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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Apr 28. 2019

나를 닮아 더 애달픈 아이

아들이 두 있는데, 그중 큰 놈에 관한 얘기다. 


어떻게 내가 이런 아이를 낳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게, 춤을 기가 막히게 잘 춘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정말 잘 춘다. 겨우 초등 3학년이 그루브를 기가 막히게 알고 느낌이 충만하다. 표정 또한 예술이라 음악에 완전히 취해 몸을 맡겨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면 이건 뭐 웬만한 오디션 프로에는 나갔다 하면 맡아 놓고 우승감이다. 길쭉한 팔다리와 늘씬한 몸은 당장 아이돌 그룹에 들어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놈은 오직 한 사람 내 앞에서만 춤을 추기 때문이다. 아빠 앞에서조차 대번에 동작에 힘이 들어가고 어색해진다. 정말 잘 춘다며 자랑하던 엄마를 허풍쟁이로 만들어버린다. 


아들의 내성적인 성격과 표현방식, 어색해하는 낯가림이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안타깝고 아까운 마음에 자꾸 아이를 닦달했다. 자꾸 해보면 늘 거라고. 느는 거라고. BTS도 다 너같은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지금의 자리에 선 거라고. 처음엔 원래 다 그렇게 어려운 거라며 아이를 부추겼다. 싫다는 아이를 여기저기 자꾸 사람들 앞에서 춤추게 했다. 아이가 나를 닮아 낯을 가리고 쑥쓰러워 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견디기 어려웠다. 내가 낳은 아이가 나를 닮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의 삶을 조정하려 했다. 



쑥스러워 동네 어른들께 소리 내서 인사 한번 하지 않던 나였다. 비실비실 옆으로 비켜서며 고개를 숙이는 둥 마는 둥 하던 아이였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속이 터져 죽겠다며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엄마 속이 아무리 터진다 해도 나는 그 이상 어떤 힘도 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다. 성실하고 공부를 잘하던 아이면서 비실비실거리며 낯을 가리는 아이였다. 엄마가 날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걸 알지만 모르는 척 했다. 아는 내색을 하면 혼날 것 같았다. 그러면서 무의식중에 ‘애써’밝은 모습, 씩씩한 모습, 활기찬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최근까지도 내가 굉장히 밝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인 줄았다. 주변인들도 대부분 그렇게 말했다. 만족스러웠다. 더 이상 비실거리는 부끄럼쟁이가 아니라는 게 좋았다. 술도 못 마시면서 회식 자리에선 왁자지껄 큰소리로 분위기를 잡았고, 내키지 않아 하는 사람들까지도 굳이 2차, 3차로 끌고 다니는 꽤 와일드한 사람으로 살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다. 따르는 후배들도 생기고 예뻐해 주는 선배들도 늘어갔다. 그런데 그건 진짜 내가 아니었다. 점점 버거웠다. 


춤을 잘 춘다는 이유로 엄마의 무서운 눈빛에 못 이겨 낯선 친척들 앞에서 춤을 추어야 했던 큰아이의 어색한 몸짓을 보며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거절할 수 없는 압박에 내키지 않는 몸짓을 해야 했을 아이에게 이제야 미안함이 든다. 아이는 춤을 추고 싶었던 거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밝은 척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하고, 혼자 보내는 그 시간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었다. 진한 회식을 하고 나면 며칠간 정신을 못 차리도록 기가 빠져 나가는 허약하고 에너지 부조한 사람이었다. 그걸 마흔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알았다. 문제는 이런 내 모습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활기차고 싹싹하고 에너지가 팡팡 넘치는 ‘존재감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아이만큼은 그런 내 모습을 닮지 않기를 바랬다. 뻔뻔할 만큼 호탕하고 유쾌하고 늘 웃음과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로 자라기를 간절히도 바랐다. 그리고 내 아이가 그렇게 자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아들과 나는 참 많이도 닮았다. 우리의 머리카락은 살짝 갈색빛이 돌며, 팔이 긴 편이다. 책과 돈가스, 수박을 좋아하고 아침 식사는 밥보다 빵을 원한다. 수줍고, 부끄럽고, 떨리고, 낯설고, 긴장하고, 힘은 약한 편이다. 어떤 것도 아이의 선택이 아니었다. 지금의 내 모습도 나의 선택이 아니었듯 말이다.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살아가련다. 사람들 앞에서 춤춰보란 소리는 이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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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Writer  매일 읽고 날마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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