목소리는 이난영 저리 가라, 이미자, 이미자라고들 했지. 정말이지 나이를 먹어도 엄마 목소리는 고왔어. 난 음악을 즐기는 건 받았는데 엄마의 고운 목소리는 물려받지 못한 거 같지?
엄마, 밀양 사돈도 엄마처럼 고운 목소리인 거 기억해? 13년 전 큰놈 대학 입학 때 두 엄마가 우리집에 와서 같이 노래했던 것도 기억하지?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어떻게 양가 엄마들이 저렇게나 똑같이 노래를 잘할 수 있지? 둘이 마치 가수인양 노래를 불렀대니, 우리는 계속 노래를 찾아줬더랬지. 다시 한번 둘이 만나서 같이 노래하자 했건만, 한 엄마는 먼저 떠나 버렸어.
엄마 없이, 나는 밀양 엄마랑 지난 주말에 목포의 눈물을 불렀어.
엄마가 떠나고 없어서일까, 시엄마가 조금 더 엄마처럼 느껴졌어. '시'엄마로서가 아니라 내게 남은 엄마로 보게 되더라? 엄마랑 함께 못한 시간을 시엄마와 조금 더 할 수 있다는 게 고맙게 느껴진달까.
토요일 저녁을 밀양 엄마와 정서방 그리고 나 셋이서 먹고 포도주 한잔씩 마셨어. 시엄마 노래 좋아하니까 같이 노래하면 무지 좋아하거든. 시엄마 먼저 몇 곡 부르는데 내가 모르는 노래였어. 내가 받아서 엄마의 애창곡 목포의 눈물을 불렀지. 결국 엄마, 이 딸은 엄마 생각나서 눈물을 흘려버렸으니 진짜 목포의 눈물이었네.
엄마가 떠나고 나서야 엄마의 애창곡 목포의 눈물이 다시 궁금해졌어.
왜 인생은 이다지도 뒷북일까 엄마. 알고 보면 '목포의 눈물'은 나라 잃은 설움을 은유하는 노래인데, 나는 이제야 다시 확인하고 있어. 1935년에 나왔으니 엄마랑 생년이 같아. 조선총독부의 검열로 가사를 바꿔야 했을 정도로 처음엔 더 저항적인 노랫말이었대. 그시대목포가 어떤 곳이었냔 말이야. 군산항과 더불어 일제가 쌀을 수탈해 강제반출하던 항구였잖아. 눈물과 한과 울분의 이름이었지. 그걸 님을 그리는 여인의 눈물로 은유해서 불러댄 거였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왜 그리도 쉽게 판단하고 단정해 버렸을까. 옛 노래는 여자를 우는 존재로만 그린다 싶어 싫어했던 거야. 엄마를 화나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하는 아버지가 미웠던 것처럼, 여자를 울게 하는 노래가 뭐 좋다고 부르냐 이런 맘이었어. 좀 더 나이를 먹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조금씩 더 알아가면서일까, 옛 노래와 유행가 가사가 점점 가까이 들리는 거 같더라? 삶의 바닥이 보이고 그 이면도 읽게 되고 말이지.
목포의 눈물을 여자의 눈물로만, 피상적이고 문자적으로만 이해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이야. 그 노랫말에 담긴 시대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무시했으니 어찌 목포의 눈물을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겠어. 마찬가지로 엄마의 삶에 대해서도 그랬던 거 같아. 엄마가 화를 내고 울고, 아빠와 악다구니로 다툴 때, 그 배경을 어린애들이 어찌 다 알겠어. 그 정황과 맥락을 알고자 하지 않으면, 엄마는 불화하는 여자로 보일 뿐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