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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Mar 10. 2019

외톨이에겐 친구 한 명이 끔찍하게 귀하다

나는 정말 현철이가 좋다


어릴 때부터 인기가 없는 편이었다. 전혀 없는 건 아닌데, 없는 편인 건 확실하다. 

인기 없는 사람에게는 인기 많은 사람이 겪지 못했을 속상한 일들이 좀 있다. 겪은 사람만 절절하게 알 수 있는데 막상 그것을 겪은 사람들끼리는 그 서글픔을 굳이 공유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기 없어 괴로운 건 세상에 나 하나인 것 같은 착각도 든다. 간혹 인기가 있는지 없는지 확실치 않은 경우가 있는데 또렷하게 인가가 있는 게 아니면 그냥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당사자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인기를 포기한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인다.   

  

인기가 없다는 것은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다른 절망들과는 좀 다르다. 노력을 안 해서 못 가진 게 아니다. 노력을 해봐도 원하는 만큼 갖게 되지도 않는데 노력을 안 하면 더 안 좋아진다. 인기란 건 쉽지 않다. 얻으려 애쓴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고, 한 번 가졌다고 영원한 것도 아니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인기가 있다고 돈이 생기지도 않는다. 반대로 생각하면 인기가 없다고 해서 대단히 손해를 보거나 딱한 처지가 되는 건 아니라는 뜻인데 그래도 있었으면 좋겠다. 요상한 놈이다. 없어도 되는데, 그래도 갖고 싶다.      

인기가 많았으면 좋겠다. 인기 있는 선생님이 고픈데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인기 많은 옆 반 선생님이 늘 부럽다. 도대체 비결이 뭔가 궁금해 그 반 교실 창문 너머를 흘끔거리지만 뭐 하나 뚜렷이 찾아지지 않는다. 그걸 찾는 능력이 없으니 여태껏 인가가 없는가 싶기도 하지만.     




모든 경험은 인생에 한 번쯤은 쓸모 있는 순간이 온다. 인기가 없어 정말 다행스러운 순간이 온 것이다. 둘째 아이의 고민은 반에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너무 없다는 것인데, 거의 매일 긴 한숨을 쉬며 푸념을 한다. “휴우, 나도 인기 많으면 좋겠는데.” 아이의 혼잣말에 마음이 시리다. 나를 닮았다. 아이가 인기가 없다는 말에 내가 더 풀이 죽는다. 나는 그 마음을 정말 잘 안다. 별것이 다 대물림된 것 같아 속상하다. 


“엄청 속상하지? 엄마도 어렸을 때 인기 엄청 없었거든. 인기 있는 애들 되게 부럽더라. 그치. 도대체 애들은 왜 나를 안 좋아하는 거야. 인기 많은 애들은 진짜 좋을 것 같아. 아 부러워.”


시린 마음을 숨기며 호들갑을 떨어댄다. 마음이 너무 시려 눈물이 날 것 같다. 꾹 참으며 웃는다. 그런 나를 보며 눈물이 그렁하던 아이의 눈이 슬며시 풀어진다. 눈물이 쏙 들어간다. 자기처럼 인기 없었고, 지금도 없지만 그럭저럭 멀쩡하게 사는 엄마를 보니 적잖이 안심이 되었나 보다. 이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기 위해 그렇게 지독하게도 인기가 없었나 보다. 아픔은 그것을 겪어본 사람의 말이 가장 위로가 된다. 학교 다닐 때 제법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는 남편은 자격 미달이다. 반장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쉽게도 척척 반장이 되어오는 큰아이도 탈락이다. 그들의 위로는 둘째에게 닿지 못한 채 거실 어디쯤을 적당히 돌다 튕겨 나간다. 애정은 담겼지만 공감이 없다. 둘째에게 필요한 건 나처럼 인기 없는 사람‘이다.      


오랜만에 돌아간 직장에서 또 외톨이다.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나 외톨이 생활은 쉽지 않다. 아닌 척, 괜찮은 척하며 지내지만 마음이 무너질 때가 많다. 내가 직장을 쉬고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보냈던 시간과 수고만큼 그들은 직장 안에서 친밀하고 단단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담담해지고 의연해진 줄 알았는데 역시나 외톨이의 직장 생활은 만만치가 않다. 직장 동료라는 건 겉으로 보기에 유쾌하고 재미있고 기쁨도 어려움도 함께 나눌 것 같지만, 실상은 끊임없이 견제하고 판단하며 경계하는 사이다. 내게 이익이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구분 짓고, 확실치 않은 경우 말과 행동, 표정까지도 조심을 한다. 돌아올 화를 면하기 위한 예방책, 그러니까 이게 바로 처세술이다.      




출근하고 한 달쯤 됐을까. 답답하고 외롭고 서글픈 마음에 둘째 아이를 붙잡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참 못났다. 

“엄마는 요즘 학교에서 외톨이야. 친구가 하나도 없고, 놀 사람도 없고 심심해. 그래서 학교 다니기 싫어. 그래도 열심히 힘내서 다녀보려고. 어쩌면 친구가 생길 수도 있잖아. 그리고 친구가 없어도 즐겁게 다닐 방법을 연구 중이야. 우리, 외로워도 힘들어도 꾹 참고 이겨내 보자”


아이는 운전하는 내 옆에 앉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데 한 달도 훨씬 지난 어느 날, 아이가 불쑥 물어왔다.

“엄마, 이제 학교에 친구 생겼어?”

눈물이 나 목이 콱 메었다. 친구가 없어 외로울까 걱정해주는 아이의 맘이 고마워 눈물이 났다. 한 달 넘게 더 다녀 봐도, 애써 이런저런 노력을 해봐도 마땅한 친구가 생기지 않더라는 얘기를 어찌 전해야 할까 몰라서 자꾸 눈물이 났다.

“너는 어때? 친구 생겼어?”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응, 현철이랑 친해.”

아이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게 좋아 와락 눈물이 났다. 나는 이대로 외톨이어도 좋으니 아이가 현철이랑 오래오래 친구였으면 좋겠다. 외톨이에겐 친구 한 명이 끔찍하게 귀하다. 눈물 나게 사랑스러운 법이다.      


나는 정말 현철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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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Writer  매일 읽고 날마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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