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오늘 페이스북 포스팅이 떠올려준 추억
"막돌~ 너 2013년에 몇 학년이었어?"
"1학년."
"중1?"
"아니 고1."
"아하,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빠를 팔씨름으로 처음 이겼구나."
"그랬대?"
페이스북이 12년 전 오늘의 포스팅이라고 알려주는 이야기 덕분에 막내와 묻고 답했다. 애가 팔씨름으로 아빠를 처음 이긴 역사적인 날이라는 내용이었다. 추억팔이 미소를 짓고 보니 글에 나오는 막둥이가 2013년에 도대체 몇 살이었는지 금방 보이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이지만 참 성의 없게 썼군, 생각하며 아들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1학년이라는 답을 듣고는 아무 생각 없이 중1? 하고 묻는 이 엄마. 10대였을 아들 나이 세어보기가 그리도 귀찮았을까. 고1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살짝 놀라며 자판을 두드리는데 깨달음이 하나 반짝했다. 애 나이 확인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1초만 더 생각했으면, 2013년에 집착하지 말고 2014년을 떠올리기만 했으면 쉽게 해결됐을 거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그때 막내가 고2였고, 그러니 2013년엔 고1이었다고.
중1이냐 물어본 내가 우습다. 왜 숫자 앞에 나는 쉽게 작아지는 걸까? 갈 길이 아득해 보여서 생각하기 싫었을 거다. 2013년을 아이 출생년부터 세어 세어 나이를 확인할 생각을 했으니 아득할 밖에. 왜 나는 2013년에 아이가 몇 학년이었지? 그런식으로만 질문했을까. 2014년이란 경로는 왜 한 발 앞에서 떠오르지 않았을까.
12년 전 포스팅이 별 질문을 다 하고 있다. 나는 12년 동안 많이 늙은 걸까? 몸도 생각도 두뇌 회전도 많이 굼뜨게 변해서 그런 걸까? 세월이 마구 달려가고 있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애들 학년 확인하는 거 어려운 거야 늘 그랬다. 그래도 중1이냐 물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 12년 전보다 회색 머리카락이 뒤덮였지만 그래도 체력은 12년 전보다 훨씬 좋아진 거 같은데, 내 착각일까?
12년 전 오늘 열다섯 살 막내 아들이 쉰살 아빠한테 처음 팔씨름 이긴 이야기다. 페이스북이 띄워준 옛 포스팅 그대로 긁어다 올려 본다. 가끔은 추억팔이, 격세지감이로다.
"아~ 아빠! 너무 허무하게 넘어가잖아~"
우리집 막둥이가 지난 달에 이어 아빠를 팔씨름으로 또 이기고
크게, 그러나 허무하게 외치는군요.
시작하나 싶더니 이건 뭐... 겨루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힘없이 넘어가 버린 아빠 팔입니다.
부자가 허탈하게 서로 한참 쳐다보며 웃고 있네요.
역사적인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막내가 드디어 팔씨름으로 아빠를 이기다.
이거 생각할수록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가 없으니까요.
아이들 커가는 모습, 특별하지 않은 날이 있으랴만.
옹알이를 한 날, 엄마아빠를 발음한 날,
첫 걸음마를 한 날의 감동을 누가 잊을까요.
엄마 떨어져 유치원에 처음 간 날, 초등학교 입학한 날,
키가 아빠를 따라잡은 날...
키가 아빠보다 더 큰 건 이미 오래 됐고
몸무게도 아빠보다 쑥 앞지른 어느날,
아직 달리기나 힘은 아빠를 못 따라온다고 했었는데...
그것도 다시 지난 얘기가 된 겁니다.
어느새 달리기도 역전됐고 팔씨름까지 이렇게 굳히고 있는 겁니다.
막내아들의 손아귀를 잡는 순간 아빠는 알겠더라네요.
앗 이놈, 이제 아빠를 이기겠구나.
허무하게 팔이 넘어가는 걸 어찌해 볼 수가 없더라네요.
그렇게 흰머리의 아빠는 막내보다 키도 몸집도 힘도 다 작아졌습니다.
이정도면 이제 팔씨름으로 겨룰 것도 없겠다는군요.
참 희안한 부모마음, 지고도 막내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아빠맘이랍니다.
세월이 그렇게 마구마구 달려가고 있는 겁니다.
마냥 귀엽고 사랑스런 막내로 뛰놀던 녀석이
고등학교 첫 학기를 꿋꿋이 살아내느라 볼살이 빠지고 있고요.
새벽밥 먹고 등교하고 늦은밤 집에 돌아오는 것도 모자라
방학도 없고요 주말도 별 다른 거 없는 생활.
그래도 할 게 너무 많아 시간이 모자라는 생활...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통과의례를 묵묵히 거쳐내고 있답니다.
무더위에 지친 하루지만
저 싱싱한 막둥이의 부모노릇해내느라
오늘은 막둥이 오기 전에 잠들지 않으려 버티는 엄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