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경 Jun 02. 2019

아이 스스로 하게 하는 법

경험과 독서, 가장 중요한 이 두 가지

육아나 교육에 관한 솔루션, 해법 같은 것을 조언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정직하게 고백하고 싶다. 하지만 교직 경력이 더해지고 쓴 책들이 늘어나고 아이들의 성장이 더해지다보니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주게 된다. 말에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는 선뜻 자신이 없지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키우고 계신가요?” 라고 묻는다면, 답할 수 있다. 

경험과 독서. 이 두 가지. 나를 키운 두 가지, 우리 아이들을 키워줄 두 가지. 나와 나의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놓지 않기를 바라는 두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할 얘기가 많다.      


경험

시골에서 나고 자라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중간한 규모의 소도시,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3층짜리 빌라에서의 일상은 단조로움을 의미했다. 철도 공무원이셨던 아빠는 일평생 같은 시간에 출근, 퇴근을 하셨고 나 역시 늘 어제와 오늘이 비슷한 일상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매력적인 일은 머릿속 상상의 세계를 뭉게뭉게 키워가는 것이었다. 틈만 나면 턱을 괴고 먼 나라에 다녀왔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시작 되면 책상 가운데 보기 좋게 수학의 정석을 펼쳐 놓고 한참을 먼 나라 구경을 하다 왔다. 그러다 떠오른 괴상한 문장들을 드문드문 다이어리에 적어 놓고 흐뭇해하는 일이 나의 중요한 일과였다. 상황을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내 일상에는 이를 제외한 다채로운 일이 별로 없었다. 단조로운 일상과 다채롭지 않은 색깔의 학창 시절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폭발시켰고 이후에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의 묵직한 기준이 되었다.      


엄마인 내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질러대는 소리가 있다.  

”엄마는 너희들의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아니야. 너희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야. 뭐든 일단 혼자 시도해봐. “     


경험을 많이 시켜주라고 하면 엄마들은 부담스러워 한다. 온갖 수선을 떨고 카드빚을 내가며 해외여행 다녀오는 것을 아이가 겪는 경험의 전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럴 여유가 없는 엄마들은 자책하고 실망한다. 해외여행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경험 중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그래봤자 아이의 10년 인생에 열흘도 되지 않을 적은 시간이다. 그렇게 무리하게 해외로 떠난 엄마들은 또 자괴감에 시달린다. 한국인밖에 없는 리조트에서 한국인 직원의 도움으로 편히 지내다 온 휴양이 아이에게 무슨 대단한 경험이 되었었냐면 이건 이도 저도 아니고 돈만 쓴 것 같다며 씁쓸해한다. 배낭을 둘러매고 발이 부르트도록 걸으며 길 위의 현지인에게 지도를 펼쳐 길을 물어보는 것만 제대로 된 경험이라는 환상을 가진 듯하다. 단언컨대 절대 그렇지 않다. 자주 가는 우리 동네의 식당에서건 여행지의 조식 뷔페에서건, 포크 하나라도 직접 가서 달라고 부탁하고 화장실이 어디인지 직접 물어보는 일상의 작은 경험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면 부모에게 말할 것이 아니라 직접 가서 위치를 물어보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부모는 그런 아이를 멀찍이 지켜보다가 화장실을 알아낸 아이가 함께 가달라고 할 때 발을 떼면 되는 거다. 아이를 한둘 키우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보니 부모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직접 해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게 아이들의 경험을 차단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어 버렸다. 엄마가 해줄게, 라는 말이 아이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 아니다. 한 번 혼자 해보자, 라는 말을 건넨 후아이의 용기와 시도에 따뜻한 응원의 눈빛을 보내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내 아이들은 영어를 말하지 못한다. 읽기는 그럭저럭 하는데 말을 못한다. 그렇지만 외국 어디에서도 필요한 것들을 못 구해온 적이 없다. 알고 있는 영어 단어를 조합하든 한국말로 들이대든 몸짓, 손짓으로 애를 쓰든 구해올 때까지 남편과 나는 마냥 기다린다. 외국의 식당에서는 결제도 아이들이 한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들고 돌아온 카드를 챙기고 영수증의 금액을 확인하는 일. 틀려도 괜찮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부모다. 아이들은 영수증을 받아들고 나가면서 땡큐, 라고 크게 외친다. 거스름돈도 받아오고 화장실을 알아내어 볼일을 보고 물티슈도 얻어낸다. 부모 없이 세상 어디에서도 누구를 만나도 필요한 것은 스스로 챙겨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 애를 쓰는 경험, 그게 진짜 공부다. 일부러 좀 부족하게 일부러 더 강하게 일부러 굳이 멀게 걸어가게 하는 것,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 아닐까. 모든 것을 해줄 수도 있지만 어떤 것도 쉬이 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키우고 있다.           


독서

전쟁이다. 집집마다 만화책과의 전쟁이다. 그냥 만화책이면 확 뺏고 못 보게 해버리면 속이 시원할 텐데 학습 만화다. 슬쩍 들춰보니 방대한 주제들에 내용도 알차다. 무엇보다 이것을 안 보는 아이가 없다. 엄마는 헷갈린다. 언제까지 만화책만 보는 걸 그냥 두어야 할까, 학습 만화니까 괜찮은 걸까, 만화책도 책이니 책을 좋아한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닌 걸까. 기다려주면 자연스레 글 밥 많은 문학 작품으로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다. 

아이가 처음 한글을 떼고 더듬더듬 학습 만화를 읽기 시작하면 기특함에 표정이 환해져 애가 원하는 학습만화들을 주저 없이 사다 나르기 시작한다. 때마침 홈쇼핑에서 판매 중인 <와이책> 전집을 덜컥 주문하거나 중고 서점을 뒤져 알뜰하게도 자체 세트 구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살아남기 시리즈>, <퀴즈 과학 상식>, <빈대 가족 시리즈>.... 출판사들에서 경쟁적으로 만들어내는 시리즈들이 넘쳐난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데리고 가면 당연하다는 듯 학습만화 코너로 달려가는 아이들. 책이니까 사줘야할 것 같은데, 만화책이라 탐탁치는 않다. 가만히 열심히 책보는 모습이 예쁘다 싶다가도 허구헌 날 만화책만 붙잡고 있는 꼴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만화책을 못 보게 하면 그나마도 읽던 책을 놓아버릴 것 같아 불안해져 온다. 만화책에도 예상보다 훨씬 많은 양의 상식과 정보들이 실려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읽음으로 얻는 유익도 생각보다 상당하다. 

간신히 만화책을 떼고 나서 글 책으로 넘어가도 걱정은 끝나지 않는다. (어차피 엄마의 주 업무는 자식 걱정이기 때문에 정해진 양만큼의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걱정 가짓수 보존의 법칙이랄까.걱정의 소재가 사람마다, 시기마다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이의 독서량은 대부분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고 그나마도 재밌다고 붙잡고 있는 책들은 필독 도서나 권장 도서보다는 흥미 위주의 책들일 뿐이다. 고학년이 될수록 게임 시간은 늘어나고 학원은 늦게 마친다. 하루에 30분 독서도 버겁다. 그렇게 점점 책과 멀어져 간다. 어린 시절 아직은 엄마가 왕일 때 엄마의 강요에 못 이겨 읽던 책을 학원 숙제를 핑계로 서서히 놓게 되는 것이다. 당장의 학교 시험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시간에 책을 읽히는 것도 엄마로서는 고민거리다. 현실이다. 우리 아이는 책 읽을 시간이 정말 부족하다. 신나게 흠뻑 노는 것도 아닌데 책 읽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타고나길 책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물론 가끔이다. 대부분은 책보다 더 흥미롭고 자극적인 볼거리들에 눈과 마음을 뺏기고 서서히 책과 멀어져 간다. 책을 매우 좋아하는 아이와 책이라면 도망가 버리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현재까지는 두 아이 모두 틈만 나면 책을 붙잡고 지내게 되었다. 책 말고는 할 게 없는 심심한 집에 사는 이 아이들은 한참 웃통을 벗고 씨름을 하다 말고 갑자기 돌아누워 각자 책을 읽는다. 거실엔 어디나 책이 널려 있으니 재미있어 보이는 아무거나 붙잡고 일단 읽는다. 그러다 눈이 맞으면 또 레슬링을 하고, 서로를 소파에 집어 던진다. 소파에 던져진 김에 소파 위에 있던 책을 또 집어 든다. 한 명이 읽기 시작하면 대결 상대를 잃은 다른 한 명도 따라 책을 읽는다. 책을 싫어하던 아이까지도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엄마라는 사람은 아이들이 서로를 던져대는 소란스러운 소파 한 쪽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마치 홀로 진공관 안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처럼 아이들이 던진 쿠션을 팔뚝으로 막아내며 좁은 거실에서 버텨냈다. 책이 재미있기도 했고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말 책이 많이 좋아졌고 읽다 못해 쓰게 되었다. 나를 따라 책을 읽던 아이들은 이제 나를 따라 글을 쓴다. 수준에 못 미치지만 100쪽짜리 원고를 떡하니 만들어놓고 어서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졸라댄다. 개인 출판 서비스를 이용하여 아이의 첫 번째 글을 책으로 만들어주는 프로세스를 시작했다. 뭐든 열심히 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경험과 성취감을 선물해주고 싶다.  


우리 시어머님은 동시대를 살았다면 내가 정말 부러워하는 ‘옆집 엄마’였을 것이 분명하다. 부러운 점이 많다. 100번 넘는 맞선을 보다가 마침내 운명의 상대를 만난 행운의 노처녀라는 점, 그렇게 만난 남편의 노골적인 사랑 표현을 듬뿍 받으며 지금껏 함께 지내고 계시는 점, 무엇보다 부러운 건 아들만 둘인데 둘 다 학창 시절 기가 막히게 똘똘한 학생이었고 지금은 모범적인 가정들을 일구고 있는 효자들이라는 점이다. 어쩌다 찾아온 행운이 아님을 안다. 종류도 다양한 장사를 하시느라 일평생 지금까지도 워킹맘 생활을 당연하듯 해내고 계시다. 그래도 자식을 바르게 키워 내고 싶은 열정만은 가득하셨는데 가게에 앉아 계시다가 아이들 하교 시간이 되면 책을 꺼내 읽는 시늉을 하셨다고 한다. 뭘 그렇게까지, 하고 웃어넘겼는데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다. 부모의 책 읽는 모습은 그 자체가 가진 엄청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책을 읽기 싫은 날은 책을 펴고 읽는 척만 한다. 책장 사이에 스마트폰을 끼워놓고 쇼핑몰의 원피스를 구경하기도 했다. 들킨 적은 없다. (알지만 모른 척해주는 것일 수도). 그렇게라도 책을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책이라는 것이 언제든 펼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물건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의 어떤 이야기도 일반화되기를 원치 않는다.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이렇게 키우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정도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때로 부모가 한 글자도 읽지 않는 집에서 엄청난 책벌레가 탄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더 가끔은 부모만 책벌레인 집도 있을 것이다. 한 아이를 키워내는 일에 정답이 있다는 것만큼 위험한 생각이 어디 있을까. 다만 정답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 헷갈리는 누군가에게 오른쪽 길로 조금만 더 가면 약수터가 있고 쉴만한 벤치도 곧 나온다는 걸 살짝 일러주는 사람이길 바라본다. 


더 깊은 이야기, 영상에서 만나요. 

유튜브 [이은경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wBfDJmnPe-dP5dsHNTm17g



이전 10화 흐린 날엔 떡볶이를 먹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