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와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싸움도 배워야 하고 사나워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by 꿀벌 김화숙

“너 IQ 한 자리야?”

“내가 정말 널 죽였으면 좋겠다”

“네가 무슨 머리라고 판단을 하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혜훈 전 의원의 과거 녹취파일이 날로 점입가경이다. 옮겨 적기 민망한 정도다. 의원실 직원과의 통화라는데, 그는 소리를 있는대로 내지르며 폭언을 쏟아낸다. 악다구니와 인신 공격에 사나움까지 더해 갑질이 하늘을 찌른다. 옴팡 당했을 직원을 생각하니, 내 일인양 괴롭다.


직원에게 IQ 한자리 운운하며, 무슨 머리라고 판단을 하냐, 란다. 김건희와 윤석열이 심하고 극단적인 경우일 뿐, 권력은 이다지도 무도하고 사납다. 21세기에 '짐이 곧 국가'라는 전제군주가 되고 싶은 걸까. 이재명 대통령의 지명을 받고 이혜훈은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대놓고 옹호한 전력을 사과했다. 그런데 갑질은 어쩌나..


이런 상사에게 직원이 한번이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사납게 저항한 적 있을까? 이 나라 어떤 조직에서도 그런 그림은 없을 걸 아니, 씁쓸하다. 이혜훈은 어쩌면 사나움으로 정글에서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레천 칼슨의 『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나워지라'고 대놓고 말하는 책이다. 전 폭스뉴스 앵커이자 실화 바탕의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의 실제 인물 중 한명인 그레천은 사나움을 배워야 한다고 썼다. 직장 상사의 성희롱을 폭로하고, 당당히 이기기까지, 긴 싸움을 하며 그가 깨달은 진리였다. 회사도 사회도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에겐 침묵을 강요하는 현실에서, 그는 점점 사나운 여자가 돼야 했.다.

청소년부터 중년까지 나이를 막론하고, 여자든 남자든 성별을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사나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책의 원제는『Be Fierce!』인데 한국어 제목은 왜『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가 됐을까? 책의 내용을 반영한 제목이긴 하지만 원제 "사나워지라!"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게 아쉽다. 이게 바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번역이겠다. 사나워지라, 제목에 너무 쎈 제목과 드센 여자 이야기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나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혜훈처럼 권력으로 갑질하는 그런 사나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용기의 사나움 말이다. 착하고 부드러워야 한다고만 배운 여자들을 생각해 보라. 자기 존엄을 짓밟는 폭력에 대항할 힘도 언어도 없는 여자로 살 것인가. 결정적인 순간 사나워져야 자신을 지키고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다. 딸 아들 할 것 없다. 여자든 남자든 아이든 중년이든,


책 마지막 장 "사나워지라"에서 그레천은 세 종류의 사람은 절대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1. 당신이 힘들 때 도와준 사람.

2. 당신이 힘들 때 떠난 사람.

3. 당신을 힘들게 만든 사람.


맞다. 나를 해치고 죽이려는 인간에게 미소짓고 친절해야 할까? 개나 주라 그래.




살면서 "사나워지는 법"을 배운 적이 있던가? 배운 적이 없었다. 반대로 사나운 여자가 욕 먹는다는 것만 배웠다. 사나워지지 않는 법, 숨을 죽이는 법, 목소리를 낮추는 법을 더 열심히 배웠다. 우라질! 부드럽고 좋은 여자란 소리 들어야 하는줄 알았다. 아빠와 허구한날 싸우는 엄마가 싫었고 지고 사는 여자로 살게 될까 두려웠다. 부드러움으로 이길 줄 알았다


중년에사, 잘못 살았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 부드러움도 사나움도 다 필요했다. 싸움의 기술도 사나워지는 법도배워야 했다. 오늘 복싱 체육관에서도 내 눈을 사납게 마주보며 셰도우복싱을 연습했다. 결정적인 순간을 상상해야 했다. 이혜훈 같은 상사한테 쳐맞기만 할 건가, 나를 짓밟는 자를 향해 사나운 펀치를 날리는 연습이었다. 상상력이 필요했다.


언젠가는 내가 "사나운 여자"라는 평가를 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 지금도 그런 소리 들을려나? 그럼 영광이겠다. 내가 이혜훈처럼 갑질로 난폭해질 기회가 있겠는가. 어딘가 을들의 연대에서, 데모로, 혹은 논쟁으로, 사납게 싸우는 나를 상상한다. 내가 나를 믿고 당당하게 떨쳐일어나 싸우는 여자가 됐다는다는 뜻이겠다.


그레천 칼슨이 바로 그런 평가를 받았다.

그녀는 작달막할지언정, 대단히 사납다.


절벽에서 안전망 없이 번지점프를 하다시피, 그는 직장 상사의 오랜 성희롱을 조목조목, 기록해뒀다가, 폭탄선언으로 폭로했다. 아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른 채로 뛰어내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긴 싸움을 싸우고 재판에서 이겼고 가해자는 감옥에 갔다. 정말 작달막한 여자가 그렇게 사나울 수 있다니!

그레천 칼슨이 상세히 설명한 '사나워진다'라는 말의 의미를 보자. 이런 소제목들로 정리된다.

-사나워진다는 건 당당해진다는 뜻이다.

-사나워진다는 건 자신의 가치를 고수한다는 뜻이다.

-사나워진다는 것은 함께 일어선다는 뜻이다.

-사나워진다는 것은 믿는다는 뜻이다.

-사나워진다는 것은 전사가 된다는 뜻이다.










keyword
수, 금 연재
이전 12화돌다리와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