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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Jan 05. 2021

먹지 마! 표준으로 니가 만들어 먹어!

단식과 보호식, 잠자던 이성과 감성이 깨어나고 있었다.


"우와 이건 000 떡볶이 맛이야 엄마!" 

막내가 첫 술을 뜨자마자 신나는 목소리로 외쳤다.

 "오~ 음식 맛 좀 아는 녀석!" 딸이 추임새를 넣었다.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먹는 주말 점심이었다. 현미가래떡 떡볶이. 양배추와 파프리카를 뭉근히 익히고 매실효소와 고추장을 좀 넣고, 들깨가루를 넉넉히 넣어 익혔다. 이 정도면  단식 후 내 보호식으로도 부담 없겠다 싶어 결정한 식단이었다. 2015년 봄, 나는 3주 단식에 이어 보호식을 하고 있었다


"아, 엄마! 떡볶이에 효소를 왜 넣었어. 그냥 표준으로만 하라니까."

식탁에 찬물을 확 끼얹는 큰 놈의 투정이었다. 표정관리를 하며 나는 녀석을 힐끗 봤다.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란 듯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표준으로만 하라고?'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일단 삼켰다. 식성 좋고 성격 좋은 막내가 얼른 받았다. "맛만 좋구먼 뭘!" 딸도 기다렸다는 듯 건조하게 일갈했다. "표준이 뭔데?"

이제 다음 등장인물은 누굴까, 관객으로 구경하자는 마음은 순간뿐이었다.


"효소를 떡볶이에 넣으면 왜 안 되는데? 그런 법을 나만 몰랐네?"

나는 이미 듣고 싶지 않은 다음 말까지 상상하며 쏘아붙였다.

'이건 괴식이야. 우리 엄만 왜 창의력을 음식에 다 발휘할까. 무난하게 하면 내가 더 잘 먹을 텐데.'

녀석의 입에서 잘 나오던 그 말. 괴식 타령을 오늘은 못 들어줄 거 같았다. 남편의 표정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내 기분 좀 헤아려 볼 수 없겠니? 평소 같은 반응만 없길 빌면서 말이다.


"그래, 엄마 음식이 좀 특이하긴 하지? 난 아들 맘 이해해……."

큰 놈이 헛소리를 하면 남편은 나를 '조롱하듯' 그렇게 화답하곤 했다. 차마 애들 앞에서 '쪼잔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나는 웃어넘기곤 했다. 오늘은 내가 스스로를 희화할 기분이 영 아니었다. 단식 보호식 중에 가족 식탁을 차린 나 아닌가. 가슴이 이미 벌렁거리는 거 같았다.


나는 소심하게 속으로 남편을 향해 또 주문을 하고 있었다.

'제발! 지금 아들 편드는 짓만은 하지 말아 줘. 내 기분을 좀 읽어 줘. 난 지금 단식 후 보호식 중이라고. 암 수술 후 회복을 위한 치료 중이란 말이야. 나도 내 맘을 모르겠어. 화가 나려 한다구!'

내 애절한 텔레파시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세상 무심한 표정으로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그냥……. 엄마가 너무 특이하게 만들지만 말라는 뜻이지. 난 평범한 떡볶이 좋아하잖아."

내 표정과 기분을 눈치챘을까. 큰 놈이 바로 꼬리를 내리며 수습하는 말을 주억거렸다.      




"먹지 마! 표준으로 니가 만들어 먹어!"


아들의 변명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탁! 소리 나게 숟가락을 놓으며 쏘아붙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식구가 나를 쳐다보는 것과 동시에 나는 바람을 쌩 일으키며 식탁을 떠났다. 안방으로 직통해서 문을 꽝! 소리 나게 닫았다.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중2 아이였다. 제대한 복학생 아들이 엄마 음식에 대고 하는 말을 보라. 야만이고 오만 아냐? 어떻게 키웠길래 아들이 엄마를 저런 식으로 대하지? 


나는 방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뭐지? 내가 크게 모욕당하는 느낌, 너무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가슴이 말하고 있었다. 그게 분노할 일이냐고 제발 묻지는 말라. 나도 모른다. 다만 갑자기 세상이 너무 낯설고 화가 났을 뿐이다. 내 인생 총체적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한 거 같다고, 나는 다이어리를 꺼내 휘갈겨 적었다.




우리 집 식사시간은 때로 다섯 식구의 역할극 무대였다.


음식 만들고 먹이는 건 내 역할. 가족 분위기까지 맡았다. 밥상 차리기 보조는 남편 또는 아이들. 먹기 시작하면 딸과 막내는 맛있게 잘 먹고 즐겁게 떠드는 역할. 큰아들은 한번씩 까다롭고 엄한 '음식 판관' 역할. 큰 놈이 괴식이라고 투정하면, 내 기분은 널뛰기를 했다. "엄마가 과하게 창의적이라 미안해"라며 스스로를 희화하거나, "싫으면 먹지 마!" 위엄 있는 목소리로 상황을 제압하거나. 


그럴 때 남편 덕의 역할은? '관대한 아빠' 내지 '무심한 남편'이었다. 그는 아이들 앞에서 나를 가르치고 '조롱'하는 '우월한 가부장'이었다. 분위기 깨지 않으려 내가 스스로를 검열하며, 할 말을 삼키는 걸 그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한 발 더 나가기도 했다.

"난 아들 맘 이해해. 엄마 음식이 좀 난해한 건 사실이잖아? 이 정도 소화하는 우리 식구들이 대단한 거지 안 그래? 그래도 어쩌냐 엄마가 해 준 건데……."


어진 아빠는 아들에게 인상 쓰지 않았다. 자기와 상관없는 일인 양, 나와 아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도 못 본 척했다. 나는 남편에게 화내지도 않았거니와, 아이들 앞에 아빠의 체면이 구겨지게 할 수도, 식탁 분위기를 망칠 수도 없었다. '현모양처' 코스프레를 해야 그런 상황을 버틸 수 있었다.


역할극을 지겹게도 했구나. 모든 게 역겨웠다. 그따위 개나 줘 버리라, 가슴의 소리가 들렸다. 그런 좋은 엄마는 없다. 그런 아내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차분히 앉아있을 남편이 싫었다. 본 데 없이 엄마를 하찮게 대하는 아들도 싫었다. 냉혈한 가부장 세트로 보였다. 나는 이 집에서 인간이고 싶었다. 




알고 보면 나는 돌봄이 필요한 환자라고!



나를 뒤흔든 깨달음이었다. 누가 누굴 지금 돌보고 신경 쓰고 있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상황이었다. 돌봄이 필요한 환자인 나를 위해 밥 해주는 사람은 왜 없냔 말이다. 나는 속으로 깊이 가라앉았다.


그날 저녁 우리 집 부엌에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아빠가 아들 입맛 고려해 부자용 음식을 만들었다. 나는 그 옆에서 모녀용 자연식 보호식을 만들었다. 내 남편이란 작자가 도달한 결론이란, '입 짧은 큰아들을 고려해 주자'였다. 내 스트레스를 '반으로' 줄여주려고 자기가 아들을 맡는단다. 고맙기도 해라. 반씩이나. 나더러 마음을 관대하게 가지란다. 아들을 몰아세우지 말란다.


내 마음은 다시 또 턱! 걸렸다. 나와 딸을 위한 자연식 준비는 왜 나만의 일이지? 멀쩡한 20대 아들을 위해서는 앞치마를 두르는 아빤데, 암 수술에 단식한 아내를 위한 보호식은 왜 못 맡지? 길을 잘못 들였다. 직장에서 파김치가 돼 왔건, 암 수술을 했건,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밥하는 여자로 살았다. 어쩌다 밥을 하면 남편에겐 자랑과 칭찬이 돌아갔다. 날마다 밥하는 내겐 품평과 비판이 따라왔다. 그게 내 위치였다.


"야! 이게 남편이냐? 내가 돌봄이 필요한 환자인 거 안 보여?" 내 속에서만 외치는 아우성이었다. 남편에게 날것 그대로 감정을 쏟아 본 적 없던 나는 분노를 혼자 삭일뿐이었다. 이 집이건 어느 집이건 아빠가 암수술 후 단식을 했다고 상상해 보았다. 그가 스스로 보호식을 준비하고 가족의 밥도 해댔을까? 음식 품평을 들어가며 밥을 할까? 남자는 차려주는 보호식 먹으며 요양하고 있을 게 그려졌다. 


단식으로 비워진 내 몸은 극한의 상황을 통과하고 있었다. 잠자던 이성과 감성이 깨어나고 있었다. 몸은 새털처럼 가볍고 정신은 맑았다. 단식은 과연 불온하고 과격한 치료법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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