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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May 05. 2019

반장, 그게 뭐라고

모두가 쿨한 척하지만 누구도 쿨하지 않은 이야기

쿨한 척은 하지만 실상 누구도 쿨하지 않은 ‘반장선거’에 관한 이야기. 


난 대놓고 쿨하지 않다. 쿨하지 못하다. 

시대가 변하여 반장이라는 제도와 권위에 힘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관심마저 시들해진 건 결코 아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학기를 시작할 때 ‘이번엔 꼭 반장이 될테야“ 혹은 ’반장 선거에 나가야지‘라는 묻지도 않는 다짐을 하고, 그런 아이를 대견함과 불안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엄마들이 있다. 

반장, 그게 뭐라고.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속단했던 것들을 후회하는 일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반장에 관한 것이었다. 학창 시절, 소극적이고 인기와 존재감이 없던 내게 반장선거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친한 친구가 반장이 되면 떠드는 사람 명단에서 나를 제외해주기도 했기 때문에 단짝이던 남영이가 이번에도 반장이 되느냐가 궁금할 뿐이었다. 이름 적힐 일도 별로 없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남영이가 반장에서 떨어져도 실상 별 상관은 없었다. 반장되는 일에 관심 없던 여학생이 기필코 반장이 되고 싶어 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내 바램도 없진 않았다. 아이가 이번에 반장이 되었다며 무심한 척 자랑 한 번 해보고도 싶었다. 반장 선거가 있던 날, 반 아이들의 집에선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당선과 탈락의 결과를 분석해야하는 저녁 식사 분위기는 어떤지 엄마가 되고야 알았다. 반장에 관심 없던 어린 시절 우리집에서는 그 날이 반장선거일인 줄도 모르고 지나갔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나란히 출마했다. ’제가 반장이 되면‘으로 시작하는 그 대사를 수없이 연습했다. 그만큼 되고 싶어 했다. 당선 1명, 탈락 1명. 결과가 좋지 않았다. 지방선거 결과를 접하는 당대표의 심정이 이럴까.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날이었다. 반장에 떨어진 둘째 아이는 속이 상해 눈물이 났지만 흘리지 않고 참았다고 했다. 반장이 된 큰아이는 탈락한 동생 덕분에 피자를 얻어먹게 되어 고맙다 했고 그제야 서글픈 탈락자는 슬며시 웃기 시작했다. ’2학기엔 꼭‘ 이라는 다짐과 덕담이 오가는 보람찬 저녁 식사다. 탈락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정말 쉽지 않은 결과다.      



새 학기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헐레벌떡 치러지는 반장선거 시기는 담임이 아이들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다. 그래서 때로 담임은 반장 선거 결과를 놓고 거꾸로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기도 한다. 조용한 줄만 알았던 아이가 떡하니 압도적인 차로 반장이 되는 모습을 보고 새삼 그 아이를 주목하게 되고, 까불까불한 줄만 알았던 아이의 당선을 보면서는 인기 비결을 찾아보려 한 번 더 관찰하게 된다. 어른 눈에 까불까불하다는 건, 친구들 사이에서 무척이나 재미있고 인기 있는 성향의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 철석같은 모범생이라 한자리할 것 같았던 아이가 의외의 저조한 표를 얻고 탈락하는 것을 보면 모범적인 성향 이면의 개인주의적, 혹은 이기적인 모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기준과 시선으로 생각보다 친구들을 제법 정확하게 파악하기 때문이다. 


반장이 된 아이들은 실망을 주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게는 학급임원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리더쉽과 어느 정도의 모범생적 기질, 잔소리꾼으로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건 아이들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되고 있어, 그렇지 않던 아이도 반장이 되면 전보다 조금 더 노력하는 기미가 보인다. 반마다 반장의 역할은 다르지만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언제나 모든 반에는 ‘반장이 되고 싶은 아이’, ‘반장이 되고 싶지만 되지 못한 아이’, ‘반장이 되고 싶었는데 정말 반장이 된 아이’, ‘친구가 반장이 되어 기뻐하는 아이’, ‘2학기 반장을 노리고 있는 아이’로 복작거린다. 교실 속 아이들은 모두 결국은 반장과 뗄 수 없는 사람들인 거다. 


뗄 수 없는 사람이 또 있다. 아이가 반장이 된다는 건, 엄마가 축하 인사만 받으면 되는 일이 아니다. 반마다 학부모회가 결성되는 주축이 ’반장 엄마‘이며 모임이 잦은 저학년일수록 ’반장 엄마‘의 역할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 어떤 엄마들은 직장이나 동생 때문에 ’반장 엄마‘ 역할을 두려워하여 ’반장 선거에 나가지 말라‘는 강요를 하기도 한다. 아이가 그렇게도 원하는데 뒷받침해줄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모두 정말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 반장을 했었다고 그 후의 인생이 순탄하고 빛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번번이 탈락만 했거나 후보에 이름 한 번 올려보지 못했다고 해서 남은 인생이 계속 그렇게 초라하지만은 않다는 걸. 언제나 그렇듯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천지에 널려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그놈의 반장이 되고 싶어 기를 쓴다. 온 힘을 다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반장 됐다고 인생 성공한다는 보장 없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꼭 됐으면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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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Writer  매일 읽고 날마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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