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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Apr 07. 2019

방귀에 대한 고찰

모두 내 잘못이다


1학년 2반 29명의 아이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나누어 주는 중이었다. 종이를 들고 각 분단을 다니며 맨 앞에 앉은 아이에게 한 분단 친구들의 양만큼 건네면 나 한 장 갖고 뒤로 보내기가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그런 날 중 하루였다. 하교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1분단의 맨 앞에는 현우와 준호가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귀여운 남자아이들이다. 투덕대기도 하지만 소곤소곤 킥킥거리며 그런대로 사이가 좋다. 아이들이 뻗은 손바닥 위에 정확하게 1분단 아이들 숫자에 딱 맞는 8장의 통신문을 얹어 놓고는 바로 몇 걸음 옆의 2분단으로 향했다. 3분단, 4분단. 오케이 좋았어. 완벽해. 경력이 더해질수록 가정통신문 아이들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사히 집에 가나 했더니 또 시작이다. 소리를 높이며 화를 내는 아이들은 일단 가라앉혀야 한다. 심호흡으로 화를 진정시키고 자초지종을 묻는다. 사건 담당 형사로 변신한다. 하루에도 열두 번쯤 형사가 됐다가 교사로 돌아온다. 오늘의 마지막 사건이길 바라며 물었다.     

 

”현우야, 왜 화가 났니?“

”제가 방구 안 꼈는데, 준호가 저보고 방구 뀌었다고 똥냄새 난다고 자꾸만 뭐라 그래요.“

”야, 니가 방구 꼈잖아. 분명히 냄새 났단 말이야“     


현우는 억울해하고 준호는 똥냄새가 너무 심하다며 둘 다 화가 나서 씩씩거린다. 


”준호야, 현우가 끼지 않았다고 하면 믿어야지요. 그리고 현우가 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 친구를 의심하면 친구가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선생님, 분명히 아까 우리 자리에서 똥냄새 많이 났단 말이에요.“

”이상하네, 갑자기 똥냄새가 왜 났을까? 잘못 맡은 건 아닐까?“     


잘못 듣는 일은 있어도 잘못 맡는 일은 없다. 코는 귀보다 훨씬 정확하고 예민하다. 똥냄새라, 똥냄새라. 아이들이 앉았던 자리를 다시 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두 아이의 억울하고 분한 표정과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리며 복도를 서성이는 엄마들의 그림자를 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아차. 떠올랐다. 기억하지 못할 작은 일이었다. 아주 작았던 그 일이 큰 일이 되어버렸다.      



그 방귀, 내 꺼였다. 나도 정말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방귀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할 만큼 바쁜 상황이었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불과 몇 분 전 나는 1분단 앞에, 그러니까 현우와 준호 얼굴 바로 앞에 서서 가정통신문을 8장 세어주고 돌아섰다. 바로 다음 2분단으로 갔다. 2분단에서도 똑같은 일을 하고, 3,4분단까지 마무리 지었다. 여기서 잊고 있던 결정적인 순간. 1분단 앞에 서서 8장을 세던 몇 초 동안 제법 큰 방귀가 나왔고 하교 시간이 되어 들뜬 교실 안의 소란함에 그 소리를 나도 듣지 못했다. 바쁘고 시끄럽고 평범한 하교 시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교실 밖으로 뛰쳐나갈 것처럼 뛰어다니는 1학년들을 두고 똥을 싸러도 아닌 고작 방귀 한 번 끼러 화장실에 다녀올 수는 없었다. 교실 방귀는 흔했다. 다만 칠판 앞이나 교사 책상 쪽에서 끼기 때문에 아이들이 맡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날따라 하필이면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나왔고, 그것이 또 하필이면 지독한 것이었다. 내 실수다. 적당한 소리와 냄새일 것으로 예상했고 그런 줄 알고 아무 일 없었던 듯 2분단을 향했던 것이다. 1분단에서 2분단으로 이동하던 중, 분단과 분단 사이의 통로쯤이었다면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을 작은 일이었다. 

더 큰 잘못은 따로 있다. 끝내 고백하지 못했다. 그 방귀 내가 낀 거라고. 현우도 아니고 준호도 아니고 내가 낀 거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친구가 아니라고 하면 믿어주는 것이 친구에요. 방귀 낀 건 증거가 없기 때문에 함부로 친구를 의심하거나 놀리면 안되겠지요? 왜 갑자기 똥냄새가 났는지 알 수 없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으니 친구를 의심해서 속상하게 하면 안 돼요. 서로 사과하고 기분 풀기로 해요. 자, 서로 사과하고 악수하고 들어가세요.“     


교실의 아이들 앞에서 가르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비겁한 나를 보는 일은 늘 괴롭다. 부끄럽다.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하루에도 수차례 가르친다. 교실의 아이들끼리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되풀이하며 다짐 받아냈다. 그렇게 살자고 아이들과 약속한다.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씩씩대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아닌 척, 나만 바른 척 점잔을 떨어왔다. 아무리 바빠도 사람 얼굴 앞에서 방귀를 끼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야 했다. 그 방귀가 힘없는 것일 거라 확신한다 해도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방귀의 소리와 냄새를 장담하는 건 교만이다. 화장실까지 가지 않아도 당장 교실 문을 열고 복도에만 살짝 나갔다 왔었더라도 아니, 두 발짝만 그들에게서 물러섰었더라도 현우와 준호가 씩씩거리며 싸울 일은 없었을 텐데 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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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Writer  매일 읽고 날마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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