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더럽다. 생긴 건 그렇게 안 생겼는데 하는 짓이 완전 더럽다. 쓰레기 더미 속에 살고 있다거나 일주일째 안 씻고 사는 그런 종류의 더러움은 아니다. 더러움을 잘 견딘다는 뜻이다. 이것도 특기라면 특기다. 영유아 둘을 키우면서도 애들이 다 커버린 우리 집보다 깨끗함을 유지하며 사는 여동생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한숨을 쉰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려 할 때는 한숨으로 대신한다. 잔소리를 한숨으로 대신해줘서 정말 고맙다. 여동생은 착한 아이다.
더러운 삶은 생각보다 편할 때가 많다. (명백한 단점을 앞에 놓고 굳이 장점을 찾아서 합리화시키는 건 내 특기다). 아무래도 조금 수상하다 했더니 둘째 놈이 발달지연 판정을 받았다. 돌 때쯤이었다. 돌이 거의 다 되어도 배밀이를 하지 않아 데려간 대학병원에서 딱 잘라 차갑게 말했다.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하고 발달이 많이 늦어졌으며 앞으로 발달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장담은 못한다고 했다.
장애가 아니니 엄마가 인내하며 조금 더 신경써가며 길러내면 언젠가는 조금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는 고마운 위로는 인터넷 댓글에서 간신히 찾았다. 어떤 병원에서도 이런 위로는 못 받았다. 비싼 특진비는 냈는데, 위로비는 안 내서 그런가보다. 진료 볼 때 위로 특진 뭐 이런 항목이 따로 있다면 좋겠다. 더 내고서라도 받고 싶은 게 대학병원 교수들의 한 마디 위로니까.
어쨌든. 아이가 점점 커간다. 무거워진다. 두 돌이 되어 가는데 걷질 못하고 기기 시작한다. 남자아이 뼈의 무게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날로 무게가 늘어가는 아이를 두 돌이 다 되도록 아기띠로 안고 다니니 꼿꼿하던 등이 구부정해져 버렸다. 육아 우울증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한참 오르던 중이었다. 밤에 잠들면서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랬던 날들이었는데, 바램과 달리 하루도 빠짐없이 내일이 왔다.
두 돌이 되어가던 걷지 못하는 아이와 세 돌이 지난 큰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 감기는 단 한 번도 혼자 왔다 가지 않았다. 기어이 나머지 한 명까지 누런 콧물을 질질 흘리고 열이 펄펄 끓어야 끝이 난다. 둘째는 걷지도 못하면서 고집은 세져서 유모차에 앉아 있지 않겠다고 난리를 친다. 아이 엄마라면 유모차에 앉아 있지 않겠다고 난리 치는 아이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귀찮은지 알리라. 꺼내어 병원 쇼파에 앉혔더니 내려가겠다고 난리를 쳐댄다. 말리고 들어 안을 기력이 없다. 아기 띠로 들쳐 멜 힘도 없다. 그냥 두었다. 놀이방이 아닌 그냥 병원 바닥을 신나게 기어 다닌다. 맨손바닥으로 다다닥다다닥 온 병원을 기어 다니며 신이 났다. 그러지 말라고 하며 '지지!' 뭐 이렇게 손바닥을 톡톡 때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힘도 의욕도 없다. 날마다 아이를 들어 안고 닦이고 또 유모차에 앉히고 아기띠에 두르고.
모르겠다. 난 모르겠다. 잡지책을 펼쳐들었다. 신나게 기어 다니며 병원을 들쑤시는 아이를 발견한 할머니 한 분께서 많이 놀라셨나보다. 소리를 지르신다. 그렇게까지 소리를 지를 일인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어머, 얘 좀 봐. 얘 엄마 없나봐. 얘 어떡해. 어떡해."
뭘 어떡합니까, 애 안 죽습니다. 엄마가 왜 없습니까, 아기 엄마 우먼센스 보고 있습니다. 엄마 없이 저놈이 여기 어떻게 왔겠습니까. 택시 타고 왔겠습니까. 애가 바닥을 기어 다닌다고 해서 엄마가 없을 거라는 편견을 버리세요. 아이는 너무 무겁고 애엄마는 아무리 쥐어짜고 쥐어짜도 더는 기운이 없어 아이를 안고 있지 못할 뿐입니다. 할머니의 호들갑을 못들은 척하고 잡지에 빠져 있는데 마침 아이 이름이 불린다. 우먼센스 2월호를 퍽 소리 나게 덮고는 한창 기고 있는 아이를 오른팔로 덜렁 들어 옆구리에 끼우고 왼손으로는 큰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애엄마 없다며 호들갑 떨던 그 할머니를 보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 뒤도 안 돌아보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우리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할머니의 표정이 상상이 된다. 저 여자는 필시 애들의 친엄마가 아니라 돈 받고 하는 일을 저따위 개판으로 해재끼는 베이비시터라고 추측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립 도서관에 근무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다. 내가 먼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애들과 도서관에 자주 가냐는 친구의 물음에 애들 데리고 가서 책도 읽어주고 구연동화 모임도 참석한다고 자랑스레 답했다. 역시 너는 좋은 엄마가 될 줄 알았어, 라는 대답을 기대했다만 친구는 딱 잘라 말했다.
“야, 애들 데리고 도서관 가면 애들 좀 제발 조용히 시켜라. 자기 애들 떠들어도 가만두는 엄마들 때문에 아주 돌겠다. 애들한테 책 읽어줄 때 큰소리 내지 말고, 쫌.”
직업 전선의 고단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일침 앞에 도서관 자주 다닌다고 말 한 걸 후회했다. 친구의 말에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도서관 사서들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자주 했었다. ’맘충‘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에 아이를 키운 게 다행이었다. 누구에게도 피해가지 않도록 집 밖에서만이라도 부지런하고 살뜰하게 아이들을 챙겼어야 했는데, 애들도 건사하지 못할 만큼 지치고 피곤했다면 공공장소에는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훌쩍거리며 누런 콧물을 흘려대는 두세살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택시를 불러 소아과에 다니고, 입장료 없는 동네도서관 밖에는 달리 갈 곳이 없었던 불쌍한 애엄마에게는 ’맘충면제쿠폰‘ 같은 거 몇 장 발급해주시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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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Writer 매일 읽고 날마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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