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징글한 반모임의 추억이여
엄마라면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초등학교 1학년 반 모임.
부자 동네는 아닌데, 그렇다고 교육열이 시들하지도 않은 어느 동네의 초등학교. 아이는 입학했고, 학부모라는 호칭 하나가 추가됐다. 드디어 나도 반 모임이라는 곳에 가게 되는구나.(근무하던 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에 데리고 다니느라 유치원 반 모임에 끼질 못했기에 진심으로 설렜다)
오전 10시. 동네 스타벅스 2층이란다. 이 옷, 저 옷 몇 개를 걸치고서야 밝은 색 코트로 결정했지만 썩 맘에 들진 않았다. 반 모임을 위해 옷을 사는 것은 웃기겠지만 이렇게까지 마땅한 옷이 없을 줄은 또 몰랐다. 하이힐을 신기엔 과한 듯하고, 운동화를 신자니 초면에 키 작아 보일까 봐 그것도 별로다. 굽이 살짝 들어간 슬립온으로 마무리. 커피를 사 들고 올라갔는데 절반쯤 차 있다. 아, 이 어색한 분위기.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란다. ‘이은경’이라는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그 자리에 있는 어떤 엄마도 본인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 자리의 어떤 엄마의 이름도 궁금하지 않았다. 우리가 궁금한 건 저기 저 아줌마가 ‘누구의 엄마’인지일 뿐이다. 순서가 돌아오면 “규민이 엄마입니다. 이규민이에요.“라고 확실하게 아이의 이름을 외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가 몇 번 말한 적 있는 친구의 이름이 어느 엄마 입에서 나오면 엄청 반갑다. 고등학교 이후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보다 더 반가운 느낌이다.
전체 소개가 끝나면 앞으로의 반 모임은 어찌할지, 아이들 생일파티는 어찌할지, 반 축구, 생활체육, 숲 체험, 스승의 날, 운동회까지 각종 학교 행사들에 우리 엄마들의 치맛바람을 어느 정도 날려볼지에 대한 깊은 의논을 한다. 반 모임의 목적이라 하겠다. 전체의 얘기가 끝나면 삼삼오오 가까이 앉은 엄마들끼리 어디 사는지, 동생은 있는지, 직장엔 다니는지, 유치원은 어디 다녔는지, 피아노 학원은 어디 보내고, 태권도는 몇 년을 보냈는지 시시콜콜한 정보 교환이 시작된다.
초기 반 모임 단계에서 자리 선정이 매우 중요한데, 운이 좋으면 옆자리의 그 엄마와 꽤 오랜 시간 단짝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색한 사이의 엄마들끼리는 학교 얘기만 한 게 없다.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우리 선생님’. 선생님 뒷담화를 하기 위해 모인 모임인가 싶을 만큼 적당히 어색한 엄마들끼리는 그만한 소재가 없다. 담임 칭찬이 오가기도 하지만 드물다. 사람끼리 친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이를 함께 헐뜯는 시간의 양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담임 선생님은 엄마들끼리 친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이해해주시길. 그렇게 상대 엄마의 성격, 대략의 성향, 상황이 파악되면 슬슬 시동이 걸린다. 시월드 배틀이 시작된다. 시댁에서 빌려 간 1억을 안 갚으면서 애들 내복 한 벌 안 사주시고 어버이날마다 내려와서 마늘을 심으라고 하셔서 온몸이 쑤셔서 죽을 지경 정도면 상위권 가능성 있다. 그러면서 자식에게 빌린 돈으로 벤츠를 뽑아 타고 다니시기까지 한다면 사뿐히 1위 등극이다. 서로 얼마나 지독한 시월드에 시집갔는지를 얘기하다 보면 맥주잔이 정신없이 비워진다. 아직 어색한 사이에, 흠 잡히면 안되는 사이기에 격렬한 리액션은 필수다. 쌍욕이라도 같이 해줄 것처럼 시월드로 하나가 되는 밤이다. 애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에 엄마들이 친해지느라 정신이 없다. 교실이 아닌 곳에서 반 친구들을 만나 잔뜩 흥분한 아이들은 부상자가 속출한다. 우는 놈, 싸우는 놈, 욕하는 놈, 때리는 놈, 맞는 놈, 아픈 놈, 졸린 놈들이 각자의 엄마를 부르며 징징거린다. 아주 가끔은 자는 놈도 있다. 다른 엄마들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 아이 단속시키고, 싸운 거 해결해주고, 아이들 끼니도 그럭저럭 해결시키고, 화장실에도 함께 다녀온다. 궁둥이 잠시 붙이고 커피 한 잔 마실 정신도 없는 시간. 그 와중에 계속되는 시월드 얘기에는 잊지 않고 과장된 리액션을 날려야 하고, 다른 집 아이의 큰 키와 똑 부러진 말투를 보며 영혼 없는 칭찬도 계속해야 한다. 헤어질 땐 더 놀고 싶다며 나라 잃은 표정으로 울고불고하는 아이들을 잘 달래 집까지 끌고 들어오는 미션도 남아 있다.
그저 두 시간짜리 반 모임에 다녀왔을 뿐인데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이 쑤시고 머리가 아프다. 진이 다 빠졌다. 출근하는 게 더 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영혼을 수십 번쯤 털리고 나면 함께 하고 싶은, 오래도록 의지하고 싶은 몇이 남는다. 모임 때마다 거르고 거르고 걸러 결국 맞는 짝을 찾는다. 연애는 아닌데, 연애만큼 힘든 건 분명하다. 나 역시 그렇게 엄마의 의무를 다한 선물로 4년간의 반 모임에서 건져낸 보석 같은 아이 친구 엄마가 두 명 있고, 그들과는 가끔씩 주말 밤 모임으로 회포를 푼다.
남자들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 반 모임의 징글징글한 추억이여.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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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Writer 매일 읽고 날마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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