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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살 막내 아들에게 마늘까기 시범을 보이고

처음 하는 사람이 쉽게 할 수 있게 잘 가르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by 꿀벌 김화숙

"와, 까 놓은 거 사먹는 거랑 값 차이 많이 나?"

"그럼, 나지. 더 중요한 건 깐 마늘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는 거야."

"그렇구나. 이걸 언제 다 까냐."


스물 여덟 살 막내 아들이 까야 할 마늘 바가지를 바라보며 살짝 놀라는 눈치다. 중요한 일정 하나를 폭우 때문에 미룬 덕에 시간이 났고, 충동적으로 김치를 담게 되었다. 막내가 운전해서 같이 로컬 매장으로 가 싱싱한 열무와 얼갈이 배추를 샀고 함께 후다닥 해치우자니 아들이 마늘을 까야 했다. 진짜 놀란 건 그 다음이었다.


"엄마, 마늘 어떻게 까?"


나는 당연히 아들이 마늘 깔 줄 알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아차, 했다. 마늘 구이, 마늘 피클 등 마늘을 아주 좋아하는 녀석이라 내가 마늘 요리를 얼마나 해 주었던가. 한 번도 아이한테 마늘을 까게 한 적이 없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하는 걸 봤으니 정말 몰라서 물은 건 아니었을 테다. 그럼에도 나는 찔렸다. 자립적인 생활 어쩌고, 가사노동은 누구나 해야 하는 필수노동이자 생존기술 어쩌고 했으나, 실제를 안 가르쳤다는 반성이었다.


"자, 마늘 껍질을 요렇게 벗기잖아. 봐봐, 요기 뿌리 붙었던 부분에 딱딱한 육질이 있지. 이건 못 먹잖아. 요걸 먼저 칼로 잘가내 버려야 해. 그러고 나면 껍질도 더 잘 벗겨져. 흠집 있으면 그것도 잘라 내 주고."


처음 하는 일이니 제대로 친절하게 설명해 줘야 했다. 그렇게 스물 여덟 청년이 생애 최초로 마늘을, 그것도 한 바가지나 깠다. 뒷마무리까지 아주 능숙하게 잘 했다. 덕분에 열무얼갈이 김치는 재료 준비부터 마치기까지 2시간 안에 끝났다. 주로 숙덕이 짝꿍으로 하던 김치담기에 이제라도 막내 아들이 함께 하게 된 셈이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을 공부만 하고 일상에 무지 무능하게 키우면 안 된다, 쉽게 말했구나. 큰소리치지만 나도 그랬구나 인정한다. 무한 돌봄 제공 엄마 안한다, 우쭈쭈 엄마 안한다 하지만, 큰소리치는 것과 내 삶의 바닥 현실 사이엔 간극이 있었다. 인정하고 인정한다.


그리고 내가 진행 중인 글쓰기 강좌를 생각하게 된다. 초보자들이 쉽게 쓸 수 있도록 내가 격려하며 안내하고 있는지. 모방 시 쓰기를 예로 들면 그 형식과 흐름과 분량을 지켜서 쓰는 연습이다. 그런데 길이가 무한정 긴 글을 써 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있었다. 에세이의 분량도 그랬다, 내가 더 강조하며 잘 알아듣게 안내하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있다.


삶의 정황과 맥락은 다 다른 법. 내겐 익숙해도 초심자에겐 낯설고 어려운 게다, 진행자로서 다시 기억할지어다. 반성하며 짧은 모방 시 하나 써 봤다.




진료실을 나오며/ 김화숙(1962~ )


십일 년 전 일이다 간암절제수술 후 3개월 차 정기 검사 결과 보러

진료실에 들어가 질문했을 때였다 중년의 명의가 독설을 날렸다

그게 왜 궁금합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오늘만 벌써 몇 명째인 거야!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내 몸이 궁금했고 질문할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맙소사 다시 질문하고


숨을 참으며 진료실을 나온 후

천돌에 봉인해 두었던 그 말을 꺼내들었다


누가 알아서 한다고?

나를 향해 벼려져 있었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날을 향해 기꺼이 달려갔다


이제 비굴하지 않아도 돼 두려움 따위

이제 그만 환자여도 돼




가스 밸브를 열며/ 정끝별(1964~ )

이십 년 전 일이다 첫딸을 낳은 직후였고 강의를 마치고

강사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독신의 선배가 독설을 날렸다

오랜만 시인!

엄마는 절망할 수 없다는데

절망 없는 시인의 시는 안녕할까?


그때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할 일은 많았고 시 쓸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맙소사 둘째까지 낳고


둘째가 성년이 되는 날

천돌에 봉인해 두었던 그 말을 꺼내들었다

나를 향해 있었다

눈부시게 벼려져 있었다

날을 향해 기꺼이 달려갔다

이제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절망 따위

이제 그만 엄마여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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