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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Mar 17. 2019

커피를 부어버리고 싶었던 정신과 상담

이게 다 우울증 때문이야

발달이 늦어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돌쟁이 둘째와 한 살 많은 형까지. 너무 버거웠다. 제정신을 잃고 미쳐갔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동네 눈에 띄는 신경정신과에 들어갔다. 나보다 열 살쯤 많아 보이는 여자 의사 선생님이었다. 미쳐가는 내 상황을 주절주절 털어놓다 보니 직업도 말하게 되었다.


"저는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미치겠고, 지금 진짜 다 버리고 집을 나가 버리고 싶고 죽고 싶기도 하고, 제정신으로 숨을 쉬기도 힘들고 너무너무 힘들어요. 주절주절 주절... 초등교사이고 육아휴직 중인데 이 정신으로 다시 학교에 나갈 수 있을까요. 정말 다시 원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고 정신 차리고 싶고 살고 싶어요. 저의 상황에 우울증 약을 먹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흑흑흑 “     


몇 년간 참았던 서글픔이 터졌다. 눈물과 콧물이 벌건 얼굴 위에 범벅이 되었다. 여기는 병원이다. 위로를 받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되리라 기대했다. 그게 정답이든 아니든 말이다. 어떤 위로든 달게 고맙게 받으리라는 마음뿐이었다. 애처로운 표정으로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인내심 있게 얘기를 듣던 의사는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려 입을 뗐다. 어떤 위로를 들려줄까 온 신경이 집중됐다.


드디어 첫마디.  

"교사 시구나. 교사가 진짜 최고죠. 퇴근 시간도 빠르고 무엇보다 방학이 있잖아요. 연금도 나오고요. 너무너무 부러워요. 아이들 키우기에 교사만 한 직장이 없죠. 정말 좋으시겠어요"


순간 들고 있던 종이컵의 뜨거운 커피를 그녀 얼굴에 부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 이런 위로를 듣기 위해, 방학이 있으며 연금도 나온다는 기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퉁퉁 부은 눈에 선글라스를 끼고 여기까지 달려온 게 아니었다. 퇴근이 빠르고 방학이 있으며 연금이 나올 거라는 사실을 몰라서 그렇게 울고 있는 게 아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고 그 말에 무너져 버린 마음이 몇 년째 돌아오지 않아 너무 괴로워 인제 그만 죽어버리고 싶다는 얘기를 간절히도 하는 거였다. 눈물을 철철 흘리는 환자에게 부럽다는 말을 하는 이 사람이 의사라는 게 기가 막혔다. 동네의 신경정신과가 달랑 그거 하나라는 게 서글펐다. 하지만 멀리 있는 다른 병원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닐 만한 시간도, 의욕도 없었기에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 사람을 계속 만나야만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반드시 상담을 받을 것과 상의 없이 약을 끊으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한 엄한 경고를 받았다. 살고 싶어서, 죽을 수 없어서 고분고분 따랐다.     


 

신경정신과 의사를 몇 거쳐본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때 그 의사가 가장 별로였다. 그때만 해도 다들 그런 줄 알고 당연한 듯 병원을 계속 다녔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 신기하게도 단 삼일 만에 우울감이 사라지고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말씀은 그 따위로 하면서도 약은 귀신같이 잘 지어줬으니 능력이 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 후로도 상담 때면 한 번씩 ’방학 땐 주로 뭘 하냐는”라거나 “연금은 몇 살부터 받느냐”는 둥 본인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질문을 했다. 때리고 싶을 만큼 미워하면서도 꼬박꼬박 그녀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그러는 당신은 한 달 수입이 도대체 얼마며 의사라는 직업 덕분에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사는지 설명해보라고 대들지 못했다.      

이게 내 첫 번째 우울증 이야기다. 첫 번째라는 건 끝이 아니란 얘기다. 우울증은 눈병이나 발목 부상처럼 몇 주, 몇 달 안에 명확하게 끝나지 않는다. 잠시 틈을 보이면 슬그머니 재발해버리기 일쑤다. 그래도 그 덕분에 글로 다른 이를 위로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으니 말할 수 없이 큰 행운이다.



우울증 앓았던 것을 주변에 숨기지 않았던 덕분에 인기를 좀 끌고 있다. 뭐 이런 것도 인기냐 할지 모르겠지만, 인기 없는 사람은 이런 것도 인기로 알고 산다. 어디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 속을 썩다가 퉁퉁 부은 눈으로 찾아와 “어느 병원 다니느냐, 약 먹으면 정말 효과가 있더냐,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을 것 같은데 괜찮으냐, 상담비가 많이 비싸진 않느냐”를 묻는 주변인들이 많았다. 우울증 선배로 모셔주며 이것저것 물어오는 글들이 안쓰럽고 별 어이없는 종목이긴 하지만 선배 노릇하고 있자니 우쭐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게 보람차기도 했다. 얼마나 겹겹이 곪아 터진 고민 끝에 찾아왔을지 훤히 알기에 그들이 첫 질문만 들어도 눈물이 후두두 쏟아진다. 얼마나 혼자 눈물을 흘리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나에게 왔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절절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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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Writer  매일 읽고 날마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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