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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Nov 11. 2024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그래도 지금 너무너무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다.

전화

   마종기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사랑하는 엄마!

엄마가 떠나고 11일째 아침이야. 엄마한테 너무너무 전화하고 싶은 아침이야. 집전화라도 있으면 마구 울리도록 해볼 텐데, 아쉽다. 전화벨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엄마가 수화기 들기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 텐데. 어제도 그제도 실은 내 전화기에서 "친정엄마영덕"을 여러 번 눌렀더랬어. 장례식 후 유품 정리 마치고 엄마의 막내아들이 '사망신고'와 '전화기처리'까지 마친 걸 알면서도, 그러고 싶었어.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하고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야속한 기계, 나쁜 놈들, 이렇게 매정하게 엄마 번호가 없다고 건조하게 말하다니.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실감 나서, 더는 전화할 수 없다는 게 속상해서, 눈물 찔끔하고 말았어. 혹시나 하고 고집스레 다시 눌렀지. 역시나 같은 반응만 나왔어. 오기가 생기는 거야. 혹시 알아, 자꾸 걸면 엄마 목소리가 들릴지?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 이건 우리 엄마 번호란 말이야."


우겨봐도,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란 말만 해. 엄마, 하나님 나라로 걸 수 있는 전화는 없을까? 두 달 전 내가 엄마한테 갔을 때 전화기로 씨름하던 엄마가 생각나. 전화기가 망가졌다며 새 걸로 바꿨더라? 자식들 누구한테도 도움 청하지 않고 말이야. 그때 엄마 새 전화기에 적응하느라 며칠을 진땀 뺐잖아. 아무리 연습해도- 이전 것과 같은 사양인데도- 전화 걸기도 받기도 종료 누르는 것도 엄만 자꾸 헷갈려했지.


난 알 수 있었어. 엄마가 확실히 많이 아프다는 걸 말이야. 하루 다르게 총기가 떨어지고 기억이 나빠져 갔지. 설마 엄마가 나를 못 알아보는 건 아니겠지, 확인차 아침 전화를 하곤 했지. "엄마, 나 누구야?" 그러면 엄만 "왜 자꾸 그래 물어쌌노. 그러지 마라." 섭섭해했지. 아무튼 전화기와 씨름하느라 내 전화기에 하루에도 수십 통 부재중 전화를 찍어대던 때가 지금은 그리워 엄마. 엄마랑 길게 통화하고 싶어.  




실은 전화 타령하는 내가 살짝 부끄럽다 엄마. 엄마가 그렇게나 기다리는 전화, 그걸 솔직히 내가 자주 하는 딸이 아니었잖아. 요 몇 년 동안 엄마랑 통화한 시간이 그 이전 60년간 했던 통화 시간 다 합친 것보다 많을 거야. 특히 엄마 병이 되돌릴 수 없는 단계란 걸 인지한 후부터였을 거야. 한 달 한 두 번 하던 전화가 한 주 한 두 번으로 바뀌었고 어떤 주간은 여러 번 하게 되었지. 올 들어선 거의 매일 통화했지 엄마?


오늘 한 단톡방에 하필 전화에 관한 글이 올라왔어.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 사이에 전화로 계급이 나눠진다는 거야. 엄만 금방 알아들었을 거야 벌써. 밖에서 직업이 뭐였건 학벌 재산이 어떻건 상관없이 모두 환자복 입었으니 평등해 보이지만 실은 거기도 상류층이 따로 있다는 거야. 기준이 뭔지 알아? 안부 전화 자주 받는 사람, 간식이나 병문안 물품 많이 받고 나누는 사람이 상류층으로 부러움을 산대.


웃픈데, 짜증이 확 나는데, 진실이기도 했어. 엄마가 병원에 자주 드나든 세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 나는 두 달 전에야 입원 중인 엄마한테 첨 가 봤더라? 집으로 요양보호사 몇 시간 오는 것만으론 힘들다 싶게 아프면 엄만 병원 가서 돌봄을 받았지. 집 가까운 병원이 자식보다 낫다고 나는 늘 합리화했어. 병원 모셔가는 당번을 교대하는 정도가 내 역할이었어. 3박 4일을 엄마랄 보낸 어떤 다급한 예감 때문이었어.


엄마도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지? 나도 그랬어. 엄만 노인 환자들 병실에서 상류층인 적이 한번도 없었던 거네? 우라질 세상, 병상에 누운 환자들에게도 상류층 타령하는 웃픈 세상. 생전에 상류층인 적이 없는데 말년에 무슨 상류층 환자겠어. 사람 자체로, 김성교 님 그 자체로 충분하고 완전한 세상을 너무너무 보고 싶어. 전화가 안 걸려와도, 자식이 없어도, 누가 챙겨주고 받들어주지 않아도, 사람이란 이유만으로 다 존중받고 어우러져 사는 세상. 그런 세상으로 마침내 돌아간 거지 엄마?


그런 세상이 이 땅에 임하도록 행동하며 살다 엄마한테 갈게.

그래도 지금 너무너무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다.

엄마 사랑해. 엄마 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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